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56

세상을 바꾸는 것

등록 2004.05.28 17:21수정 2004.05.2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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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와 주석은 어디서 들여 올 것인가? 때론 광물이 없어 관주전(官鑄錢)이 엉터리로 주조될 때가 있는 판국이네만 너무 질이 떨어지는 화폐를 만들면 아니 되네."

"그런 일에까지 어찌 대감께 심려를 끼치겠습니까? 그저 대감께서는 일이 되도록 길만 열어주십시오."


"그야 그렇네만."

옴 땡추는 박종경이 시원스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흥정을 바라는 것임을 깨닫고는 슬쩍 지나가는 투로 답했다.

"전에 대마도를 통해 몰래 들여오는 왜은(倭銀)을 수 백 근을 녹여 덩이로 가지고 있사온데....."

박종경은 그만하면 만족한다는 듯 옴 땡추에게 술잔을 내밀며 말했다.

"조정의 일은 염려하지 말게. 나라에 돈이 넘치면 좋은 일이 아니겠나?"


옴 땡추는 기꺼워하며 널름 술잔을 받아 입에 털어 넣었다.

"어찌 되었사옵니까?"


옴 땡추가 술기운으로 약간 달아오른 얼굴이 되어 나오자 밖에서 서성거리며 기다리던 강석배는 조바심이 일 지경이었다.

"어찌되긴! 강별감은 별일 없으면 들어가 보게나."

옴 땡추의 기분 좋은 말투에 강석배는 안도하며 뒤돌아 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는 기분이 들어 개운치 않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저 인간은 보면 볼수록 알 수 없단 말이야!'

강석배의 기분이 어떻든 간에 옴 땡추는 그에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바람처럼 달리듯이 걸어 산 속 초가집에 들어선 옴 땡추는 한참 투전판을 벌이고 있던 혹 땡추, 키 작은 사내, 허여멀쑥한 사내에게 기세 좋게 소리쳤다.

"이놈들아! 그간 고생이 많았느니라!"

혹 땡추는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중얼거렸다.

"어디서 몰래 곡주를 쳐 자셨는지 냄새가 참 좋구려."

옴 땡추는 그런 혹 땡추의 뒤통수를 딱 갈기며 자리에 앉았다.

"오승(五僧)이가 죽은 후 나도 서둘러야 할 필요를 느꼈느니라. 앞으로 조금만 참으면 일은 벌어지니 내 말을 잘 듣거라."

그 말에 혹 땡추는 깜짝 놀라 뒤통수를 맞은 것도 잊은 채 되물었다.

"형님! 그 말이 정말이오?"

"내 말을 잘 듣거라. 삼승이는 상인들과 함께 청나라로 가 구리를 사오거라. 사승이는 육승이와 함께 왜국(倭國)으로 가 역시 구리를 사오거라."

허여멀쑥한 사내가 깜짝 놀라 말했다.

"구리는 쉬이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거래가 잘못되면 지금까지 모은 재화를 모두 탕진할 수도 있사옵니다."

"그건 아무 상관없느니라. 팔승이는 칠승이와 함께 방방곡곡의 구리와 주석을 사 모으거라. 이는 모두 개성에 있는 대장간에 모아두면 된다."

"아니 그렇다면 사주전을 주조할 생각이옵니까?"

허여멀쑥한 사내가 눈치를 채고 말하자 옴 땡추는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주전을 주조하는 것이 어떤 이득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굳이 구리를 모을 필요도 없거니와 연철(鉛鐵)을 섞어 문양만 그렇듯 하게 만들면 될 일입니다. 게다가 오히려 관아의 단속이 심해져 운신이 힘들어질 뿐일지 모릅니다."

"내게 다 생각이 있다."

옴 땡추가 한마디를 던진 후 잠시 깊이 숨을 고르자 모두의 눈이 옴 땡추의 입으로 모아졌다.

"돈으로 이 나라를 사들일 것이니라."

허여멀쑥한 사내는 무엇인가 짚인 다는 듯 입을 다물었지만 키 작은 사내와 혹 땡추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아니 형님! 낮술이 과하셨수? 시키는 일이야 당연히 하겠지만 사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억만금이 있다한들 대저 누구에게서 나라를 살 수 있단 말입니까?"

혹 땡추의 타박에도 불구하고 옴 땡추는 입가에 미미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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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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