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붕어 떼에 과자를 빼앗기다. 또 허탕!이충민
은근히 속도 상했다. 신경이 둔한 거북이를 보면서 나는 동질감 이상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거북이는 꼭 내가 비쳐진 거울 같았다.
나는 치열한 생존 경쟁의 현대 사회에서 느림보 거북이었다. 1년 이상을 취업 준비생으로 허송 세월 보냈다. 속된 말로 백수다. "팝콘 하나 제대로 못 먹는 거북이 때문에 자괴감까지 들 줄이야…."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기가 샘솟았다. 거북이가 기필코 팝콘을 먹게 하리라.
가능성은 희박했다. 내가 직접 우물에 팝콘을 들고 뛰어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결국 또다시 어쭙잖은 꾀를 내었다. 이른바 우매한(?) 붕어떼의 시선 유도다. 팝콘 부스러기를 대량 투하하여 붕어떼를 한쪽으로 유인한 뒤, 동작이 굼뜬 거북이가 홀로 남았을 때 팝콘을 던지기로 마음 먹었다. "실행!"
하지만 불행히도 이런 나의 의도는 또 빗나가고 말았다. 우매한 거북이는 팝콘 부스러기와 함께 붕어와 잉어가 모여 있는 곳으로 헤엄쳐 갔다. 자신의 코 앞에 있는 큼지막한 팝콘은 잊은 채 말이다. 결국 거북이는 그곳에서도 팝콘을 먹지 못했다.
얼마 후 팝콘을 맛보지 못한 거북이가 나에게 다가와 얼굴을 내밀었다. "줘도 못 먹는 녀석이 염치없기는…."
하지만 우리 수중의 팝콘은 이미 동이 난 상태였다. 거북이는 실속 없이 헤엄만 친 탓에 몹시 배가 고팠을 것이다. 애처로운 마음에 옆에서 구경하던 아기가 먹다가 떨어뜨린 과자에 손을 댔다. "이게 마지막이다. 거북아! 못 먹어도 날 원망마라!"
과자를 힘껏 던졌다. 던지면서도 붕어떼의 습격이 우려됐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붕어들이 설치는 와중에서도 거북이가 기어코 과자를 '덜컥' 문 것이 아닌가. 붕어들이 경거망동하는 와중에 어부지리로 거북이 입속에 과자가 들어간 것이었다. "이제서야 하나 받아 먹다니…. 거북이가 날 감동 시키는구나."
오리떼 등장, 분위기 파악 못해
거북이는 붕어들의 훼방을 뿌리치고 방향을 360도 턴했다. 한적한 곳으로 헤엄쳐 가서 과자를 맛 보려는 심산인 것 같았다. 그런데 난데없이 오리가 나타났다. 오리는 거북이가 간신히 입에 문 과자를 두 동강 내어 입에 물었다. 나눠 먹자는 심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