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미국과의 협력적 안보를 바탕으로 동북아 지역안보체제 아래서 자부 국방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미동맹과 자주국방이 양립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구시대적 견해라는 말도 했다.
이에 대해 현 한미방위조약 아래서의 주한미군 주둔을 전제로 한 '자주'와 '자주국방'의 개념이 성립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진 사람이 많다. 이름은 자주국방이지만 외세인 미군에 의지하고 예속된 상태에서 자주국방이란 하나의 형용모순이며 한낮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자주국방을 거론하기 위해서는 '자주'와 관련있는 주한미군의 장래에 대해 분명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것을 하지도 않고 자주를 운운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이들의 소박한 의문이다.
5월 28일 국가인권위 배움터에서 민족화합운동연합(민화련), 영세중립협의회, 남이랑북이랑 등 3개 단체가 공동 주최하고 민화련이 주관한 '6자회담과 한반도 중립화 토론회'는 이런 소박한 의문에 답하려는 하나의 대안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한반도 영세중립화에 관해 심도 깊은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 토론회는 노무현 정부가 표방하는 미국과의 협력적 예속적 '자주국방' 개념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스위스와 같은 영세중립 자주국방 개념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신선한 문제제기였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이 토론회에서 나온 내용을 요약 발췌한다...<필자 주>
6자회담과 중립화
6자회담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이다. 이 회담에서 북측은 자신에 대한 안전보장과 전력생산 등 경제 손실에 대한 보상을 확실히 받을 수 없는 한 절대로 핵을 포기할 수 없다고 버틸 것이다. 그러므로 협상의 초점은 북의 이러한 요구를 어떻게 충족시켜줄 수 있는지가 될 것이다. 북은 체제보장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에 불가침조약 체결과 이에 대한 주변 5국의 연대보장을 요구할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단기적 관점에서 보면 우선 상호간 불신 제거와 확실한 안전보장 이래서 북핵문제에 대한 타협을 이루어내는 것이 6자회담의 당면한 과제이다. 그러나 그런 토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동북아 안전보장체제와 같은 다자간 국제협약을 통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확립의 문제가 의제에 올라올 것을 전망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도 다자간 안전보장방안을 시야에 넣으면서 이른바 미국과의 안보협력 아래서의 '자주국방'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대로라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미 군사동맹의 테두리 안에서 상대적인 '자주성'과 '독자성'을 넓혀간다는 것 이상의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런 전제 아래서의 다자간 집단안보체제라면 이에 대한 북한의 동의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이나 러시아도 동조하지 않을 것은 거의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허구적이고 말장난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대부분의 관측자들의 일치된 견해인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당면한 문제는 북핵과 북에 대한 안전보장 문제
<연합뉴스> 6월 2일자 보도에 의하면 북의 <노동신문>은 북측 학자의 다음과 같은 견해를 실었다. 즉 미국과 일부 유관국들 사이에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틀'을 염두에 둔 '동북아 안보기구 구상'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것은 현실과 거리가 먼 시기상조 논의"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개인 필명의 논평을 통해 큰 분쟁이 없었던 유럽의 안보기구도 창설 논의부터 발족까지 40여 년이 걸렸다고 지적한 후 동북아지역은 현재 가장 초보적인 신뢰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면서 "집단적 안보에서 초석을 이루는 것은 신뢰구축"이라며 "집단의 구성원들 사이의 확고한 믿음이 없이는 전쟁, 평화와 같은 공동의 중대하고 전략적인 안보사업을 다룰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라고 주장했다.
신문은 이어 "동북아 지역에서는 날이 갈수록 불신과 대립이 커가고 있고 지역나라들 사이에 아직까지 정상적인 국가 관계가 없는 것은 물론 긴절하게(절실하게)해결을 기다리는 영토분쟁문제, 통일문제 등 복잡한 정치적 문제들이 쌓여 있다"면서 "동북아시아의 경우에는 신뢰조성이 특별히 중요하며 선차적이다"고 주장했다.
노동신문은 동북아의 세력구도가 지역패권을 추구하는 미국과 그에 대항하는 세력 사이의 대립과 경쟁으로 이뤄져 있고 미일의 대북 적대정책으로 북-미, 북-일간 국교가 수립되지 못하고 있다며 "지역의 복잡한 정세는 '동북아시아 안보기구 구상'이 객관적 현실을 무시한 주관적 욕망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기적으로는 중립화에 의한 다자간 안보체제가 필연적 추세?
단기적으로 보면 이런 견해가 옳게 보이는 면도 없지 않다는 지적이다. 우선 급한 불부터 꺼놓고 장기적인 비젼을 탁상에 올려놓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단기적 관점을 벗어나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한반도 영세중립화 문제가 하나의 방안으로 제기될 필연성이 있다는 것이 전기한 ‘6자회담과 중립화’ 토론회에 참석한 참석자들의 거의 일치된 견해였다.
특히 주제발표에 나선 중립화협의회장 강종일 박사는 6자가 다 같이 승인할 수 있는 것은 반도의 영세중립통일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당위성과 현실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발제문 전문은 www.hwahap.org 자료실 참조)
첫째, 한반도의 지정학이다.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교차지역이며 세계 4대 강국의 국가이해가 상충되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둘째, 한반도의 국력이다. 통일된 한반도의 국력은 주변 4강에 비해 GDP는 3.0%, 군사비 3.7%, 인구 3.7%, 영토 0.6% 밖에 되지 않는다. 자력을 위한 국력이 미약하다.
셋째, 통일된 한반도의 안보유지 문제이다. 한 국가의 안보는 자립, 동맹, 중립의 세 가지 방법 중 한가지를 택하게 된다. 자립은 상기 국력의 열세로 어려움이 있고, 강대국과의 동맹은 안보를 유지할 수는 있으나 동맹국의 간섭을 받게 된다. 따라서 중립의 방법이 바람직하다.
넷째, 영세중립의 대상 국가이다. 블랙 교수에 의하면 영세중립의 대상국가는 신생독립국가, 분단국가, 강대국과 강대국의 교량적 역할을 하는 국가, 침략을 많이 받은 국가, 강대국에 포위된 국가 등이 우선 대상이다. 한국은 위 모두에 해당된다.
다섯째, 한국인의 당파성의 문제다. 역사적으로 한민족은 국가안보와 권력획득을 목적으로 주변국가의 지지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파벌을 형성했다. 조선시대의 친일파, 친중파, 친러파와, 오늘날 한국의 자주파와 동맹파의 대립도 같은 맥락이다.
끝으로, 남북과 주변국가의 이래관계가 중립화를 요구하고 있다. 여론조사(한국일보 1960년 1월 15일자)에 의하면 한국인의 32.1%가 영세중립통일을 희망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1989년 6월 한반도는 통일 후 오스트리아와 같은 영세중립국으로 갈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의 유력한 민민운동단체 가운데 민화련이나 전국연합같이 중립화 아래서의 자주국방을 강령으로 내세운 단체들도 있다. 김일성은 생존 시 3회에 걸쳐 중립통일을 제의했다 (1980년, 1985년, 1993년). 김정일도 한반도의 스위스 식 무장중립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 덜레스 국무장관은 1953년 6월 한국의 중립방안에 서명하고, 이를 국가안보회의(NSC)에 상정하였으나 합동참모본부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 후 주한 미군이 부분 철수할 때마다 미국의 저명한 인사들은 한국의 중립을 주장했다.
예를 들면 1960년 10월 마이크 맨스필드 상원의원을 비롯하여, 라이샤워, 스칼라피노, 브레신스키, 해리슨 등이 한반도의 중립통일을 주장했다. 중국학자의 61. 9%가 한반도의 영세중립통일을 지지하고 있다. 러시아의 학자 38.5%가 한반도의 영세중립통일을 찬성하고 있다.
한반도 중립화 통일의 로드맵
강종일 박사는 이어 한반도의 영세중립통일은 상이한 접근이 가능하다면서, 편의상 다음과 같은 5단계를 생각할 수 있다고 보았다.
1단계 신뢰회복- 남북 간 신뢰회복을 위해 현재와 같이 인적, 물적, 교류를 증진하고 활성화한다. 우선 남북은 평화선언과 불가침선언과, 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을 준수한다.
2단계 제도개선- 남북한 제도의 정비단계로 상대가 개정을 요구하는 제반 제도를 개정 보완한다. 예를 들면, 남한은 보안법을 폐지하고, 북한은 노동당 규약 전문을 개정하며, 남북은 현재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한 후 감군을 실현시킨다.
3단계 연합제 또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 - 남북은 각기 외교권과 국방권을 가지며, 형식적인 연합제를 위해 남북한의 100명의 대표가 한민족통일최고회의를 구성한다. 한민족통일최고회의는 통일에 필요한 제도와 절차를 제정하여 남북정부에 권고한다. 동 회의는 통일에 대비하여 통일헌법을 기초한다. 이 단계에서는 남북이 군비를 25만 명 선으로 감축하고 경제협력에 치중한다.
4단계 남북한이 영세중립국을 실현한다 - 남북은 각기 국방과 외교권을 보유하며 각자 헌법에 영세중립국 조항을 제정하고 한반도의 영세중립 문제를 주변4강과 협의한다. 즉, 남과 북이 별도로 영세중립국이 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남북은 영세중립국을 선포하고 중립국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이행한다. 4단계가 실현되면 주한 외국군은 완전히 철수한다.
5단계 통일실현- 남북은 영세중립국으로서 통일헌법에 의하여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선출한다. 통일대통령은 남북 정부로부터 국방과 외교권을 포함한 모든 권한을 인수한다.
한반도가 영세중립으로 통일하기 위해서는 우선 남한이 이니시어티브를 가지고 북한과 주변 4강을 설득해야 한다. 한국은 그러한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영세중립 통일실현은 남북한 정부와 국민들의 의지여하에 달려있다. 남한은 주변 4강과 외교관계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면서 한반도의 평화통일 역량을 확대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이 한국을 중립시키려 했고, 북한도 중립통일정책을 표방하였으며, 중국과 러시아의 학자들도 한반도의 친 미국적 통일보다는 영세중립통일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의 정치지도자와 국민들이 영세중립통일에 대한 확고한 결의와 의지를 가지고 북한과 4강에 제의한다면, 한반도의 영세중립통일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이 강종일 박사의 결론이다.
한반도 중립화 문제는 단기적 관점에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될 시점이 아니라는 북한 학자의 지적에도 일리는 있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우선 시급한 것은 한반도 이해당사국 상호간의 안보에 대한 신뢰의 확립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자간 안보체제의 문제나 그 하나의 방안으로서의 영세중립화의 문제 등은 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 북에 대한 불가침 약속, 북미 북일 수교 등 긴급한 현안이 해결되어야만 논의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다음 문제는 필연적으로 주한미군문제와 한반도 통일문제를 포함 동북아 안전보장기구의 문제로 옮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논의 과정에서 한반도 영세중립화 방안도 하나의 선택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점에서 지금부터 영세중립화의 문제를 심도 있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강종일 박사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안보불안은 중립화로 불식시킬 수 있다?
특히 한반도의 중립화는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의 철수 또는 평화유지군으로의 역할 변경을 전제로 한다. 그것을 수반하지 않는 중립화란 생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반도 중립화는 즉각적인 주한미군 철수 주장에 대한 보다 실현가능한 대안으로서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최근 한겨레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주한미군 감축은 10명 중 5명 이상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주한미군이 감축하더라도 60% 이상은 한반도 안보에 끼칠 영향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우리 국민 10명 가운데 8명은 변함없이 미군의 한국주둔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었다. (한겨레 5. 30)
이런 상황 아래서 확실한 대안도 없이 즉각적인 미군철수를 주장하면 대다수 국민은 매우 불안해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국민으로부터 고립화될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또 그런 주장을 한다한들 현실적으로 미군이 철수할 여건이 조성되기도 전에 철수한다고 기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지금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조차 미군이 지금 당장 나갈 것으로 보고 그런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미군은 외국군대임으로 주권국가인 한국에 영구히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원칙론적 선언적 의미에서 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 관측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반도 중립화의 주장도 궁극적으로 미군철수를 전제로 하는 주장이라는 점에서 미군 철수론의 일종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무조건적인 미군철수 주장은 철수 후의 안보불안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는 데 반하여, 중립화의 주장은 한반도 주변 4강의 국제적 안전보장 아래 한반도를 중립화 한 후에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철수 후에 우려되는 안보 불안에 대한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미군철수 주장과는 구별된다는 것이 중립화론자들의 주장이다. 말하자면 전자는 대안 없는 미군철수 주장인 데 대해, 후자는 실현가능한 대안 제시를 수반한 미군철수 주장이라는 것이다.
또 그것은 무조건적인 ‘반미’가 아니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다. 중립화는 주변 열강의 이해관계를 조절하여 그들의 납득과 동의가 없으면 결코 실현될 수 없다. 한반도는 주변 4강과 동등한 친선관계를 유지해야만 중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물론 중국 러시아 일본 그리고 세계의 모든 나라와 친밀한 관계를 전제했을 때만이 중립화는 이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미군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안보불안을 해소하면서 우리의 민족적 자립과 자존을 지킬 수 있는 하나의 실현가능한 평화통일과 자주 자립의 방안이라고 이들은 보고 있다. 여기서 실현가능하다는 뜻은 세계의 화약고인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세계열강이 중립화에 합의할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남북의 모든 정치지도자의 합의를 이루어 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자주국방의 길: 그것은 무장하의 영세중립?
문제는 한반도와 같은 전략적 중요 지역에 영세중립을 열강이 용인하려고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일시적으로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영세중립을 용인했다 하더라도 정세가 달라지면 중립을 용인하지 않고 자기 세력권에 편입하려는 욕심을 내기에 충분한 지정학적 위치에 놓여있는 것이 한반도이고, 그것이 또한 한반도의 되풀이 되어 온 역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립화논자들은 영세중립이 실현된 이후에도 자주와 자립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자주국방은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일본의 군사력에 대한 보복공격력의 유지 없이는 영세중립을 지켜낼 수 없다고 본다. 자주국방 문제는 한반도 중립화가 설사 실현된다 하더라도 꼭 집고 넘어가야 할 과제임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군 감축에 따른 안보불안을 잠재우려면?
중립화론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한반도에 생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 치고 평화롭고 안정되고 외세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서 민족의 자존심을 보존하고 민주적인 권리와 인권을 보장받는 삶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꿈이다.
요즘 한참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미군감축과 재배치를 둘러싼 문제 역시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만 하는데 반듯이 그렇지만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것이다.
정신이 똑바로 박힌 한국사람 치고 외국군대가 영원히 이 땅에 주둔해야 한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인데도 우리의 일부 유력 언론들은 이번에 미군 일부가 철수한다는 소식에 접하자, 금방 우리가 다 망할 것 같이 호들갑을 떨면서 정부가 왜 이 지경을 만들었느냐고 거세게 몰아 부치고, 미군이 이 땅에서 줄어들면 금방 북에서 쳐들어 올 듯이 연일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으나 그것은 너무나도 과장된 염려라는 것이다.
이들은 다음과 같이 보고 있다. 일제 때에도 상황은 똑같았다. 이것을 70대 사람들은 다 몸소 경험한 바 있다. 일제와 그 앞잡이 신문들은 일제가 망하면 한국사람 모두가 금방 다 죽을 것이라고 선전했고,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극히 소수의 독립 운동가들과 선각자들만이 일제 패망의 날을 점치면서 맹렬히 투쟁하였지만 거의 모든 한국 사람들은 일제가 망하면 큰 일 난다는 선전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었다, 이 것과 똑 같은 상황이 지금 이 땅에 다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일제 말기에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신문사가 지금도 외세에 대해 똑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그런 신문들의 발행 부수가 70-80%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보듯이, 그런 주장에 추종하는 사람이 이 사회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주장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마저 있다는 것이다. 거의 100년 동안이나 외세의 지배 아래 살아 온 우리 민족은 이제 만성화되어 외세의 주둔과 지배를 당연시할 정도가 되어버린 것이나 아닌지 의심이 날 정도이라는 것이다.
남북간에 내란을 칠은 우리로서는 북의 남침에 대한 불안감에서 미군의 주둔을 당연시하는 심리를 이해 못하는바 아니지만, 이제 6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때가 아닌지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군이 감축되어도 안보불안이 없다고 보는 이유
영세중립화론자의 한 사람인 이재봉 교수는 ‘남이랑북이랑’ 소식지 63호 (2004. 6. 1.)에 실린 “주한미군 감축과 북한의 남침”이란 제목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
전쟁을 일으키려면 적어도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상대방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는지 따져보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이기더라도 전쟁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계산해보는 것이다.
첫째, 북한은 남한을 침략해서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없어 보인다. 남북의 병력과 거의 모든 군사 장비의 숫자를 살펴보면 거의 모든 면에서 북한이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많다. 그러나 그 질을 놓고 본다면 남한이 훨씬 우세한 것 같다. 수량에서는 북한이 앞서고 품질에서는 남한이 앞선다는 뜻이다. 군사비를 살펴보면 차이가 엄청나다. 북한은 1년에 겨우 20억 달러 안팎을 쓰는데 남한은 무려 130억 달러 안팎을 쓴다. 경제력을 따져보면 그 차이는 더욱 커진다. 북한은 1년 GDP가 겨우 140억달러에 머무르고 남한은 무려 4300억달러에 이른다. 북한의 군사비는 남한의 약 1/6 수준이고 북한의 경제력은 남한의 1/30 수준이란 뜻이다.
둘째, 북한은 남한을 침략할 의지도 많아 보이지 않는다. 난 물론 김정일을 비롯한 북한 지도자들의 속내를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남북 사이에 전쟁이 터지면 결과적으로 어느 쪽이 이기고 지든 양쪽 모두 불바다가 되고 잿더미가 될 게 뻔한데, 그들이 과연 무엇을 얻기 위해 남침을 강행하겠는가. 이렇게 말하면 남한의 극우 세력이나 호전주의자들은 김정일이 그렇게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인물이냐고 묻겠지만, 난 김정일이 다소 비이성적이거나 비합리적인 면이 있을지라도 남한의 극우 세력이나 호전주의자들보다는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믿는다.
주한미군의 감축으로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면 국방비를 늘릴 게 아니라 남북 양쪽이 군비를 감축하는 게 바람직하다. 남북 사이의 화해와 협력을 더욱 진전시킴으로써 북한이 남침 의지를 꿈에도 갖지 않고 휴전선 근처에 집중 배치된 병력을 줄이면서 뒤로 물러나도록 이끄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그게 남북이 평화와 통일로 한 걸음 나아가는 일이요 더불어 사는 길이다. 이상이 이재봉 교수의 결론이다.
이와 같은 결론을 중립화문재와 결부시키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 같다. 영세중립을 주변 열강이 보장하는 가운데 최소한의 자주국방태세를 갖추는 것이 최상의 안보의 길이다. 그래야만 국방비 부담을 줄이면서 복지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
아무튼 한반도 안보는 새로운 시대에 맞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접근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보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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