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3교시가 저희반 수업이잖아요. 고생하실 텐데 미리 케익 좀 드세요"안준철
저는 절을 하고 난 뒤에 진공청소기 앞에서 잠시 서 있었습니다. 반질반질하게 잘 닦인 진공청소기가 마치 스크린이라도 된 듯 전날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이 한 아이의 얼굴과 함께 필름처럼 스쳐지나갔기 때문입니다. 날이 더워서 그랬던지 전날 아이들 대부분이 다 지쳐있었고, 저 또한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집중하세요. 집중. 공부를 못하는 것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집중을 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자, 한 번 더 말합니다. 집중하세요. 고개를 모두 모니터를 향하세요. 그리고 눈을 크게 뜨세요."
목소리를 높일 만큼 높여서 간곡하게 말하자 아이들은 귀찮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모두 자세를 고치는 시늉은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한 아이만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요지부동이었지요. 다시 한번 강조하여 말을 했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강요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싫어하는 아이. 끼도 있고, 자기 생각도 있는 아이. 그래서 조금은 긴장을 느끼며 접근했던 아이. 지금은 누구보다도 나를 잘 따르는 아이. 이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성희는 고개 안 들을 거야?"
결국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지적을 하기로 한 것인데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여전히 요지부동. 제 입에서는 곧바로 이런 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좋아. 네 마음대로 해. 날이 좀 덥고 몸이 피곤하다고 선생님이 이렇게 간곡하게 부탁을 하는데도 듣지 않고.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자 우리끼리 수업하자."
그 말에 몸이 비로소 움직이고 있었지만 얼굴 표정에는 짜증이 잔뜩 묻어 있었습니다. 그날 수업을 마치고 반장이 일어나 인사를 할 때도 그 아이는 저를 바라보지 않고 고개를 떨군 채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한 순간 미운 생각이 들면서 순간적으로 극심한 피로감이 밀려왔습니다. 아이들이 가버리고 없는 텅 빈 도서실에서 뜻밖에도 제 입에서는 이런 말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럼 날 더러 어떻게 하란 말이야?"
3교시 수업시간, 저는 모둠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성희에게 조심스레 다가갔습니다. 그날 수업은 전날의 수업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진공청소기 덕분이었지요. 가만 생각해보니 수업시간 아이들이 집중하지 않은 것은 아이들 잘못이 아니라 교사인 제 잘못이었습니다. 수업이란 아이들이 흥미를 느껴야 집중을 하는 것이고, 흥미 있는 수업을 제공해줄 책임과 의무가 교사에게 있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청소기 앞에서 깨닫게 된 것이지요.
"성희, 오늘은 열심히 하네."
"감사합니다!"
"어디 보자. 어, 틀린 데가 몇 군데 있는데. 점수가 좀 깎기겠는데…"
"어디요? 선생님, 어디요?"
"그건 네가 찾아야지. 그런데 성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