▲'안전없이 연구 없다! 실험실 안전을 보장하라!' '피해학우에겐 책임 있는 보상을, 학생에게 안전한 실험실을!' 등의 피켓을 목에 걸고 카이스트 본부를 행하여 시위 행진을 하는 대학원생들
일반 매체의 보도진은 물론이고 카이스트의 교수와 교직원은 한 명도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카이스트 대학원총학생회 산하 안전쟁취특별위원회'가 별도로 마련한 '풍동실험실 폭발사고 1주기 추모제' 행사는 시작되었다.
먼저 실험실 폭발사고 희생자를 위한 묵념을 했다. 그리고 사회자가 내빈 소개를 했는데 외부 참석자는 부상당한 강지훈 학생의 어머니 소안순(60)씨, 전국과학기술노조 부위원장 최영석씨, 열린우리당 중앙위원 윤선희씨, 이렇게 3명이었다.
이어서 한 학생이 카이스트 대학원총학생회 산하 안전쟁취특별위원회의 활동사항을 보고했다.
2003년 5월 13일의 풍동실험실 폭발사고를 계기로 대학원총학생회(이하 원총) 산하에 학생안전대책위원회(후에 안전쟁취특별위원회로 이름을 바꿈)가 결성된 이후 그들은 참으로 많은 일을 했다. 그런데 그 일들은 어찌 보면 눈물겨운 '자구책'이었다. 공부하고 연구하고 실험하는 바쁜 생활 속에서 그들이 스스로 시간과 노고와 비용을 바쳐가며 한 일들이었다. 왜 그런 일들을 학생들이 스스로 해야 하는지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거기에 우리 이공계 대학의 현실이,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맹점 같은 것이 집약되어 있으리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어서 지난해 실험실 폭발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강지훈(28) 연구원이 휠체어를 타고 마이크 앞으로 나와서 발언을 했다. 그는 컴퓨터로 써서 프린트해 온 것을 또박또박, 더러는 울먹이기도 하며 읽었다.
'KAIST 대학원총학생회 산하 안전쟁취특별위원회/풍동실험실 사고 1주기 추모제 참가자 일동' 명의의 '요구사항'들을 눈여겨보면서 우리나라 이공계 대학,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후진적 상황을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여태까지 그런 사항들이 하나도 마련되지 않고 있었다니, 한마디로 놀라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