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50

술 취한 세상

등록 2004.05.18 17:23수정 2004.05.1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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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칠은 술도가로 모인 이들에게 화승총과 창 그리고 횃불을 나누어주며 이응길을 기다렸다. 초조하게 기다리는 그들의 앞에 이응길은 칼 한 자루를 옆에 차고선 비장한 얼굴로 나섰다.

"들어라! 이제 썩어빠진 시대는 가고 새로운 시대를 열 기회가 찾아왔다! 우린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기 위해 무기를 들었느니라!"


술도가에 오래 있었던 김덕칠 등 몇몇 이들은 전 후 사정을 짐작하는지라 긴장해 있었지만 그간 무위도식하다가 이제 막 무기만 받아든 걸식패들로서는 뜻밖의 소리였다.

"아니 그게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요? 무기를 쥐어 준 것은 누군가를 향해 쓰라는 것 아니겠소? 복잡한 얘기 할 것 없이 어디로 향할지나 알려 주시오!"

걸식패의 우두머리였던 사내의 말에 다른 이들도 '맞소!'란 말을 연거푸 해대었다. 이응길은 뜻밖의 반응에 당황해 하면서도 곁으로는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간단하다. 우선 용인 현령을 치고 이곳을 우리의 수중에 넣는 것이다."

그러자 다시 걸식패의 우두머리가 소리쳤다.


"지금은 배가 고파 싸울 수 없으니 술과 밥을 거하게 낸 후에 거사를 말하던지 해야 할 것 아니오! 이거 어디 맨 정신에 할 수나 있겠소?"

또 다시 걸식패들이 맞는 소리라며 소리치자 이응길은 어절 수 없다는 듯 김덕칠을 시켜 닭을 잡고 술을 내오도록 일렀다. 명색이 술도가니 술은 사십 여명이 마시고 또 마셔도 끝이 없었다.


"허...... 이래서 어떻게 하시겠사옵니까? 오늘밤에 가능하겠습니까?"

김덕칠이 걱정된다는 듯 한탄하자 이응길은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

"어차피 저들을 이용해 허술한 용산 관아만 치면 될 터, 시일을 끌면 눈길만 끌 따름이네. 지금은 이래도 일단 일이 터지면 진정으로 싸울 자들이 합세하게 될 터이니 괜찮네."

걸식패들을 적당히 먹였다고 생각한 이응길은 야음을 틈타 이들을 이끌고 용인 관아로 달려갔다. 하지만 횃불과 무기를 든 걸식패들은 이응길의 통제에 전혀 응하지 않았다.

"모조리 빼앗아라! 불질러라!"

걸식패들은 마치 제 세상이나 만난 듯이 총을 쏘며 날뛰었고 놀란 백성들은 허겁지겁 집밖으로 뛰어나와 도망치기 바빴다. 밤늦게 도착한 종사관 한상원과 포장 박춘호 김언로, 백위길을 비롯한 20여명의 우포청 군졸이 도달한 때는 그 즈음이었다.

"허! 이 웬 난리란 말이냐!"

그저 용인으로 내려가 죄인을 압송만 하면 될 줄 알았던 한상원은 우선 용인 관아에 증원을 요청한 후 기막혀 했다. 우포청 종사관 중에서는 가장 경험이 적은 그로서는 이런 상황이 감당하기 어려울 뿐이었다. 박춘호가 재빨리 혼자 주변 상황을 정탐한 뒤 한상원에게 일렀다.

"저들이 하는 양을 보니 제대로 통솔되지 않을뿐더러 자기들끼리의 다툼으로 어수선하기까지 합니다. 용인 관아의 군졸이 도착하는 즉시 두 패로 나누어 엄습하면 손쉽게 잡아들일 수 있을 것이옵니다."

박춘호의 침착한 표정에도 불구하고 한상원은 물론 백위길 이하 군졸들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고, 용산관아에서 조달된 활과 화살 등의 무기가 쥐어졌을 때는 긴장감이 더욱 팽배해졌다.

"명령이 떨어지면 일제히 친다."

한상원은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조용히 칼을 뽑아들었다.

"쳐라!"

우레와 같은 함성과 함께 우포청 군졸과 용인관아의 군졸들이 총을 쏘고 화살을 날리며 덮치자 한참 분탕질을 치던 걸식패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급히 도주하기 시작했다. 그들 사이에서 통제에 따를 것을 사정했던 이응길과 김덕칠은 당혹스러워하며 허둥대기 시작했다.

"네 이놈! 오라를 받으라!"

칼을 뽑으며 대항을 해보겠다고 허우적거리던 이응길은 순식간에 꽁꽁 묶였고 이어 김덕칠을 비롯한 4명이 군졸들에게 사로잡히며 난리는 순식간에 진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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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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