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왜 늦게 이승길을 떠나셨을까

극단 차이무의 <양덕원 이야기>를 보고

등록 2004.06.06 11:51수정 2004.06.0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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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덕원 이야기> 포스터
<양덕원 이야기> 포스터극단 차이무
벌써 한여름 날씨다. 무더위 속에 낮과 밤의 구분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내 아버지도 한 여름이 될 즈음에 돌아가셨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 거리에서 아버지를 닮은 어른을 보면 가슴이 멈춰지는 듯하다.

아버지의 죽음을 예견하며 모이게 되는 세 남매의 이야기가 전부인 이 극은 제목 <양덕원 이야기>에서 느끼듯 매우 친근하다. 그 옛날 동네 사람들의 쉼터인 느티나무 아래에 모인 것처럼 관객은 옹기종기 모여있다.


낯익은 무대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시골 마당이 있다. 나무로 만들어진 평상과 마당 한 가운데 우뚝 솟은 가족사 같은 고목과 비록 등장하진 않지만 금세라도 컹컹 지으며 나타날 것만 같은 개 한 마리가 있다.

극이 시작하면서 큰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3일안에 돌아가신다는 말에 모인 가족은 아버지의 죽음마저도 바쁜 일상 때문에 귀찮아할 수 있는, 그야말로 현대인의 표상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염을 맡아하는 동네 아저씨는 아버지가 그저 편하게 가길 바라며 분주하게 집을 오가지만 결국 아버지는 삼일이 아닌 삼개월이 되어서야 세상을 등진다. 그 사이 세 남매는 어렸을 때 가난했지만 끈끈한 정을 느끼며 산 추억을 한겹한겹 벗겨내며 웃다울다 급기야 싸우기까지 한다.

성장하여 도시로 나간 남매들이 가족의 이름으로 모여든 시골집 마당엔 어린 시절의 장난기와 작은 분노가 쌓인 서운함이 남아 있다. 그러면서 세 남매는 서운함을 표출하며 웃다울다 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기다리다 못해 모두 자기 일상으로 돌아간 자식들은 끝내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주지 못한다.


이 극을 보면서 내내 드는 생각은 자식의 성공을 통해 부모가 덕보는 일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스스로 잘 살면 그 뿐. 게다가 배우자를 잃고 홀로 남아있을 어머니에 대한 배려가 보이지 않는다. 그 어머니는 늘 그랬던 것처럼 자식들의 배웅길에 보따리를 안겨준다. 그저 주기에 바쁠 뿐이다. 자신의 아픔은 그저 자기것으로 고스란히 남겨둔 채 말이다.

연극을 보며 생각한 것들을 정리해본다.


하나, 극이지만 극 같지 않아 편안하게 웃고 울 수 있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를 두고 그들의 유년을 꺼내보며 웃고 울고 싸우는가 하면, 갈등 장면에서 목소리가 높아지지만 이내 서로를 감싸안는 형제애를 엿볼 수 있다.

거기에 아버지와 함께 했던 일을 기억하며 아버지의 염은 손수 하겠노라 하는 동네아저씨의 걸진 입담과 재치 또한 구수한 향토애를 느끼게 한다.

둘, 느려서 어눌하기까지 한 경기도 사투리는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극에 몰입하게 하고, 바로 옆집 이야기이며 내 이야기임을 느끼게 해준다.

셋, 관객과의 의사소통이 자연스럽고 재밌다.
집에서 키우는 개의 역할을 관객에게 맡김으로써 재미를 주기도 했다.

넷. 신비로움을 갖춘 장치가 여운을 남긴다.
아버지의 생명이 길어졌다. 그것은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가족 간의 모든 갈등을 해소시키고자 하는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마당 한 가운데 걸림돌처럼 서있던 고목에 꽃이 핀다. 집안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오래도록 지켜볼 그 나무는 아버지의 거듭남의 표시인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어머니의 역할과 극 중 어머니에 대한 배려다.

가까이서 배우를 보게 되어서인지 분장이 미숙하다는 게 느껴졌다. 때문에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표현이 어설펐다. 내용면에서도 홀로된 어머니에 대한 자식들의 배려가 없어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배우자를 잃은 슬픔이 제일 크다는데 말이다.

두번째, 두 아들의 가족 모습이 아내와 자녀를 배제한 채 그저 핸드폰으로만 보여주고 있어 비정한 가족의 현실을 되짚어 보게 하고, 반성하게 한다. 작가가 이 부분까지 넣어 만들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세번째, 죽은 아버지에 대한 여운이 없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장례를 치르고 홀가분하게 집을 떠나는 세 남매.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지 못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죽음은 그저 통과의례일 뿐 슬픔 따윈 가슴 속에나 담아두는 일쯤으로 여겨지는 것이 현실인지도.

막이 내려 나오는데 사람들 몇몇은 눈물을 닦는 중이었다. 생각이 참 많을 것같은 저녁이었다. 돌아오면서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씩씩하게 받으시는 어머니의 목소리. 아마도 어머니는 마당 한 켠에 아버지 구두를 놓으셨을 게다. 그렇게 아버지는 어머니 곁에 지금의 내 곁에 함께 살아가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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