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국제문화전문가단체 총회 서울서 성황리에 개막

"미국 거대 문화자본에 맞서 문화다양성 지키자"

등록 2004.06.02 07:31수정 2004.06.0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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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개막된 제3차 국제문화전문가 서울총회 축하공연.
1일 개막된 제3차 국제문화전문가 서울총회 축하공연.오마이뉴스 강이종행
"지구촌 사람들은 이라크 전쟁을 TV를 통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이 국제화는 아니다. 고출력의 한 가지 마이크가 세계를 덮는 게 세계화는 아니다. 이라크의 민중들이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 듣는 것이 진정한 국제화와 세계화다. 아프리카 오지의 원주민들이 청바지를 입고 콜라를 마시는 것도 좋지만 그들의 소수문화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세계화인 것이다."

제3차 국제문화전문가단체(CCD : Coalition for Cultural Diversity) 서울총회 개막식 격려사를 하는 이창동 문화부 장관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이 장관은 "문화다양성이라는 주제 앞에서는 영화감독이든 화가든 장관이든 같은 동무이자 동료고 친구다, 인간이 인간다운 것은 다름을 인정하는 영혼을 소유하고 있어서라고 생각한다"며 "경제가 중심이 된 무한경쟁 사회에서 문화다양성을 주장하는 여러분의 의견들은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장관은 "대한민국 정부는 유네스코(UNESCO)의 문화다양성 협약의 기본 취지에 동의하면서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지지의사를 밝혔다.

전 세계 57개국 약 400여명의 문화전문가가 모여 "문화는 교역이 아니라 교류의 대상"임을 나누게 될 이번 서울 총회가 1일 오후 5시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전 스위스그랜드 호텔)에서 열린 개막식을 시작으로 나흘간의 일정에 들어갔다.

아프리카의 안성기· 멕시코의 김지미 등 세계 문화 NGO 서울 집결

CCD 서울 총회의 의의

이번 국제문화전문가단체 서울총회의 주제는 '기로에 선 문화, 위협받는 문화 정책'이다. 참가자들은 이번 서울총회가 어느 대회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열리고 최대 규모 행사라는 외형뿐 아니라 내년 10월 3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될 예정인 '문화다양성협약'에 대한 논의 등 내용적으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될 '문화콘텐츠와 예술적 표현의 다양성에 대한 협약'은 앞으로 18개월간 논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회의 결과는 유네스코의 논의과정에서 주요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주최측의 판단이다.

이번 총회에서는 2일 오후 '문화다양성 협약을 위한 유네스코 추진과정 및 국제기구들의 입장'이라는 주제로 패널 토의가 예정돼 있다. 이 토의에는 유네스코의 무니르 부세나키 문화분야 사무총장보가 직접 나와 주제발표를 할 예정이다.

로베르 필롱 CCD 대표는 이에 대해 "논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문화다양성협약이 효과적으로 실행될 수 있도록 각국 참가자들은 자국에서 법적으로 이 내용이 적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1998년 결성된 CCD는 문화예술을 자유무역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을 막고 문화다양성을 증진시키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국제연대기구로 현재 출판·영화·방송·음반·공연 등 전세계 90개국 600여개의 문화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이번이 세번째로 열리는 총회는 그동안 캐나다와 프랑스에서 2년 간격으로 열렸으며, 올해 서울 총회에서는 내년 10월 3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될 예정인 '문화다양성협약'에서 문화 전문가 단체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총회에는 국내에서 영화배우 안성기씨와 문소리씨를 포함, 문화관련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참석했다. 해외에서는 캐나다의 로베르 필롱 CCD 국제운영위원회 대표, 프랑스의 데보라 아브라모비츠 CCD 국제협력국장, 칠레의 파울로 슬라세브스키 CCD 연대 대표, 부르키나 파소의 라스마네 우에드라오고 CCD 연대 대표, 짐 맥키 CCD 국제운영위원회 대외협력국장 등이 함께 한다.

특히 라스마네 우에드라오고 대표는 자국에서 '안성기'와 같은 국민배우 출신의 현 문화부장관이라고 한다. 또 멕시코의 릴리아 아르곤씨 역시 멕시코의 최고 유명배우 출신의 국회의원이다.


영화배우 문소리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개회식에서는 타악기 그룹 '야단법석'과 어린이 예술단 '아름나라' 등의 공연과 함께 국내·외 참가자들의 환영사와 축사가 이어졌다.

김용태 서울총회 공동조직위원장은 "지킬 건 지키고 나누는 건 나누는 우리의 덕목을 전세계인들과 나누고 싶다"며 "아름다운 것은 나눌수록 커지는 것이 예술의 힘이다, 우리에게는 총과 칼이 아니라 작지만 아름다운 문화를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로베르 필롱 대표는 "문화 다양성을 위해 전세계가 자국 문화를 나누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초다국적 기업에 의해 문화는 시장중심의 영리추구의 대상이 돼버렸다"며 "이는 우리의 기준과 역행한다"고 미국 등 대규모 문화권력에 대한 경계심을 내비쳤다.

필롱 대표는 또 "각 나라의 정부는 자국 문화 발전을 위해 문화 정책을 펼쳐야 하며 동시에 자신들의 문화를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문화 다양성이 보장받을 수 있도록 모두 함께 싸워나가자"고 참가자들을 독려했다.

이번 총회에 참가한 이창동 문화부 장관(왼쪽), 로베르 필론(가운데) 그리고 개막식 사회를 본 영화배우 문소리씨(오른쪽).
이번 총회에 참가한 이창동 문화부 장관(왼쪽), 로베르 필론(가운데) 그리고 개막식 사회를 본 영화배우 문소리씨(오른쪽).오마이뉴스 강이종행
총회 마지막날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선언' 예정

이번 총회에서는 2일 '기로에 선 문화(통상과 문화, 그 갈등의 역사)'라는 주제로 문화와 문화정책이 국제통상협정에서 제외되어야 하는지, 혹은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와 같이 취급돼야 하는지에 대해 토론하게 된다. 3일에는 '성공적인 조직과 국제적 연대, 그 목적달성을 위해 : 강력한 문화협약, 통상협상에서 문화 제외, 국제연대강화'라는 주제로 오는 2005년 유네스코에서 채택할 '문화다양성협약'에 대해 논의를 하게 된다. 이날 저녁엔 일부 참가자들이 청와대 만찬에 참석한다.

마지막 날인 4일 참가자들은 '서울 선언문'을 채택한다. 선언문은 영화배우 안성기씨와 다른 3명이 각 나라의 언어로 함께 공동 발표한다. 이밖에 국내외 문화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판문점을 방문한 뒤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선언'을 발표할 예정이다.

"멕시코에선 이미 국내영화가 사라졌다"
참가자들이 밝히는 자국 문화의 위기

▲ 31일 3차 총회 관련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번 총회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이전에 비해 참가국 수가 늘었다는 것. 1회 16개국과 2회 31개국에 비해 이번 대회(3회)에는 57개국이나 됐다.

로베르 필롱 대표는 "왜 갑자기 참가자들이 늘었을까 생각해 봐야 한다"며 "문화와 무역이라는 주제 사이의 논쟁이 그만큼 커졌고 자국문화가 그만큼 위협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실제 국내 참가자를 포함, 이번 총회 참석자들은 미국 등 대규모 문화자본에 의한 자국문화 침해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었다. 멕시코의 릴리아 아르곤씨는 개막식 축사에서 "멕시코에선 이미 국내제작 영화가 사라졌다, 해마다 제작되는 영화의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며 "이는 영화가 가장 중요한 산업임을 먼저 안 미국 등 메이저 회사들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호소했다.

아르곤 씨는 또 "워너브라더스에서는 영화 <트로이>를 멕시코에서 찍으면서 '목재로 만든 거대한 말' 빈껍데기만 남겼을 뿐 우리 문화를 황폐화시켰다"고 주장했다.

칠레의 파울로 슬라세브스키 문화다양성 연대 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남미에서 멕시코, 칠레, 아르헨티나 이외에는 CCD가 결성돼 있지 않고 있다, 각국은 미국의 다국적 문화 생산기업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고 자국의 문화산업은 경쟁의 대상도 안된다"며 "자국 문화 보호정책 수립을 추진 중이거나 운영 중이지만 쉽지 않다"고 밝혔다.

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의 라스마네 우에드라오고 장관 역시 "문화 다양성은 아프리카 국가에 생존의 문제다, 경제는 이미 IMF(국제통화기금)나 IBRD(세계은행)에 지배당하고 있고 미국에 의해 문화산업은 심각하게 침해를 받고 있다"며 "문화의 다양성을 수호하는 것은 자주성을 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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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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