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편 아닌 개편...MBC <질풍노도 라이벌>

[방송비평]새로울 것 없는 프로그램

등록 2004.06.03 00:00수정 2004.06.0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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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BC 질풍노도 라이벌

MBC 질풍노도 라이벌 ⓒ imbc.com

지난 2002년과 2003년. 무수한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인기몰이에 성공한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MBC <강호동의 천생연분>(이하 천생연분). 남녀 연예인 버전의 <사랑의 스튜디오>라고 볼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이 방영된 후 '연예인들의 솔직한 모습이 보기 좋다', '방송은 연예인들의 놀이터가 아니다'와 같은 의견들로 찬반이 분분했다.

최근 각 방송사마다 봄 개편을 맞이 해서 새로운 프로그램이 생겨나거나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바뀌는 방식으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가운데, <천생연분>과 같이 '연예인이 대거 나와 신나게 노는' 형식의 오락 프로그램이 눈에 띈다. 남녀 연예인 사이의 사랑고백이 아닌, 나이에 상관없이 '꿇어!'라는 외침으로 시작되는 MBC <질풍노도 라이벌>이다.

출연자들의 나이와 경력은 모두 잊어라!

"이제까지 연예계의 서열을 결정짓던 출연자들의 나이와 경력은 모두 잊어라!"

<질풍노도 라이벌>의 첫 소개에 나온 말이다. 그 어떤 나이와 경력은 중요치 않고 게임 하나로만 승부를 보겠다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이 프로그램은 프로그램의 시작에 출연자들의 나이를 친절하게 적고 있다. 방송 나이인지, 실제 나이인지 의심이 가지만, 나이로 초반 서열을 암시한다. 나이를 잊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나이를 확실히 각인시킨 후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후 일대일 라이벌 전을 통해 각자의 라이벌을 정하고 팀을 짜서 팀 대 팀으로 라이벌을 다시 설정한다. 프로그램의 마지막에는 피라미드 식의 강자와 약자로 출연자를 구분한다. 라이벌 전에는 <질풍노도 라이벌>에서만 보여주는 게임이라고 해서 몇 가지 게임이 나오는데, '형님에게 딸랑딸랑', '북치기 박치기', '4:4대결 당연하지', '8:8대결 인간계산기'등 이다.

MBC의 토요일 오락프로그램의 대명사였던 <목표달성 토요일> <천생연분>을 연출한 사람은 여운혁 PD. <목표달성 토요일> <천생연분>과 같은 토요일 오후6시에 방영되는 <질풍노도 라이벌> 역시 MBC 예능국의 간판 PD인 여운혁PD가 만든 프로그램이다. 같은 아버지에게 나온 자식들이어서 그런지 <목표달성 토요일> 그리고 <천생연분>과 <질풍노도 라이벌>은 이란성 쌍둥이처럼 닮은 꼴이다.


외모는 조금 다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완벽히 같은 얼굴의 쌍둥이. 특히, 이 쌍둥이들은 커온 환경도 같고, 내재되어 있는 성격(출연자들)도 같아서 더욱 닮았다. 프로그램 속의 게임들 중 특히 '형님에게 딸랑딸랑'같은 경우, 자신의 형님으로 정해진 라이벌에게 아우로써 예를 갖추고 애교를 떨어 형님을 즐겁게 해준다는 컨셉을 가진 게임이다.

결국 스타들의 그렇고 그런 개인기를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게임에 지나지 않는다.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컨셉과 진행방식이다. <천생연분>에서 역시 섭외한 출연자들의 인기몰이를 도와주기 위한 개인기 코너가 있었다. 또한 '북치기 박치기'역시도 여운혁PD가 꽤나 오래 전에 연출했던 <목표달성 토요일> 가운데 '동거동락'이라는 서브 프로그램과 비슷한 컨셉이다. '동거동락'에서는 방석을 이용한 퀴즈 맞추기 였다면, <질풍노도 라이벌>에서는 북과 박을 이용한 퀴즈인 셈이다.


<천생연분>이 남녀스타들 사이의 미묘한 이끌림을 허구의 전파 속에 만들어내서 하나의 재미를 주었다면, <질풍노도 라이벌>은 스타들 사이의 선후배, 나이와 같은 위계를 게임을 통해 위배하는 데에서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준다. 또한 이 프로그램이 형 격의 프로그램인 <천생연분>과 다른 유일한 이유이기도 하다. 더불어 <목표달성 토요일>과는 1대1 라이벌전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 차별화 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형님 따라 강남 가렵니다.

a MBC 질풍노도 라이벌

MBC 질풍노도 라이벌 ⓒ imbc.com

최근 대부분의 버라이어티쇼가 시청자들에게 외면 받는 가운데, 시작한 지 3주째에 접어드는 <질풍노도 라이벌>은 어떨까. 대답은 '글쎄'다. <질풍노도 라이벌>은 여운혁 PD의 전작들의 단점이자 장점들을 모두 껴안고 있다. 출연자들의 개인기나 능력을 적절히 활용, 운영의 묘를 보여주며 재미를 이끌어내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TV오락 프로의 게임을 통한 선정성은 이미 익히 알려진 바이고, 스타 중심으로 이끌어가려는 제작 관행 역시 알려진 바대로 문제가 많다.

더불어 상업방송으로서의 한계점은 모든 연예오락프로그램이 안고 있는 것이다. <질풍노도 라이벌> 역시 이 문제들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듯 보인다. 라이벌 선정이라고는 하지만, 토요일 6시에 보기에는 민망한 포즈들이 게임 중간중간 보여지고, 한 번이라도 전파를 더 타보려는 신인들의 엽기스러운 노력이 돋보인다. 또한 MC인 이훈과 윤정수의 미흡한 진행도 한계로 꼽힌다.

오락프로그램이라도 MC가 프로그램의 중심에서 조율하는 미덕이 있어야 하지만, 프로그램은 지나치게 산만해 보이고, 마치 연예인의 '놀이터'를 방불케 한다. 출연 연예인들은 언행과 행동에 있어서 방송용과 비방송용을 위태위태 움직인다. 프로그램의 기획력 또한 그렇다. <질풍노도 라이벌>이 방영되기 전에 있었던 여러 버라이어티쇼의 게임과 별반 다르지 않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타 방송사에서 했었던 같은 포맷의 프로그램까지 따라한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특히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인, 라이벌선정이다.

라이벌이 아닌 것을 억지로 만드는 과정과 게임 진행 중에 라이벌은 온데 없고 스타들의 개인기와 '노는 모습'만 보여준다. 스타들의 노는 모습에는 버라이어티 쇼의 진부함과 변하지 않았던 공식이 그대로 담겨 있다. 작가들이 써준 말과 행동으로 노는 모습은 그리 재미있어 보이지 않는다. 누가 대박 컨셉의 놀기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프로그램이 재미있어지고, 재미없어지고. 또는 연예계 2년차, 3년차가 되고, 숨어있는 연예인이 되는 것이다.

오락프로그램에게 교양프로와 같은 고고함과 교육적 효과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웃기지 말라는 것도 아니며, 오락프로에 나온 출연자가 고정된 표정과 말투를 가져달라는 것도 아니다.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되 새로운 컨셉의, 공중의 전파가 아깝지 않은 오락을 원하는 것도 사치일까.

<질풍노도 라이벌>의 형 격인 <목표달성 토요일>과 <천생연분>은 수많은 이슈를 만들면서 높은 시청률을 올렸다. 시청률은 뉴스를 포함한 모든 프로그램의 미덕이 되어 버린 지 오래이다. 연예오락프로그램은 특히 그 정도가 심하다. <질풍노도 라이벌>이 시청률과 건강하고 '정말' 재미있는 웃음을 주는 데 성공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형님만한 아우가 없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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