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 호랑이 이야기 31

호랑이 동굴의 버드나무 가지를 찾아서 3

등록 2004.05.27 23:25수정 2004.05.2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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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는 여전히 같은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괜찮아, 그냥 그렇게 해….”


그 순간 바리와 백호 앞에 모여든 호랑이들 사이에서 커다란 빛 줄기가 치솟았습니다. 바리와 백호를 공격하기 위해 뛰어오른 호랑이였습니다.

“악!”

바리는 순식간에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 호랑이가 만드는 푸른 불꽃은 어두운 동굴 안에 하얀 포물선을 그리며 바리 쪽으로 날아들었습니다. 그 호랑이의 두 눈 사이로 가운데 웅크리고 앉아있는 한 영혼이 보였습니다. 그러자 바리가 소리쳤습니다.

“엄마!”


그것은 바리가 무서움에 내지르는 비명이 아니었습니다.

그 호랑이 두 눈 사이에 보이는, 그 안에 잠들어 있는 영혼은 분명히 바리가 그토록 그리던 엄마의 얼굴이었습니다. 바리는 자기 쪽으로 날아드는 그 호랑이의 품 속으로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 안에 웅크리고 앉은 엄마를 안으려는듯 바리는 팔을 쭉 뻗었습니다.


호랑이의 푸른 불꽃은 바리를 낼름 삼켜버렸지만, 금세 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바리는 불꽃 속에서 그 영혼을 꼭 끌어안았습니다.

순식간의 일이었습니다. 불빛이 꺼지고 남은 것은, 바리의 품 속에 안겨 작은 새처럼 숨을 쉬고 있는 꼬마아이였습니다.

바리는 그 아이를 품에 안고,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 호랑이의 모습이 사그러드는 것을 본 다른 호랑이들이 점점 더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바리가 아이를 땅에 내려놓고 힘차게 일어서자, 불꽃들은 전부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동굴 깊은 곳으로 한데 도망쳐 사라지는 호랑이들의 모습은, 수채구멍으로 빨려들어가는 때구정물처럼 보였습니다. 그 넓은 동굴 뒷편으로 다른 길이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저 가운데 높게 쌓아진 돌무덤 위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버드나무 가지가 보였습니다. 나무줄기에서 잘려져 나온 가지였지만, 여전히 살아있는 나무가지처럼 나뭇잎들이 그대로 살아붙어있었습니다. 바리가 버드나무를 집어들자 풋풋한 향기까지 났습니다. 그 돌무덤 주위에는 돌조각들과 나무조각들이 널부러져있었습니다. 죽어버린 산오뚝이들의 것임에 틀림없었습니다.

바리는 바드나무 가지를 집어들고 백호 곁에 숨을 할떡이면 누워있는 그 아이 곁으로 다가와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난… 난… 정말 우리 엄마의 영혼이 호랑이가 된줄 알았어…… 정말 난 엄마의 모습을 보았는데….”

바리는 자기도 모르게 울고 있었습니다. 엄마와 아빠의 모습이 떠오르고, 너무 보고 싶어졌습니다.

백호가 말했습니다.

“내가 그랬지? 너는 이미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알고 있다고…. 잘 했다. 그렇게 호랑이 안에 웅크리고 앉은 영혼들은, 그냥 그렇게 두 팔로 품어주면 돼…..
네가 엄마를 사랑하는 것처럼… 아빠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 영혼들도 전부 자기 아빠 엄마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을거야.”

바리는 얼굴을 손에 파묻고 큰소리로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 호랑이들은 너무 많아….. 영혼들이 너무 많아…. 너무 가엾어…. 그런데, 그런데 내가 … 어떻게 그 영혼들을 다 품어주지? 언제 나는 우리 부모님을 만나게 되지? 언제 여의주를 가지고 일월궁전에 가게 되느냐구…. 너무 답답해…..”

백호는 자기의 따스한 얼굴을 바리의 머리에 갖다대고 살며시 부볐습니다.

“바리야. 이제 삼신할머니한테 가자……”

천문신장님의 나침반은 백호와 바리, 그리고 그 아이를 금방 삼신할머니에게 데려다 주었습니다.

바리를 본 삼신할머니는 버드나무 가지보다 바리 품에 안겨있는 그 아이를 먼저 품에 안으셨습니다.

“에구, 가엾은 것, 가엾은 것…. 이 할미 품에 왔으니 이제 아무 걱정할 것 없다.”

할머니는 그 아이의 이마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내가 점지한 아이야. 라일락이 곱게 피던 날이었는데….. 이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이 애 부모들이 얼마나 간절히 바랬는지 몰라. 자라서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라고 서천꽃밭에서 이것저것 좋은 꽃들을 골라오느라 좀 늦었다는게, 이 엄마가 늦은 30줄에 이 아이를 낳게 되었지.”

바리는 삼신할머니에게 버드나무 가지를 주면서 물었습니다.

“이 아이는 많이 아픈가요?”

삼신할머니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아니다. 아니야. 이 버드나무 가지로 다시 숨을 돌려놓으면 금방 일어날게야. 하지만, 이 험한 세상에서 눈을 뜨면 어디로 갈 수 있을지 염려가 되는구나.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을텐데…. 아이가 이렇게 된걸 보면, 엄마 아빠도 분명 호랑이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

“그럼, 어떡하실 거에요?”

바리가 걱정스럽게 물었습니다.

“염려하지 말아라. 아무 염려하지 마. 그나저나 이 아이를 우리집에 좀 눕히자구나, 버드나무가지가 없어서 아직 출산을 못 시킨 아이가 한명 있어, 어서 가야하는데, 그 나침반을 좀 빌려주지 않으련?”


삼신할머니가 점지한 아이를 세상으로 출산시키는 모습을 바리와 백호는 창문 밖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병원에도 가지 않고 힘겹게 진통을 하고 있는 어머니는 순산을 못하고 며칠째 주위 사람들의 애를 태우며 그렇게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삼신할머니는 아리따운 선녀들을 데리고 어머니 주변으로 날아갔습니다. 선녀들의 손에는 호리병이 한개씩 들려있었습니다.

삼신할머니는 버드나무 가지를 들어 공중에 태극무늬를 그렸습니다. 그 태극무늬가 공중에서 맑은 빛을 발하며 빙그르르 돌자 선녀들의 호리병에서 온갖 색깔의 나비들이 팔랑거리면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태극무늬 안에 들어가 너울너울 춤을 추던 나비들은 태극무늬와 함께 어머니의 콧 속으로 휘익 들어갔습니다. 어머니가 큰소리를 내면서 배에 힘을 주자 선녀들은 사라지고 삼신할머니의 팔에는 어느덧 아기 하나가 안겨져 있었습니다..

삼신할머니는 그 어머니의 머리맡에서 아기를 쓰다듬으시면서 이렇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둥둥둥 우리 애기 어허 둥둥 우리 애기
금자동아 옥자동아 칠보칠성 보배동아
금을 주면 너를 살까 옥을 준들 너를 살까
예쁜 거울 닮아서 해맑게 자라거라
둥둥둥 우리 애기
금닢을 닮아서 금빛나게 잘 자라라
둥둥둥 우리 애기
목화꽃을 닮아서 복스럽게 잘 자라라
둥둥둥 우리 애기
미류나무 닮아서 시원시원 잘 자라라
둥가둥가 우리 애기
둥둥둥 우리 애기 어디를 갔다 인제 왔나
나비처럼 너울너울 둥가둥가 내 사랑아


삼신할머니가 아이를 뒤집어 엉덩이를 찰싹 하고 때렸습니다.

그러자 집안에는 힘찬 아이 울음소리가 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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