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손을 잡았다 놓은 로버트 이야기

<네팔 랑탕 트레킹 2>

등록 2004.06.12 14:57수정 2004.06.1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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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 기자는 지난 4월부터 20일간 랑탕 트레킹을 했습니다. 랑탕 산행기는 4회 정도 연재될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철코 리(4984M)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 오른쪽 눈 덮인 봉우리는 랑시샤 리(6427M).
철코 리(4984M)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 오른쪽 눈 덮인 봉우리는 랑시샤 리(6427M).김남희
담벼락에 기대어 놀고 있는 아이들. 캰진 곰파
담벼락에 기대어 놀고 있는 아이들. 캰진 곰파김남희
트레킹 다섯째 날


주린 배를 움켜쥐고 난롯가에서 저녁을 기다린 지 한 시간.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주문을 해서인지 도무지 음식 나올 기미가 안 보이네.

여긴 캰진 곰파(Kyanjin Gompa 3870m)야. 랑탕 트레킹의 종착지. 바람이 거세게 불어 여러 겹의 옷을 껴입어도 춥다는 느낌을 피할 수가 없어. 감기까지 오려는지 자꾸 콧물이 흐르고, 열이 올라 오후 내내 침대에 누워 있었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오니 웬 서양남자가 의자에 드러누워 해바라기를 하고 있는 거야. 난 그 앞 의자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 친구가 내 책(죠 태스커의 세비지 아레나)에 흥미를 보여 이야기를 나누게 됐어.

오스트리아인 로버트는 대학원에서 독일문학을 전공한 독어 선생인데, 등반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친구였어. 그에게 너희 원정대 안내 책자를 보여줬는데, 정말 신기한 게 뭐였나 하면 그 중에 로체 남벽 루트 개념도 그려 놓은 페이지 있지? 1번부터 8번까지 번호 매겨 놓은 거 말야.

그걸 보더니 1번은 몇 년도에 어느 나라 누가 오른 루트고, 2번은 누가 몇 미터까지 오르고 후퇴한 루트고 하는 식으로 그 길 전부를 다 알아보는 거야. 무슨 마술을 보는 것 같았어. 이 친구가 설명을 하면 난 밑의 한글 설명을 확인하곤 "맞아! 와!" 감탄사를 마구 지르는 시간이 한동안 이어졌어.


물론 이 친구는 로체를 오른 적은 없대. 대단하지 않아? 자기가 오른 적도 없는 봉우리의 등반역사를 세세히 기억하고 있고, 루트 개념도 만으로 등반 스토리를 줄줄 풀어낼 수 있다니!

나이는 스물 일곱밖에 안 됐는데(난 마흔은 된 줄 알았어. 머리숱이 좀 많이 부족한데다, 수염까지 길게 기르고 있어서) 등반은 열세 살 때부터 시작했대. 다섯 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처음 산에 오르기 시작해서, 여섯 살 때 3500미터 정도의 산에 올랐으니 꽤 어린 나이에 산을 만났지?


특히, 열 여섯 살과 열 일곱 살 때 혼자서 알프스 3대 북벽(아이거, 마터호른, 그랑드 조라스)을 등반했는데, 이건 아직도 깨지지 않은 최연소 프리 솔로 등반기록이래.

저녁 햇살을 받은 산을 뒤로하고 쉬고 있는 로버트.
저녁 햇살을 받은 산을 뒤로하고 쉬고 있는 로버트.김남희
로버트가 대단하게 느껴진 건 이런 기록 때문이 아니라 죽음에 가까이 다가갔던 경험 때문이었어. 1997년 겨울, 알프스에서 등반 도중 추락하는 바람에 온 몸이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된 채 로프에 매달려 이틀을 버텼대.

겨울철인데다 폭풍이 와서 이틀 후에나 구조헬기가 떴는데, 기적적으로 동상이 심하지 않아서 손, 발가락을 잘라내는 최악의 사태만은 모면할 수 있었대.

하지만 갈비뼈부터 발목까지 온 몸의 뼈가 부러지고 뒤틀리는 바람에 몇 달을 병원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고, 그 후에도 2년 반 동안 목발을 짚고 다녀야 했대. 게다가 오른쪽 발목에는 철심을 박아 넣어 평생 달리기나 농구 같은 운동은 할 수 없는 상태가 됐고.

그 뿐만이 아니라 로버트는 왼쪽 가운데 손가락도 등반하다가 잃었어.
수많은 등반가들의 꿈의 암장인 요세미테 엘 캡(El Cap)에서 '과묵한 벽(Reticent Wall 인공 난이도 A5)'을 9일간 혼자 등반한 후, 다시 '꿈의 바다(Sea of Dreams 인공 난이도 A3/A4)'라는 이름의 루트를 역시 혼자 등반하다가 박아 넣은 하켄이 빠지는 바람에 손가락이 잘렸어.

피가 줄줄 흐르는 상태로 혼자 바위에서 내려와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병원으로 갔을 때 이미 손가락은 회복될 수 없는 상태였고.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바위를 타고, 산에 올라.

그 사이 로버트는 등반에 관한 책도 두 권이나 냈고, 부정기적으로 등반에 관한 강연회도 갖곤 하는데, 작년 가을엔 네팔에서 혼자 아마다블람(6900m)을 오르기도 했어.

이곳에 온 이유도 내년에 시샤팡마를 등반하기 위해 그의 등반 파트너인 그렌과 함께 사전답사를 온 것이라고.

"두 번이나 그런 사고를 당했는데도 어떻게 계속 산에 오를 수가 있지? 넌 그토록 가까이 죽음에 다가갔던 건데, 죽는다는 게 두렵지 않아?" 라고 물었을 때 로버트의 대답은 이랬어.

"죽는다는 건 물론 두려워. 난 아직 죽기엔 너무 젊은 나이잖아? 이렇게 계속 산에 오르는 한 내가 산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어. 그렇지만 그 사고들이 산에 대한 내 열정을 식히지는 못했어. 다만 사고 이후 내가 변한 게 있다면, 조금 더 위험을 직시하고 조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지."

로버트는 독일 기준에서 신체의 25%가 손상된 장애인이래. 그래서 같이 등반하는 그렌에게 "난 25% 장애인이니까 네가 짐도 25% 더 지고, 등반도 25% 더 해. 대신 밥은 내가 25% 더 먹어야 해"라며 농담을 하곤 해.

이 호주 친구 그렌도 정말 재미있는 친구인데,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혼자서 끝도 없이 중얼거리듯 이야기를 한다는 거야. 상대방이야 듣던 말든 내키는 대로 계속 말하는 거지. 그런 그렌을 잘 아는 친구가 이들이 네팔로 올 때 로버트에게 뭘 선물했는지 알아? 귀마개 10쌍! 그리고 진지하게 충고하더래.

"너의 세 번째 책은 등반 자체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그렌과의 생활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나를 주제로 해서 쓰는 게 더 흥미진진할 거야"라고.

아무튼 둘 다 멋진 친구들 같아. 함께 산 이야기를 하고, 그들의 등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내게는 즐거운 공부가 돼.

앗, 지금 내 저녁식사가 나왔어.
주문한 지 꼭 두 시간 만에!
내일 다시 쓸게.

바람에 나부끼는 탈쵸 뒤로 랑탕 리 룽이 보인다. 철코 리
바람에 나부끼는 탈쵸 뒤로 랑탕 리 룽이 보인다. 철코 리김남희
소 잔등에 물건을 싣고 있는 부부. 툴루 샤블루
소 잔등에 물건을 싣고 있는 부부. 툴루 샤블루김남희
트레킹 여덟째 날
안녕, 친구들.
지금쯤은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을까?

이곳 캰진 곰파에서의 하루하루는 활기차고 즐거운 시간의 연속이야.
그저께는 로버트와 캰진 리(Kyanjin Ri 4550m)를 올랐고, 어제는 랑시샤 카르카(4160m)까지 8시간에 걸친 트레킹을 다녀온 데 이어, 오늘은 철코 리(Cherko Ri 4984m)에 올랐어.

로버트는 오늘로써 세 번째 이 고개에 오르는 거라 완벽한 가이드 노릇을 해주었어. 날씨는 눈부시게 개었고,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아 그야말로 봄소풍 가듯 고개를 올랐어.

왕복 7시간의 산행이 조금도 힘겹지 않고 즐거울 수 있었던 건 날씨부터 동행자까지 모든 조건이 완벽했기 때문일 거야. 로버트 역시 산을 오를 땐 거의 말이 없는 편이라 우린 꽤 잘 맞는 산행 친구가 될 수 있었거든.

그가 앞서가고 나는 뒤따르면서 제각기 자신의 속도대로 걷다가 양지바른 곳에서 차를 마시거나 간식을 나눠 먹고 다시 걷고는 했어. 우린 하루 종일 제각기 생각에 잠긴 채 걷다가 아름다운 풍경을 대할 때면 말없이 함께 서 있고는 했어.

준비해간 짜파티와 삶은 계란으로 점심도 먹고, 햇살 바른 양지에 드러누워 낮잠도 자면서 천천히 정상에 올랐어. 그곳엔 패션잡지 촬영이라도 나온 듯 온갖 포즈로 사진을 찍으려는 프랑스인 커플이 있어 우리는 한동안 그들의 '찍사' 노릇을 해주어야 했어.

'화보 촬영'을 다 마친 그들이 내려가고 나니 고갯마루 위엔 오직 우리 둘 뿐이었어. 눈을 들어보면 어디서나 눈 쌓인 산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던 그 아름다운 정상에 우리는 오래 머물렀어.

운이 좋으면 마주칠 수 있다는 눈표범(Snow Leopard)을 보기 위해 한동안 눈을 부릅뜨고 사방을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얼굴에 감겨오는 햇살의 부드러운 손길에 못 이기는 척 다시 낮잠에도 빠져들고…. 게으름을 피운 탓에 내려오는 길은 조금 서둘러야 했지만, 그래도 어둠의 장막이 완전히 드리워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어.

아, 피곤하다. 오랜만에 고산등반(!)을 했더니 피로가 몰려오네. 너희들 비웃는 소리가 여기까지 다 들려와. 오늘은 일찍 들어가 자야겠어.

잠자리에 들기 전에 고해성사를 하나 하자면, 요즘 내 고민이 뭔지 알아?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 식욕'인데, 아니나 다를까 오늘 저녁에도 참치 피자 한 판을 다 먹고도 모자라서 야채 모모 한 접시를 더 시켜 로버트와 나누어 먹는 엄청난 식욕을 보였어. 점점 내 자신이 무서워지고 있어.

캰진 리(4550M)에서 내려오는 길에 쉬고 있는 트레커
캰진 리(4550M)에서 내려오는 길에 쉬고 있는 트레커김남희
트레킹 열 두 번째 날

다시 혼자가 된지 오늘로써 사흘째. 그동안 로버트와 그렌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있다가 혼자가 되니 조금 외롭다는 생각이 들어. 이래서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함부로 정을 주면 안 되는 건데…. 나중에 마음 추스리기가 힘들어지거든.

캰진 곰파를 떠나기 전 날, 난 몸살로 종일 드러누워 앓아야 했어. 그곳에 도착한 후 연 사흘을 계속 7∼8시간씩 트레킹을 다녀오곤 했는데, 결국 몸이 지쳤는지 반란을 일으켰지 뭐야. 밤새 끙끙 앓다가 다음날은 꼼짝도 못하고 침대에 드러누운 채 종일 로버트의 간호를 받았어. 로버트는 내게 약도 먹여주고, 식사도 방으로 날라주고, 솔기가 터진 내 잠바도 수선해주면서 종일 무자격 간호사 노릇을 충실히 했어.

내가 잠들 무렵에야 방을 나서는 그에게 "이 고마움을 어떻게 보답 해야하지?" 하고 말했을 때, 로버트는 뒤도 돌아보지 못한 채 겨우 한 마디를 중얼거리고 서둘러 방을 나갔어.

"네가 여기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보답이야."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마음이 오가는 데에는 꼭 오랜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닌가봐. 하루라도 더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로버트의 마음을 애써 모른 체 하고 떠나던 날, 그는 마을 입구까지 나를 배웅해줬어.

카트만두에서 꼭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아마 그도 알고 있었을 거야.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무 것도 약속할 수가 없다는 것을.

내가 길 위에 서 있는 한, 길 위에서 만나는 인연에 매이지 않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는 걸 알고 있어. 다만 언제나 그렇듯 조금 시간이 필요할 뿐이지.

설산을 배경으로 피어난 봄꽃. 두르사강
설산을 배경으로 피어난 봄꽃. 두르사강김남희
그렇게 로버트와 헤어진 후 랑탕을 내려와 고사인쿤드로 향하는 길로 들어섰어. 이곳 툴루 샤브루(Thulo Syabru 2210m)로 오는 길에 숲에서 나무를 베던 소녀를 만났어.

열 여덟 아홉이나 됐을까. 아직 앳된 얼굴이었는데, 손가락을 다쳐 피를 심하게 흘리고 있더라구. 얼른 배낭을 뒤져 약품통을 꺼냈어. 소독하고, 연고 바른 후에 붕대로 감아주고, 혹시나 염증이 생기거나 덧날까 싶어 항생제도 몇 알 주고, 여분의 밴드와 붕대를 손에 쥐어줬어.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일러주고 일어서는데, 이 소녀가 꽤 공들여 깎았음이 분명한 나무 지팡이 한 쌍을 건네주는 거야. 내가 짚고 있던 허름한 대나무 지팡이는 자기가 가져가고, 그 예쁜 지팡이 두 개를 내 손에 꼭 쥐어주는데, 괜히 눈물이 나는 거 있지.

몇 번 사양을 했지만 너무 간절한 눈빛으로 가져가라고 하기에 결국 받았어.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돌아선 후 한참을 가다가 뒤돌아봐도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는 거야.

난 그저 내게 있는 것을 나눠주었을 뿐인데, 내가 그녀에게 받은 건 크고 넘치는 마음인 것 같아 오는 길 내내 미안했어(단, 이 지팡이의 단점은 꽤 무게가 나간다는 거야. 양손에 하나씩 짚고서 언덕을 오를 때 "아! 무거워 죽겠다!" 신음이 절로 나왔다니까. 그래도 카트만두까지 잘 가지고 가서 트레킹 떠나는 사람에게 선물로 줄까 해).

지금 비가 내려. 그저께는 랑탕에서 폭설을 맞았는데 오늘은 봄비가 오네. 그곳 베이스 캠프의 날씨는 어떤지, 그곳에도 봄은 가까이 와 있는지 궁금하다.

트레킹 열 세 번째 날

안녕, 산사나이들!
지난 밤 내내 빗소리가 지붕을 두드리더니 아침에 눈을 뜨니 날은 눈부시게 개었어. 내가 머문 숙소에서는 딱 한 곳, 유난히 전망이 좋은 곳이 있는데 어디냐 하면, 바로 화장실이야.

자리를 잡고 앉으면 창 밖으로 가네쉬 히말(Ganesh Himal)의 봉우리들이 쫙 펼쳐지거든. 이건 정말 화장실에서 계속 머무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서둘러 나오기에는 아쉽고, 안타깝기 그지없는 화장실이라니까.

아침 먹기 전에 동네 한 바퀴를 둘러보고, 9시에 마을을 떠났어. 한 시간 정도 오르막길을 헉헉대며 오르고 나니, 마을과 설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언덕이 나왔어.

그곳에 먼저 와 있던 스페인 친구와 이스라엘 친구가 내 덩치만 한 배낭을 메고 끙끙대며 올라선 내게 박수를 보내주더니, 즉석에서 냉커피를 타서 과자와 함께 건네주는 거야. 커피를 안 마시는 나인데, 땀을 뻘뻘 흘린 후에 마시는 냉커피가 얼마나 맛있던지! 거의 지상의 맛이 아니었어.

아무 것도 보답할 게 없어서 얼마나 미안했는지 몰라. 친구가 한국에서 보내준 건빵이며 신라면, 찰떡파이를 모두 로버트와 그렌에게 탈탈 털어주고 와서 간식이 아무 것도 없었거든. 그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였어. 정말 고마워"라는 인사만을 남기고 돌아설 수밖에.

철코 리 올라가는 길의 풍경
철코 리 올라가는 길의 풍경김남희
그 다음 두 시간도 계속되는 오르막. 위안이라고는 꽃 핀 사과나무들과 눈 덮인 산봉우리뿐. 점심을 먹기 위해 멈춘 3210미터의 포프랑에서 겨우 숨을 돌렸어.

세 시간만에 1000미터를 치고 올라왔으니 내가 얼마나 비명을 내질렀을지 상상이 가지? 캰진 곰파에서 같은 숙소에 머물렀던 홀란드인 피터, 피터의 아버지, 영국인 이안을 이곳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함께 출발했어.

이곳에서 신곰파(Shin Gompa 3250m)까지는 비교적 평지에 가까운 오르막이라 별 어려움 없이 걸은 데다가, 마지막 15분은 '환상의 꽃길'이 이어져 취한 듯 걸어온 길이었어.

숲 속 오솔길 양쪽으로 온통 붉은 꽃 핀 랄리구라스 나무들인데, 마치 붉은 전등을 달아놓은 크리스마스 트리들 같았어. 강진 백련사의 동백나무숲, 혹은 보길도의 동백숲을 생각나게 하는 장관이었지. 우린 모두 발길이 안 떨어져 그 숲에서 오래오래 머물다가 나왔어. 아무래도 난 지금 천계에서 떠돌고 있는 것 같아.

숲을 빠져 나오니 바로 신곰파. 짐을 푼 그린 힐 호텔은 지금까지의 트레킹 중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숙소야. 샤워하고, 빨래하고, 정원에서 이안, 피터, 피터의 가이드 비모와 넷이서 '케렘 보드(Kerem Board)라 불리는 게임을 하며 오후를 보냈어.

왜 네모난 나무판 위의 흰색과 검정색의 둥글고 납작한 돌을 손가락으로 튕겨서 네 귀퉁이의 구멍으로 빨리 넣는 팀이 이기는 게임 있잖아?
아시아와 유럽으로 팀을 나눠서 경기를 했는데 승리는 번번이 아시아팀 차지.

버섯을 듬뿍 넣은 피자로 저녁 먹고, 난롯가에서 이스라엘 커플과 수다 떨다가 방으로 올라오니 어느새 10시. 또 하루가 이렇게 갔네. 내일은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무엇을 보게 될 지 궁금해지는 시간.
그곳 베이스 캠프에서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문득 묻고 싶어지네. 편안한 밤 되기를….
랄리구라스 핀 길에서 여행자들이 걸음을 멈추고 꽃향기를 맡고 있다.
랄리구라스 핀 길에서 여행자들이 걸음을 멈추고 꽃향기를 맡고 있다.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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