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고 총리 제청권 고사는 '권한 남용'

사실상 대통령 임명권 박탈... 제청권은 보좌적 권한에 불과

등록 2004.05.24 13:30수정 2004.05.24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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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총리가 24일 오전 “물러나는 총리가 (국무위원)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혀, 노무현 대통령이 교체 의사를 밝힌 통일·문광·보건복지 관련 국무위원의 임명권 행사가 사실상 좌절될 전망이다.

고건 총리의 국무위원 제청권 고사는 사실상 통치권을 재개한 노무현 대통령의 행보에 제동을 거는 정치적인 행위로서, 내각을 총괄하는 행정부 2인자로서의 행보라고 보기 어렵다.

이번 개각 문제는 대통령의 임명권과 국무총리의 제청권 사이의 해석뿐만 아니라 두 권한의 충돌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헌법 제87조 ①항에서 규정한 총리의 제청권과 동조 ③항에 규정한 해임건의권한은 대통령의 국무위원 임명권에 대한 보좌적인 권한을 의미하여, 대다수의 헌법학자들은 총리의 제청을 받지 못한 대통령의 임명행위도 유효하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총리의 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은 대통령의 임명권에 대한 파생적 권한일 뿐이다.

하지만 고건 총리는 이번 3부 장관에 대한 대통령 임명 의지에 대해서 제청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부작위에 의한 권한도 포함되는 것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다.

이는 국민으로부터 직접 권한을 위임받은 대통령의 임명권한이 대통령과 국회로부터 임명 또는 동의를 받아 간접적인 직무 권한을 갖고 있는 총리의 제청권으로 행사되지 못하는 상황을 형성시킨 것이다.

탄핵 소추된 경험을 갖고 있는 대통령으로서는 정치적 부담을 지면서까지 법적인 절차 행위인 총리의 제청을 거치지 않고 임명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따라서 이번 고건 총리의 제청권 고사는 정치적으로 제한된 임명권 행사를 할 수밖에 없는 노 대통령에 대한 간접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한 정치 행위로, 헌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인다.


헌법에 규정된 총리의 제청권한은 대통령이 내정한 국무위원에 대한 예비적 동의절차이지 그 자체의 행사 여부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고 총리식으로 헌법 정신을 이해한다면, 대통령의 임명권은 사실상 총리의 제청권을 추인하는 결과만이 있을 뿐이다. 즉 국무위원의 교체 또는 충원을 위해서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내정자 통보→ 국무총리의 내정자에 대한 제청 또는 부당의사 표명→ 대통령 임명’으로 하는 것이 헌법에서 의미하는 보좌적인 권한인 제청권 행사의 올바른 절차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고 총리는 3부 장관 내정자에 대한 인선 자체의 제청권 여부를 행사할 수는 있어도 지금처럼 정치적인 이유로 제청권 행사 자체를 행사할 것인지의 여부로 주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초법적인 발상이다.

고 총리가 이번에 제청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발상은 마치 제청권이 대통령에 대한 임명권을 견제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이렇게 헌법 정신을 이해한다면 노 대통령의 탄핵 소추 심의 과정에 헌법에 따라 고건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에 있을 때 스스로 임명권을 행사하고 그 제청권을 동시에 행사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즉 국민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대통령은 임명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임명직에 있는 총리는 이를 행사할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즉 국무총리의 제청권은 임명권자의 인선안에 대한 제청 찬성 또는 반대이지 제청권 행사 여부가 아니다. 고건 총리가 밝힌 “물러날 총리가 제청하는 것은 헌법정신에 어긋난다”는 것은 역으로 보면 대통령은 총리를 사퇴시키거나 임명하기 위해서는 내각을 총사퇴시키고 새로 조각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고건 총리는 제청권을 오용 또는 남용하여 대통령의 임명권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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