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51

술 취한 세상

등록 2004.05.20 17:42수정 2004.05.2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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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오승(五僧)이가!"

이응길이 용인에서 일을 꾀하다가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옴 땡추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낙담했다.


"아우의 좁은 소견을 진작에 알았건만, 그저 바삐 일이나 시키면 될 줄로만 안 내 불찰이 크네."

키 작은 사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빨리 손을 써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옴 땡추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키 작은 사내에게 충고하듯 말했다.

"사승(四僧)아, 너마저도 조급하게 굴 참이냐! 비록 오승이가 포도청으로 잡혀 들어갔지만 우리 얘기를 함부로 발설할 이는 아니다."


"하지만 형님……. 사람의 일이란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포도청에서 사람을 어찌 다룰지는 자명한 일 아닙니까?"

키 작은 사내의 염려대로 포도청으로 잡혀간 이응길은 혹독한 매질을 당하고 있었다. 장(杖) 서른대를 혹독히 맞은 이응길은 정신을 잃었고 찬물이 끼얹어진 후 맨바닥에 꿇어 앉혀졌다.


"내 놈이 국법을 무시하고 나라의 세곡을 빼돌려 술도가에 쏟아 부은 죄가 크다! 게다가 무기는 어디서 구한 것이냐?"

종사관 한상원의 문초에 이응길은 비웃음을 보내며 답했다.

"시전과 난전을 자주 다스리는 우포청에서 어찌 그런 말을 내게 물으시오? 화약, 탄환, 총칼 등은 돈 먹은 아전들의 묵인 하에 상인들이 가게에 벌여놓고 마음대로 팔고 있으며, 심지어는 계(契)까지 조직되어 도매까지 되고 있소. 썩은 부분도 모르면서 죄인을 문초하다니 가소롭기 짝이 없구려."

"내 이놈! 어디서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느냐!"

옆에서 포교 이순보가 사정없이 이응길의 뺨을 갈겨 대었다. 삽시간에 이응길의 입술이 찢어졌고 뺨이 부어 올랐다.

"죽일 테면 어서 죽여라! 상것들이 감히 날 능멸하려 듬이냐!"

"뭐…. 상것?"

이순보가 어이없다는 듯 이응길의 뺨을 농락하듯이 툭툭 쳐대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 봐…. 넌 역적이고 난 포교야 그것 뿐이야. 여기서 난장 맞고 죽고 싶냐? 어디서 상것 타령이야? 고이 말해라."

그 말에 이응길은 입가에 웃음을 띄더니 이순보의 얼굴에 침을 뱉았다. 이순보는 얼굴에 묻은 침을 닦으며 명을 기다린 다는 듯 포도대장 쪽을 바라보았다. 포도대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상원이 명했다.

"저 놈의 주리를 틀어라!"

주리를 트는 것은 '법외의 음형(淫刑)'이라고 할 만큼 공식적으로는 금지된 것이었으나 사실 중죄인에게는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는 형벌이기도 했다. 이응길의 비명 소리가 포도청 관아에 울려 퍼지며 십여차례의 주리 틀기가 뼈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반복되었다.

"문초하느니, 네 놈 따위가 감히 이런 일을 벌일 수는 없다. 배후에 누가 있느냐?"

"없다!"

한상원이 다시 주리를 틀 것을 명하려는 찰나 포도대장 박기풍의 명이 떨어졌다.

"됐다! 더 이상 문초 할 것도 없으니 저 놈들의 목을 베어 저자거리에 효수하라!"

"하오나……."

이순보가 뭔가 부족하다는 듯 말하려다가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그 와중에서 백위길은 아직도 눈빛이 살아 있는 이응길을 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분명 그는 옴이 잔득 올라 있는 빡빡 머리 한량과의 술자리에서 마주친 자임에 틀림없었다. 백위길은 그 배후를 짐작하고 있었으나 말할 수 없는 자신을 탓하고 또 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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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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