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햇살을 받고 있는 안나푸르나 사우스. 고라파니김남희
산길을 걷다 보면 종종 “미 제국주의에 죽음을! 왕정 폐지! 왕실 군대 해체!”등의 격문이 쓰인 것을 보게 됩니다. 이들이 꿈꾸는 세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지닌 나라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네팔 왕정은 이미 부패할 대로 부패했으며 대다수의 국민이 정권 교체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이 네팔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단지 이들이 계속적으로 일으키는 폭탄 테러와 그로 인해 희생된 민간인들의 사망 소식을 들을 때면 폭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새삼 물어보게 될 뿐입니다.
카트만두에 처음 도착했을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마오이스트들이 주동한 사흘간의 파업이 시작됐을 때, 놀랍게도 파업 참가율은 거의 100%에 가까울 정도였습니다. 시내의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고, 버스와 택시마저 전면 운행을 중지했습니다. 멋모르던 저는 파업 참가율이 이 정도로 높다면 마오이스트들이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함부로 가게 문을 열었다가는 폭탄 세례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깔려 있던 거였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에게도 다른 사회를 꿈꾸며 이념을 목숨처럼 받들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저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기에 급급한 자유주의자이자일 뿐이었던 저에게, 제도와 이념에 매달리던 선배들은 낯설었습니다. 어떤 제도나 이념도 인간을 뛰어 넘을 수는 없다고 믿던 저에게는 그 이념의 과격성과 단순함이 불편했던 거지요.
수많은 다양성의 집합체인 인간을 한 집단으로 묶고 한 가지 사상과 제도를 강요한다는 그 발상이 제게는 군부독재의 억압만큼이나 갑갑했습니다. 이상적으로는 완벽할지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기능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늘 인간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던 저에게는 인간의 본성과 가장 어긋나는 제도가 공산주의 같았던 거지요.
그래서 혁명의 가능성을 믿고, 체 게바라의 삶을 꿈꾸던 시절의 끝자락에 저는 늘 위태롭게 한 발만을 걸치고 있었던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