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동맹 강화되고 한미동맹 약화된다?

[주장] 한미동맹의 균열은 전략적 이익이 다르기 때문

등록 2004.06.07 15:33수정 2004.06.07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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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의 재편을 비롯한 한미동맹 재조정 협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가운데, 미일동맹 역시 급속도로 재편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를 두고 이른바 '조중동' 등 대다수 보수파들은 미국이 일본을 핵심적인 동맹 국가로 삼는 반면에 한국과의 동맹을 격하시키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어, 이를 둘러싼 논란도 커지고 있다.

특히 이들은 이러한 사태를 초래한 원인을 한국의 반미감정과 노무현 정부의 반미노선에서 찾고 있다. 한국이 미국에게 밉보이면서 한미동맹의 균열이 발생하고 이에 따라 미국이 미일동맹 강화 노선을 선택했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볼 때, 미국이 주한미군을 감축시키면서도 주일미군은 증강시키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이는 설득력 있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아시아-태평양의 전략적 중심축을 '미일동맹'에 둬왔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뿐더러, 주한미군의 총군사력 역시 크게 강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근거 없는' 정치 공세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6월 21일 반핵반김 한미동맹 강화 6.25국민대회에서 15만여명의 참석자들이 한국전 참전국들의 국기와 태극기, 성조기의 입장행사를 하고 있다.
지난해 6월 21일 반핵반김 한미동맹 강화 6.25국민대회에서 15만여명의 참석자들이 한국전 참전국들의 국기와 태극기, 성조기의 입장행사를 하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부시, "일본을 아시아의 영국으로"

실제로 미국은 탈냉전 이후 미일동맹을 아태 지역의 전략적 중심축으로 삼고자 해왔다. 이미 1995년 당시 국방부 차관보였던 조셉 나이는 '동아시아 전략보고서'를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수호하고 패권국가의 등장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미일동맹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현재 미국의 국방부 부장관과 국무부 부장관을 맡고 있는 폴 월포위츠와 리처드 아미티지 등이 주축이 돼 2000년 10월 작성한 보고서를 통해 미일동맹을 미영동맹 수준으로 격상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은 "일본을 아시아의 영국으로"라는 슬로건이 말해주듯 부시 행정부 출범이후 동아시아 전략의 요체가 되어왔다.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최근 미일동맹이 강화되고 있는 것은 결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뿐더러, 이러한 현상이 한국이 미국의 감정을 상하게 해 나타나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왜 미일동맹은 한미동맹보다 강화되고 있는가?

그렇다면 왜 미국은 한국보다 일본을 중요한 동맹국으로 인식하고 있고, 이에 따라 미일동맹이 강화되고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미국은 세계전략 차원에서 전략적 목표를 한국보다는 일본과 공유할 수 있는 폭과 깊이가 넓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미일 양국이 대체로 합의하고 공유하고 있는 전략적 목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북한 등 미국이 지목한 이른바 "깡패국가"들이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확산하는 것을 막는 것이고, 둘째는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패권국가로 부상하는 것을 사전에 억제시키며, 셋째 테러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과 일본은 대중국 봉쇄 전략을 미일동맹 강화의 핵심적인 축으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미일동맹은 미사일방어체제(MD)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PSI)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면서 주일미군과 자위대의 군사적 통합도 강화시켜 나가고 있다. 물론 일본의 군사대국화 경향 역시 부시의 응원에 힘입은 바가 크다.

문제는 미일간의 이와 같은 전략적 목표를 한국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입장에서는 자국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면, 북한의 핵무장을 저지하기 위해 무력 사용까지 고려할 수 있지만,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민족공동체의 소멸을 의미하는 우리로서는 절대로 고려할 수 있는 방법이다. 쉽게 말해 미국과 일본은 북한의 핵무장 저지가 대북정책의 전략적 목표에 해당하지만, 우리는 전쟁 방지가 더 큰 전략적 목표라는 것이다.

중국 봉쇄 전략도 마찬가지이다. 미일동맹은 중국을 21세기의 주적으로 보면서 반(反) 중국 동맹을 형성할 수 있지만, 지리적 인접성과 경제관계를 고려할 때 한국이 중국 봉쇄 전략에 참여하는 것은 21세기의 핵심적인 국익을 스스로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대만과 중국 사이에 무력 충돌이 발생했을 때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을 고려해 개입한다는 것은,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끈다며 불길로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한미동맹이 '지역동맹화' 되는 것이나 한국이 MD나 PSI 등 미국 주도의 신군사전략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온 것이다.

한미동맹에 대한 눈높이를 낮춰야

부인할 수 없는 것은 한국과 미국 사이에 '전략적 목표에 대한 긴장'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이에 따라 한미동맹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한미동맹을 지역동맹화하려는 반면에, 한국은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를 의식해 난색을 표명하는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보고 중국을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하는 한, 한미간의 이와 같은 근본적인 긴장은 해소될 수 없다.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과 중국과의 우호협력관계의 발전에 사활적인 이해를 갖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도, 중국을 적으로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렵더라도 한국은 미국에게 이 점을 분명히 주지시켜야 한다. 북한의 핵무장을 막는 것이 중요한 목표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철저하게 평화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중국을 적으로 만들 수 있는 한미동맹의 지역동맹화는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한국이 이러한 입장을 선택할 경우, 미국은 "한국이 미국을 등지고 중국을 선택하려고 한다"며 한미동맹을 깨고 미일동맹의 강화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성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패권전략의 핵심에는 중국이 다른 강대국이나 중위국가(middle power state)와 동맹관계를 맺는 것을 막는 것이 있다. 중국이 혼자서는 미국에 필적하기 힘들지만, 다른 국가와 동맹을 맺을 경우 중국의 영향력이 크게 강화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국이나 통일코리아가 강대국까지는 아니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국력과 지정학적 위치를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미국이 '한중동맹의 태동'을 가져올 수 있는 '한미동맹의 파기'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한미동맹의 파기'가 '미일동맹의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는 것도 무리가 따른다. 동아시아에서 동맹의 부담을 일본 혼자 짊어진다는 것은 일본으로서는 대단히 부담스러운 일이 될 뿐만 아니라, 일본의 여론도 이를 쉽게 수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략가들이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을 주둔시켜야 한다는 주장의 이면에는 주한미군의 철수가 주일미군의 철수에 대한 압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한미동맹 재조정에 대한 우리의 목표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과 통일실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유연화된 동맹'을 만드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한미동맹을 어떤 일이 있어도 유지·강화해야 할 '목표'로 바라보던 눈높이를 낮춰, 우리의 국익과 전략적 목표를 실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보는 데에 있다. 즉, 미국이 우리의 국익과 전략적 목표의 희생까지 강요할 경우, 한미동맹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연한 자세를 보일 때에만, 대미 협상력이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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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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