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인권 보장하도록 형소법 개정해야

형소법개정공동행동 기자회견 "수사 중 장애인 인권침해 심각"

등록 2004.06.01 17:26수정 2004.06.01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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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상 장애인 인권침해 논란이 계속 문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6월 1일 오전 10시 경복궁 관문인 광화문 앞에서 '장애인 인권확보를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a 형소법 개정 기자회견에 참석한 관계자들

형소법 개정 기자회견에 참석한 관계자들 ⓒ 이철용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한 장애인인권확보 공동행동'(이하 형소법개정공동행동)이 주관한 이날 기자회견은 현재 법무부가 마련하고 있는 형사소송법 개정에 수사상 장애인 인권침해에 관련한 사항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장애계의 요구를 밝히는 자리였다.

수사절차상 다양한 인권침해로 형소법 개정 절실

a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정열 소장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정열 소장 ⓒ 이철용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박숙경 인권팀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최성중 부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거동이 불편하다는 이유,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많은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는데 특별히 수사에 있어서 수사기관의 고유영역이라는 미명하에 시각, 청각, 언어 장애 등 다양한 장애인들이 수사상 인권 침해를 받고 있다"며 이러한 인권침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이번에 법무부가 마련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장애계의 요구가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경과보고를 맡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김정열 소장은 "피해자가 가해자로 몰리고 작은 사건에서도 침소봉대 되는 일들이 많이 발생해서 제도화를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러한 인권침해 피해사례들이 계속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때문에 형소법 개정운동에 착수했다"고 배경설명을 했다.

7개 단체로 구성된 공동행동은 그동안 구체적인 형소법 개정을 위한 활동을 펼친 가운데 지난 3월 형소법 개정 공청회를 열고 그 결과를 가지고 법무부와 접촉해 장애계의 의견을 전달했으나 아직 법무부에서 장애계의 요구를 수용한다는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 소장은 법무부가 장애계의 의견에 대해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아직 입법예고안에 반영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조직적인 운동을 통해 6월 중에 발표될 법무부의 형소법 개정 입법예고안에 반드시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진 사례 발표에서 한국뇌성마비장애인연합 김주현 정책부장은 자신도 얼마 전 이동권 집회와 관련해서 수사를 받은 적이 있는데 당시 수사기관이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조서를 작성하고 서명을 요구해 자신이 확인해 보고 조서를 재작성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김 정책부장은 "언어소통에 문제가 있는 뇌성마비 장애인의 경우 지정 보조인이 꼭 필요한데도 수사기관은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며 "이로 인한 장애인의 인권침해는 현재 어디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장애특성상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기도

a 기자회견에 참가한 참가자들, 피켓의 요구사항이 선명하다.

기자회견에 참가한 참가자들, 피켓의 요구사항이 선명하다. ⓒ 이철용

서울시그룹홈지원센터 유병주 소장은 정신지체인들의 경우 다른 어떤 장애보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많은 인권 침해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신지체인은 특성상 상황에 대한 논리적 설명이 힘들기 때문에 때로는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는 사례까지 발생하는데 현재 수사기관은 정신지체장애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경우에도 가족이나 보조인의 도움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정신지체인에게는 가족이나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한데도 수사단계에서 이들의 접근이 허락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수사 중에 판단능력이 약한 정신지체인에게 윽박지르거나 칭찬을 해 진술을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어 결국 모든 책임을 고스란히 정신지체인이 짊어져야 하는 사례가 발생한다는 것.

유 소장은 사실과 다른 결과로 인한 피해는 비장애인에게도 크지만 정신지체인들의 경우 수십 년간 쌓아온 재활 치료가 물거품이 되고 전인격적으로 파괴가 되는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형사소송법 개정 필요성은 다른 어떤 장애보다 정신지체 장애인들에게는 시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이낙영 공동대표는 "수사기관이 장애인을 잘 이해하지 못해 장애인들이 피해보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여성 장애인의 경우 수사담당자가 대부분 남성이기 때문에 제대로 진술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보조인 제도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보조인, 국선변호인 제도 확대

a 수사 및 재판상 장애인인권확보를 위한 연구모임 고영신 변호사

수사 및 재판상 장애인인권확보를 위한 연구모임 고영신 변호사 ⓒ 이철용

'수사 및 재판상 장애인인권확보를 위한 연구모임' 고영신 변호사(법무법인 충정)는 형소법 개정의 4가지 중요 내용을 발표했다. 장애계의 첫째 형소법 개정 요구안은 보조인의 범위 확대 및 보조인 선정의 고지의무 추가로 보조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일정 범위까지 확대하여 장애인 피의자가 수사기관에서 진술할 때 수사절차상의 기본권을 침해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고 변호사는 지금도 보조인 제도가 있지만 현행 보조인 제도는 가족, 호주 등 한정적으로 특정인만을 열거하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들의 경우 거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때문에 실제 장애인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장애의 특성을 알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보조인으로 선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제도로 누구나 수사절차상 인권을 침해당하지 않고 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치라고 밝혔다.

둘째 요구는 국선변호인 제도의 보완으로 보조인은 법률전문가가 아니므로 보조인이 있더라도 추가로 국선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도록 선정사유의 범위를 간접적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특히 형사재판 단계에서는 장애인 본인뿐만 아니라 보조인도 국선변호인 선정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여 장애인의 기본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국선변호인이 선임되더라도 장애인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실정인 만큼 보조인이 국선변호인을 돕도록 하는 것이 장애인 인권침해를 막는데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장애유형별 인권침해 방지장치 마련해야

셋째 요구는 장애유형에 따른 재판서 작성과 피고인 및 증인에 대한 신문방법의 보완으로 수사관 등이 진술자가 시각장애인 또는 문맹자이거나 조사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 등을 내세워 진술자에게 조서내용을 개략적으로 읽어주고 서명날인 하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수사관 등은 진술의 요지만 간략히 전달하거나 범죄사실에 끼워 맞춘 자백내용을 진술자의 진술과 동일한 취지라는 이유로 강변해 진술자의 진의를 왜곡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것을 보완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 유형별 보완장치로 시각장애인에게 플로피디스켓 등으로 작성하여 음성지원 시스템을 지원하고 청각장애인에게는 전담 통역인 운용, 피의자가 진술능력이 있으나 진술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인 경우 쌍방향 의사소통이 가능한 컴퓨터 이용, 정신지체인의 경우 의사소통보조인 또는 비디오테잎을 이용한 답변이 가능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요구는 형소법 개정에서 수사기관에 구체적으로 장애인, 노인, 아동에 대한 보호의무를 부여하는 규정을 신설함으로써 장애인과 관련한 구체적인 인권보호 조항 뿐만 아니라 장애인 등의 인권보호를 위한 선언적 규정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단체들 장애계 형소법 개정안 동조

고 변호사의 장애계의 형소법 개정안 소개에 이어 인권운동사랑방 박래군 상임활동가의 지지발언이 이어졌다. 박 상임활동가는 인권단체들도 장애인 단체의 형소법 개정 움직임에 뜻을 같이한다고 밝히고 형소법은 신체의 자유에 관련된 것으로 형소법의 수준이 인권의 발달 척도라고 말했다.

박 상임활동가는 근래에 들어와서 국가 권력의 오남용에서 시민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형소법이라고 밝힌 후 형소법이 초기에는 부유계층을 보호하는 것에서 최근 들어 노동자, 여성, 장애인 등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으로 확대되는 추세지만 아직도 우리 나라의 형소법은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박 상임활동가는 장애인들이 요구하는 형소법 개정은 장애인들의 가장 초보적인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도 반영되지 않은 것은 아직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시민으로 보지 않고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시민단체들도 장애인들의 이러한 뜻과 의지를 형소법 개정에 반영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a 기자회견에 참가한 관계자들

기자회견에 참가한 관계자들 ⓒ 이철용

지지발언에 이어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이문희 정책실장의 기자회견문 낭독이 있었다. 형소법개정공동행동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 현행 형소법에서 가족 등에 한정하고 있는 보조인의 범위를 '신뢰관계에 있는 자'까지 확대하여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없거나 장애로 인해 보조인의 도움이 불가피한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형사상 권리를 보장할 것 ▲ 보조인 선정에 대한 고지를 의무화하여 실질적으로 보조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 ▲ 재판서의 등 초본, 조서의 작성 및 열람 시 개인의 장애에 맞게 통역인이나 보조기기를 사용하여 작성하고 열람할 수 있도록 할 것 ▲ 장애인 등 진술능력 취약자에 대한 수사상 인권보장에 관한 상시교육을 의무화 할 것 등 4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형소법개정공동행동은 기자회견에 이어 요구사항이 담긴 문건을 법무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현재 형소법 개정은 계속 논의 중인 사안으로 논의 과정에 장애계의 의견도 검토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한 장애인인권확보 공동행동'은 노들장애인야학,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한국농아인협회, 한국뇌성마비장애인연합, 한국여성장애인연합,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한국정신지체인애호협회 등 7개 단체로 구성되어 있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44개 시민단체들이 지지 뜻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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