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햇살을 받은 산을 뒤로하고 쉬고 있는 로버트.김남희
로버트가 대단하게 느껴진 건 이런 기록 때문이 아니라 죽음에 가까이 다가갔던 경험 때문이었어. 1997년 겨울, 알프스에서 등반 도중 추락하는 바람에 온 몸이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된 채 로프에 매달려 이틀을 버텼대.
겨울철인데다 폭풍이 와서 이틀 후에나 구조헬기가 떴는데, 기적적으로 동상이 심하지 않아서 손, 발가락을 잘라내는 최악의 사태만은 모면할 수 있었대.
하지만 갈비뼈부터 발목까지 온 몸의 뼈가 부러지고 뒤틀리는 바람에 몇 달을 병원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고, 그 후에도 2년 반 동안 목발을 짚고 다녀야 했대. 게다가 오른쪽 발목에는 철심을 박아 넣어 평생 달리기나 농구 같은 운동은 할 수 없는 상태가 됐고.
그 뿐만이 아니라 로버트는 왼쪽 가운데 손가락도 등반하다가 잃었어.
수많은 등반가들의 꿈의 암장인 요세미테 엘 캡(El Cap)에서 '과묵한 벽(Reticent Wall 인공 난이도 A5)'을 9일간 혼자 등반한 후, 다시 '꿈의 바다(Sea of Dreams 인공 난이도 A3/A4)'라는 이름의 루트를 역시 혼자 등반하다가 박아 넣은 하켄이 빠지는 바람에 손가락이 잘렸어.
피가 줄줄 흐르는 상태로 혼자 바위에서 내려와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타고 병원으로 갔을 때 이미 손가락은 회복될 수 없는 상태였고.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바위를 타고, 산에 올라.
그 사이 로버트는 등반에 관한 책도 두 권이나 냈고, 부정기적으로 등반에 관한 강연회도 갖곤 하는데, 작년 가을엔 네팔에서 혼자 아마다블람(6900m)을 오르기도 했어.
이곳에 온 이유도 내년에 시샤팡마를 등반하기 위해 그의 등반 파트너인 그렌과 함께 사전답사를 온 것이라고.
"두 번이나 그런 사고를 당했는데도 어떻게 계속 산에 오를 수가 있지? 넌 그토록 가까이 죽음에 다가갔던 건데, 죽는다는 게 두렵지 않아?" 라고 물었을 때 로버트의 대답은 이랬어.
"죽는다는 건 물론 두려워. 난 아직 죽기엔 너무 젊은 나이잖아? 이렇게 계속 산에 오르는 한 내가 산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어. 그렇지만 그 사고들이 산에 대한 내 열정을 식히지는 못했어. 다만 사고 이후 내가 변한 게 있다면, 조금 더 위험을 직시하고 조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지."
로버트는 독일 기준에서 신체의 25%가 손상된 장애인이래. 그래서 같이 등반하는 그렌에게 "난 25% 장애인이니까 네가 짐도 25% 더 지고, 등반도 25% 더 해. 대신 밥은 내가 25% 더 먹어야 해"라며 농담을 하곤 해.
이 호주 친구 그렌도 정말 재미있는 친구인데,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혼자서 끝도 없이 중얼거리듯 이야기를 한다는 거야. 상대방이야 듣던 말든 내키는 대로 계속 말하는 거지. 그런 그렌을 잘 아는 친구가 이들이 네팔로 올 때 로버트에게 뭘 선물했는지 알아? 귀마개 10쌍! 그리고 진지하게 충고하더래.
"너의 세 번째 책은 등반 자체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그렌과의 생활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나를 주제로 해서 쓰는 게 더 흥미진진할 거야"라고.
아무튼 둘 다 멋진 친구들 같아. 함께 산 이야기를 하고, 그들의 등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내게는 즐거운 공부가 돼.
앗, 지금 내 저녁식사가 나왔어.
주문한 지 꼭 두 시간 만에!
내일 다시 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