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세월을 넘어 핀 '인동초'

내게로 다가온 꽃들(58)

등록 2004.06.05 22:42수정 2004.06.0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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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인동초의 꽃이 산과 들에서 피어나기 시작하면 이젠 봄이 막 끝나고 여름이 시작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인동초(忍冬草)는 기나긴 겨울도 넉넉하게 견디어 냅니다. 제주에서는 햇살 바른 양지의 돌담에 기대어 한 겨울에도 상록의 이파리를 간직하고 있기도 합니다.

인동초는 금은화(金銀花), 이화(二花), 금은등(金銀藤)말고도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우는 꽃입니다. 위에서 소개해 드린 이름을 보시고 아셨겠지만 인동초의 꽃이 흰꽃과 노랑꽃이 함께 어우러져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하얗게 피어난 후에 점차로 노란색으로 변해가는 것이지요.


김민수
역대 대통령을 지내신 분 중에서 '인동초'를 좋아하시는 분이 있어서 한동안 인동초의 인기가 좋았습니다. 저도 그 때 '인동초'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고, 꽃을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인동초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인동초는 꿀이 참 많은 꽃입니다. 어쩌면 꿀풀보다도 많은 꿀을 담고 있어서 꽃술을 잡아 빼면 꿀이 이슬방울처럼 '툭!'하고 튀어나옵니다. 아니면 꽃을 따서 꽃받침 부분을 따내고 '쪽!'빨면 달콤한 꿀이 입안 가득하게 퍼집니다. 꿀풀이 시샘을 할 정도로 말입니다.

인동초는 꽃과 이파리, 줄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된다고 합니다. 꽃과 이파리와 줄기는 그늘에 말려서 차(茶)로 사용할 수도 있고, 덩굴은 질겨서 바구니같은 것을 만들면 안성마춤이라고 합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소중한 우리 꽃입니다.

김민수
인동초를 뜰에 심을 요량으로 줄기를 조금 잘라왔습니다. 아무 때나 줄기를 잘라서 삽목을 해도 잘 자란다고 해서 미안하지 않을 정도 덩굴을 잘라오는 길에 제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신 분을 만나 인동초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꿀은 꽃술을 빼서 먹는 것이 좋으며, 어릴 때는 꽃만 따서 동네 구멍가게에 팔아 용돈으로 쓰기도 했답니다. 한 되에 얼마 하는 식으로 구멍가게에서 인동꽃을 사니 동네 아이들이 인동초가 피는 계절이면 들판으로 나가 인동꽃을 따느라 꽤 분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인동꽃이 지고 장마철이 되면 지네도 잡아다 팔았으며 인동꽃 보다는 지네를 잡아 파는 것이 벌이가 쏠쏠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습니다.

김민수
겨울을 잘 참고 견딘다 하여 붙여진 이름 '인동(忍冬)'은 다른 여러 이름들보다도 정겹습니다. 인동초의 꽃을 잘 보면 쌍쌍이 짝을 이루어 핍니다. 추운 겨울을 홀로 견디려면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그 추운 겨울 서로를 위로해 주며 껴안아 주었던 그 흔적들이 이렇게 함께 짝을 이루어 핀 것은 아닐런지요.


삶의 여정에서 홀로 감당하기 어려운 인생의 무게가 있습니다. 이렇게 힘들 때 곁에 누군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자기를 지켜보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 큰 힘을 얻고, 함께 짐을 나눠질 때 '우리'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이겠지요.

김민수
고난의 맛도 알고, 이파리며 꽃, 줄기에 이르기까지 소용없는 것이 없고, 게다가 아무 때나 줄기만 꺾어서 꽂아 놓아도 뿌리를 내리는 인동초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거기에다 마치 백의를 입은 듯 순백의 빛을 간직하고 태어났다가 변하지 않는 금빛으로 변신하는 그 조화로움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뭔가 한 마디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단지 선명하게 떠오르는 단어는 '고난' 또는 '인내'라는 말입니다.

김민수
삶의 여정에서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옵니다. 이러한 때에 참음으로, 인내함으로 성장을 합니다. 고난이 나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의 삶을 성장시키기 위한 통과제의인 것이죠. 그렇게 왔다가는 삶의 흔적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인내하는 시간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 고난을 어떻게 대하고,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도 달라질 것입니다.

'고난이 닥칠 때 그걸 뿌리치려 하지말고 삶의 일부로, 친구로 받아들여라.'

이런 말을 인동초가 들려주는 듯 합니다.

천상(天上)을 향하는 덩굴의 마음
동토의 온갖 아픔을 모두어 담고
행여나 겨울의 추위가 남았을까
속내에 들어있는 꿈같은 것들을 보듬고
초여름 산들바람에 흰눈을 피우고
따가운 햇살에 행여 흰눈 녹을까
하늘을 향해 온 몸을 풀무질하여
변하지 않는 금으로 다시 태어나
천상을 향하는 인동초
<자작시-인동초>

김민수
그 말이 또 그렇게 설득력이 있는 것은 그에게 인고의 세월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픔 속에서 방황하는 이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보다 더 큰 아픔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고 하지요.

여름꽃 인동초가 피었으니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자연에게 있어서 여름은 뜨거운 태양이 온 몸을 말리는 경험을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태풍으로 온 몸이 찢겨나가기도 하는 계절입니다. 그런데 사계 중에서 가장 건강하게 쑥쑥 자라나는 시기가 바로 여름입니다. 어쩌면 고난을 오히려 삶의 에너지로 삼고 살아가는 비결을 자연은 알고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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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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