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호랑이 이야기 36

서천꽃밭의 화완포

등록 2004.06.07 06:23수정 2004.06.07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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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나가자, 저 누에녀석들은 낯선 사람이 들어오면 좀 짜증을 내거든."

할머니가 바리의 등을 떠밀며 하시는 말이었습니다.


누에가 자라는 방을 나가자 그 밖에는 그 곳에 내리고 있는 눈꽃송이처럼 하얀 옷을 입은 언니들이 그 곳을 가득 메우고는 물레에 앉아 실을 뽑고 있었습니다. 꼭 눈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덜거덕 덜거덕

그 언니들이 만드는 물레소리도 마치 음악소리인양 박자에 맞추어 여기 저기 울려펴졌습니다.

그 중 한명이 다가오더니 바리에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어머, 바리구나, 만나서 반갑구나. 이곳은 빙잠고치에서 실을 만드는 선녀들이 일하는 방이야."


바리가 물었습니다.

"여기 있는 언니들도 전부 다 선녀들이에요?"
"그럼, 물론이지, 전부 바리에게 줄 예쁜 옷을 만드느라 저렇게 바쁜거라구. 바리 몸에 맞는 옷을 만들게 잠시 치수를 좀 재자꾸나."


바리는 가게에서 옷을 고르듯이 팔을 위로 쭉 뻗었습니다 .

그 모습을 본 진달래 언니는 깔깔 대고 웃었습니다.

하얀 옷의 선녀는 자 같은 것을 꺼내어 키를 재지는 않고, 바리의 팔을 잡고는 앞에 실이 솜처럼 무더기로 쌓여있는 벽에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선녀는 다짜고짜 바리를 밀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나."

놀란 바리가 소리를 지르면서 벽에 고꾸라졌습니다. 그것은 빙잠에서 나온 실이었습니다. 그 실들은 바리의 몸에 슬슬 기어오르면서 바리 몸에 맞는 옷을 순식간에 만들어버렸습니다.

다리를 툴툴 털고 일어난 바리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하얀 옷을 뒤집어 쓰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 궁금했지만, 거울이 없어서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 생각을 아시는지 할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염려마라, 아주 예쁘다."

빙잠들이 자라는 오두막을 나온 세 명은 전부 다시 꽃밭으로 나왔습니다. 진달래 언니는 옷을 예쁘게 개어서 보자기에 넣어 바리의 손에 들러주었습니다. 바리도 시간이 많이 없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조왕신과 함께 하늘나라에 올라갈 12월 29일에 맞추려면 시간이 없었습니다.

서천꽃밭에 계신 할머니를 다시 볼 수 있을지는 몰랐지만 할머니와 헤어지는 길이 그다지 슬프지는 않았습니다. 바리는 할머니에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꼭 다시 올게요. 그리고 우리 엄마 아빠 만나면 할머니 여기서 꽃들 돌보시면서 행복하게 사신다고 꼭 말씀 드릴게요."

할머니는 바리를 꼭 껴안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이 할머니는 바리를 믿는다. 꼭 엄마 아빠 만나서 이 할미는 여기서 잘 지낸다고 전해다우."

할머니는 걱정스러운 눈빛이 가득했지만 눈물은 흘리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에 바리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멀고 힘들어도, 가야할 사람은 꼭 가야하는 곳이 있단다. 바리는 그 곳에 꼭 가게 될거야. 그러니까 가는 길이 힘들고 너무 멀어도 포기하지 말거라."

그 때 애꾸눈 꽃감관 아저씨가 다가오더니 말했습니다.

"자, 내가 길을 안내해 줄테니 나가자꾸나."

바리는 그 아저씨의 눈 한쪽이 어찌 되었는지 궁금한 생각에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바리에게 말했습니다.

"이 녀석, 그렇게 어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 쓰나…."

꽃감관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하긴 이 서천꽃밭에 애꾸눈은 나밖에 없지. 몇 년 전 산오뚝이들이 날아들어와서 꽃들을 훔쳐가던 날 그 때 눈을 다쳐서 한쪽 눈을 쓸 수가 없게 됐다. 그러니까 바리 네가 열심히 싸워서 내 복수를 해줘야한다. 알겠지?"

진달래 언니가 끼어들었습니다 .

"어린 아이에게 너무 심한 걸 가르치시네요. 복수라뇨…"

진달래 언니는 눈을 흘깃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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