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 대한 애정이 미국에 대한 배신 아니다"

가택수감 들어간 로버트 김 전화 인터뷰...후원회, 8월경 방한 추진

등록 2004.06.02 13:54수정 2004.06.02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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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에 대한 애정이 지금 살고 있는 나라에 대한 배신은 결코 아니다."

7년 7개월여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현지 시각으로 1일 오전 윈체스터교도소를 나와 버지니아주 애쉬번 자택에서의 가택수감(home confinement) 생활에 들어간 로버트 김(64세·한국명 김채곤)은 "과다한 형량을 받았지만, 저의 과오를 후회하지 않는다"며 "앞으로도 한국과 동포들을 잊지 않고, 세계의 시민으로서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밝혔다.

로버트 김은 우리 시간으로 2일 오전 9시 40분부터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로버트 김 후원회 사무실에서 국제전화를 통해 진행된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여러 가지 빚진 게 많아 이를 보답하기 위해 기회가 되는 대로 열심히 봉사할 것"이라고 전했다.

약 20분간 진행된 인터뷰에서 로버트 김은 건강한 목소리로 자신의 무사석방을 고대하던 고국의 국민들에게 "한순간에 닥친 일들로 힘들고 절망스러웠지만, 여러분들의 관심과 성원 덕분에 모든 것을 견디어 낼 수 있었다"고 인사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96년 9월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도 없이 수감된 후 햇수로 9년만에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부분에서 다소 감정이 북받친 듯 목소리가 잠시 떨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질문들에 차분하게 답하며 간간이 큰 소리로 웃어 보이는 등 점차 여유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복역 당시의 로버트 김과 가족
복역 당시의 로버트 김과 가족
로버트 김은 그 간 한국 정부가 보여준 미온적 태도에 대해 "전화로 얘기하기는 그렇다. 내 과오이므로 섭섭한 일은 없었다"고 말을 아꼈다. 또 3년간의 보호관찰 사면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겠다"며 의지를 보였다. 그는 옥중에서도 모범수로 지내며 변호사 없이 감형을 신청, 1년 6개월의 형량을 덜기도 했다.

혐의 내용에 비해 형량이 과다 책정되었다는 지적과 함께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향후에도 법적 대응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는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회고록 등 저서를 집필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가장 먹고 싶은 음식으로 '김치'를 꼽은 로버트 김은 이날 오후 3시부터 연방정부 직원이 부착한 전자감응장치를 발목에 착용하는 것으로 54일간의 가택 수감에 들어갔다.

한편, 로버트 김 후원회(회장 이웅진)는 이날 '정부의 관심, 국민의 성원, 시대의 양심을 믿습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정부의 관심을 거듭 촉구했다. 후원회는 또 당초 일정을 앞당겨 이날 정오부터 종로 일대 등에서 로버트 김 돕기 가두모금을 시작했다.


이웅진 후원회장은 "미국 정부의 허락 등 법적 절차가 남아 있지만 8월 중순경 한국에 초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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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 김, 가족 품으로..."고민은 많지만 후회 없어"


"오늘이라도 한국 가고 싶어"
로버트 김 전화 인터뷰 전문

-국민들에게 드리고 싶은 인사의 말씀은?
"이제는 교도소가 아닌 집에서 여러분들께 인사드린다. 저는 6월 1일, 오늘부터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물론 출소는 아니지만 집에 오니까 너무나 좋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가택연금 상황에서 차분하게 신변을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해 나가려 한다... (중략)"

-본인과 부인의 건강상태는?
"나의 건강은 양호한 편이다. 속은 얼마나 썩었는지 모르지만(웃음). 한국에 오면 고국의 의사들로부터 건강진단을 받고 싶다. 아내가 관절염을 앓고 있는데 지금 살고 있는 집이 3층 연립주택이라서 계단이 많아 오르내리기 힘들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할 정도인데, 그 점이 안타깝다."

-부친 타계소식을 들었을 때의 심경은?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셨더라면 목소리라도 들어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이런 때라면 판사도 허가해 주었을 텐데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한국 정부의 미온적 태도에 대한 아쉬움은?
"전화로 얘기하기는 그렇다. 내 과오이므로 섭섭한 일은 없었다. 그간 성공은 못했지만 여러 방면에서 노력해 주신 것에 감사한다."

-가택연금 생활과 보호관찰 사면에 대해서는?
"행동반경이 ‘문에서 문’이다. 집 안에서만 생활할 수 있다. 다만, 종교의 자유에 따라 일요일에는 아침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허가를 받아 교회에 출석할 수 있다.

보호관찰 사면은 내 스스로 노력하겠다. 법적으로 처음 1년간은 (사면을) 건의할 수 없다. 아무 사고 없이 지내서 이 기간이 지난 후 사면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보호관찰 기간 동안 하고 싶은 일은?
"우선 가족을 사랑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가족과 친해져야 한다. 사회활동은 직업을 구해야 하고, 여러 가지 계획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흥분이 되어 차분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혐의 내용에 비해 형량이 과다 책정되었다는 목소리가 높다.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활동계획은?
"법적으로 대응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지금도 억울한 것은 만약 여기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같은 혐의로 이러한 (무거운)형량을 받지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시민권자 선서를 하면서 미국에 충성한다는 서약을 파기했다고 본보기로 형을 올렸다. 그런 점이 억울하다. 판사의 재량이므로 이 점에 대해서는 할 말 없다."

-한국 가족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나?
"방금 전 여수에 있는 동생과 통화를 했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나오게 되어 기쁘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국의 다른 식구들과도 모두 전화를 했다."

-한국 방문 계획은?
"오늘이라도 가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힘드니까,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루라도 빨리 가고 싶다." / 김범태

"차분하게 신변 정리하며 내일을 준비해 갈 것"
대한민국 국민에게 보내는 로버트 김의 인사

▲ 로버트 김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이제는 교도소가 아닌 집에서 여러분들께 인사드립니다. 저는 6월 1일, 오늘부터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출소는 아니지만 집에 오니까 너무나 좋습니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가택연금 상황에서 차분하게 신변을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해 나가려고 합니다.

지난 96년 9월 24일,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도 없이 수감된 후 햇수로 9년만에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한순간에 닥친 일들로 참 힘들고 절망스러웠지만 가족과 여러분들의 관심과 성원 덕분에 모든 것을 견디어 낼 수 있었습니다.

저의 구금은 제가 일을 시작할 때 선서한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과다한 형량을 받았지만 저는 저의 과오를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조국에 대한 애정이 지금 살고 있는 나라에 대한 배신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한국과 동포들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세계의 시민으로 열심히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조속한 시간에 여러분들을 뵙고 그간에 저와 저의 가족에 베풀어주신 관심과 성원에 머리 숙여 인사드릴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살아갈 것을 약속드리며,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여러분들과 저희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주신 모든 분들께 이 기회를 통해 감사드립니다. 또한 저의 후반인생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도 명심하면서 여러분들께 실망을 드리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부의 관심, 국민의 성원, 시대의 양심을 믿습니다”
로버트 김 후원회 성명서 전문

▲ 로버트 김 돕기 범국민지원센터 출범식 모습
세월이 약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미 해군이 보유한 북한관련 정보를 한국 정부에 넘겼다가 낳아준 조국과 30년 이상 살아온 제2의 조국 모두로부터 버림받고 8년여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로버트 김에게는 그 긴 세월이 결코 약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도 기다렸던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올 날이 불과 5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어려운 경제사정, 여전히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보호관찰 3년을 생각하면 마냥 웃을 수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로버트 김은 8년 전 자신의 선택에 대해 결코 후회하지 않으며, 우리 정부를 원망하지도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로버트 김의 모국애는 아직도 변함이 없는데, 정작 우리 정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정보를 제공받은 사실조차 부인하고, 때로는 로버트 김 개인의 일이라 외면하고, 그러다가 상황이 불리해지면 미국에 전화 몇 통화하고, 양국 정부 당직자 면담에서 몇 마디 나눈 것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동안 절망 속에서 로버트 김을 일으켜 세운 것은 가족의 헌신적인 사랑, 그리고 국민들이 보내주는 위문편지와 성금 등의 따뜻한 관심이었습니다.

이제 후원회는 그동안 우선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사면과 보호관찰을 다음 순위로 넘기고, 당장 시급한 로버트 김의 생활대책 마련에 힘을 모으려고 합니다. 물론 법적인 지위보장도 중요하지만, 여기에 치중하는 사이 로버트 김의 경제사정은 날로 나빠져서 출소 후 생계가 막막한 상태입니다. 가두모금을 위해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도 이런 절박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두모금 시작과 함께 다시 한번 정부의 관심을 촉구합니다.

지금까지는 로버트 김이 미국 시민권자라는 이유로 공식적인 입장표명을 하지 않았지만, 후원활동이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쪽으로 궤도수정 되었으니 정부도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밝히고, 구체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더 이상 미국과의 외교관계니, 시민권자니 하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고,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공식적인 지원이 어렵다면 측면에서라도 얼마든지 도울 수 있습니다.

로버트 김이 출소 후에도 여전히 사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겹게 살아간다면 그건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조국을 사랑해서 그 어려운 선택을 한 사람이 평생 그 짐을 짊어지고 가야 한다면 앞으로 누가 조국을 위해 나설 수 있겠습니까. 순수한 모국애의 대가는 자부심과 행복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로버트 김을 도와 이런 선례를 만든다면 우리의 미래는 보다 희망적일 수 있습니다. 정부의 관심, 국민의 성원, 그리고 이 시대의 양심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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