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31

잠시만 이렇게 있어줘요! (9)

등록 2004.06.02 05:15수정 2004.06.02 10:18
0
원고료로 응원

* * *

“조심! 조심! 살짝이라도 부딪치며 큰일난다. 알지?”
“걱정 마십시오. 조심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소곤거리는 음성에 대답 또한 작았다. 모르긴 몰라도 남들의 이목을 피해 무엇인가를 획책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자, 천천히. 천천히! 시간은 많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그러면서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알겠느냐?”
“걱정 말라니까요 조심하고 있습니다.”

“아앗! 부, 부딪친다. 조심해!”
“으윽! 휴우…, 하마터면…!”

“방금 뭐라 하였더냐? 그러게 조심하라 일렀지 않더냐?”
“죄,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욱 조심하겠습니다.”

몹시 긴장했는지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는 인물은 무언공자 구호광이다. 그리고 그의 앞에서 이인 일조가 되어 나무궤짝을 운반하는 인물들의 수효는 모두 이십사 인이었다.


이곳은 음습(陰濕)한 지저 동굴. 지면으로부터 무려 삼십여 장이나 밑에 있는 동혈이기에 빛이라곤 한 점도 들어오지 않으므로 이동하려면 횃불이 필요하건만 어디에도 빛은 없다.

제 손가락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하건만 손으로 더듬으며 전진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방금 전의 대화를 미루어 생각하면 이들은 어둠 따위는 개의치 않는 듯하였다. 그렇다면 내공이 적어도 일 갑자 이상 되는 고수들인 모양이었다.


“이게 마지막이지?”
“아닙니다. 아직 조금 더 가져와야 합니다.”

“흐음! 그으래? 그럼 이번 것만 운반하고 일단은 쉰다. 놈들이 재물조사(在物調査 : 보유하고 있는 물품에 대한 장부와 실물의 일치작업과 물품의 상태 등을 점검하기 위한 조사)를 끝낸 후 다시 시작할 것이니 그런 줄 알도록!”
“존명!”

“헌데 재물조사를 해보면 우리가 빼돌린 것이 드러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비상이 걸리고…”

“걱정도 팔자다. 너무 많아 일일이 헤아리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모든 것을 들춰가며 헤아리지도 못한다. 자칫 실수라도 범하면 엄청난 재앙이 벌어지기 때문이지.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나저나 위장은 잘 해두었겠지?”

“위장할게 뭐 있습니까? 안에 있던 건 꺼내서 여기다 담았고 대신 똑 같은 무게의 돌을 넣어두었으니 개봉하지 않으면 절대 내용물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좋아! 수고가 많았다.”
“흐흐흐!”

무림천자성 내원의 지하에는 복잡하게 얽힌 동굴이 있다.

그곳은 천하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막대한 재물을 보관하는 보관창고로 쓰인다. 또한 잘 벼려진 무적검과 무적도 등 각종 병장기 등을 보관하는 병기고로도 사용이 된다.

뿐만 아니라 수백만 권에 달하는 서책을 보관하는 서고도 있고, 극비문서들을 보관하는 곳도 있다. 이외에도 영약이나, 약초, 식량 등등 여러 가지가 다양하게 보관되고 있다.

그리고, 천하 각지에서 보고되는 각종 정보를 바탕으로 향후 무림 운영계획을 수립하는 비보전의 일부도 있다.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 곳에 위치해야 장차 획책하려는 일이 외부로 새나가지 않기 때문에 지저에 위치한 것이다.

그런데 무언공자 일행이 이곳에서 무엇인가를 은밀히 꺼내 가는 모양이었다. 그럴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한 것은 무언공자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하다. 비록 성주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이곳 지저 창고에는 출입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자,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이곳만 빠져나가면 다음은 현무대가 맡을 것이니 너희는 술이나 한잔하고 있어라.”
“그럴 수야 없습죠! 어찌 저희만 한가한 시간을 보내겠습니까? 저희도 그곳까지 동행하겠습니다. 혹시 압니까? 누가 눈치를 채고 따라올지? 이곳을 벗어나면 저희는 사주경계를 맡겠습니다.”

“술은 다녀와서 마셔도 됩니다. 그때 왕창 사주십시오.”
“하하, 녀석들! 좋다.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마시게 해주지. 단 계집을 끼고 먹고 싶다는 소리는 하지 마라.”

“물론입니다. 비밀 유지를 위해 우리끼리만 마시겠습니다. 저희는 공자만 계시면 됩니다.”
“뭐라? 나만 있으면 된다고?”

“그렇습니다. 공자는 저희의 태양이십니다.”
“예끼 이놈들! 누가 알면 본좌가 남색을 즐기는 줄 알겠다.”

“크크크! 그럼, 아니십니까?”
“어쭈! 이놈들이 이젠 내게 농을 해? 하하! 대가리가 많이 굵어졌다 이거지? 하하! 하지만 아직 멀었다. 아암! 멀었구 말구.”

“멀긴요? 저희도 이젠 당당한 사냅니다.”
“에라! 이놈들아. 거시기에 털만 나면 어른이더냐?”

“그럼 아닙니까?”
“암! 아니지. 아니구 말구… 거시기에 털 나는 것 말고도 많은 걸 갖춰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이야. 자, 그건 그렇고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되니까 정신 바짝 차려라. 알겠냐?”
“존명!”

한동안 농을 주고받던 일행은 무언공자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다시 천천히 전진하고 있었다. 대체 궤짝 속에 무엇이 들었기에 이토록 조심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전국 최고 휴게소 행담도의 눈물...도로공사를 향한 외침 전국 최고 휴게소 행담도의 눈물...도로공사를 향한 외침
  2. 2 1만2000 조각 났던 국보, 113년만에 제모습 갖췄다 1만2000 조각 났던 국보, 113년만에 제모습 갖췄다
  3. 3 [단독] 김태열 "명태균이 대표 만든 이준석,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단독] 김태열 "명태균이 대표 만든 이준석,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4. 4 한 박스 만원 안 나오는 샤인머스캣, 농민 '시름' 한 박스 만원 안 나오는 샤인머스캣, 농민 '시름'
  5. 5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