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로 독사를 만들고, 국수가 침대로 변신?

[전시평]국립현대미술관 기획 전시 <일상의 연금술(Alchemy of Daily Life)>

등록 2004.06.14 12:16수정 2004.06.14 13:49
0
원고료로 응원
a 전시 <일상의 연금술>의 포스터

전시 <일상의 연금술>의 포스터 ⓒ 국립현대미술관

우리 주변에 널린 일상적인 것들이 예술 작품이 된다면? 빈 깡통, 껌 종이, 구멍 뚫린 냄비, 심지어 국수까지 예술 작품의 중요 재료로 사용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 전시 <일상의 연금술>은 이와 같은 일상적인 것들을 미술로 형상화한 작품들을 모아 놓았다.

이제 현대 미술은 그저 캔버스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특정 재질의 조각품을 만드는 단순한 수준에서 벗어나 버렸다. 온갖 일상적인 것들을 미술 작품의 재료로 사용함으로써 작품은 일상이 되고 또 일상은 작품이 되는 복합적 구조로 탈바꿈한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김경운씨는 전시 팸플릿을 통해 이와 같은 현대 미술의 흐름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20세기의 벽두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예술가들은 일상 속에서 만나고 이용하게 되는 하찮은 사물들을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미술에 도입해 왔다. 입체파의 콜라주에서부터, 미래주의, ......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그리고 포스트 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일상 속의 사물과 미술이 만나왔던 양상을 추적하다 보면, 우리는 현대 미술의 역사를 고스란히 되밟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 기획 전시의 의도는 바로 이와 같은 현대 미술의 특징을 반영하여 일상적인 사물들을 재료로 한 작품들을 보여 주는 것이다. 지극히 일상적인 사물들이 예술 작품이 되어 관객들의 눈앞에 펼쳐지지만 그렇다고 하여 식상하고 평범하지만은 않다.

'연금술'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작가들은 평범한 재료를 독특하게 형상화한다. 과거 연금술사들이 엄청난 상상력을 통해 온갖 재료들을 혼합하여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고자 했듯이,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일상적 사물을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새롭게 창출해낸다.

그것은 그린 자이언트라는 옥수수 캔 깡통 속에 잠겨 있는 인형이기도 하고, 국수 가락을 뭉쳐 만들어낸 소파와 침대이기도 하다. 최정현의 <네티즌>이라는 작품은 키보드와 마우스만을 가지고 독사의 모습을 표현했다.


a 최정현의 작품 <네티즌>

최정현의 작품 <네티즌> ⓒ 국립현대미술관

이 작품은 네티즌들의 속성을 독사의 이미지로 표현함으로써 익명성을 이용한 네티즌들의 부정적 특징들을 부각시켜 표현했다.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은 키보드를 독사의 몸체로 표현하여 강렬한 이미지를 구축한다.

김범의 작품은 라디오 모양의 다리미를, 다리미 모양의 주전자를, 주전자 모양의 라디오를 형상화하여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한다. 김홍주의 <무제 2003>은 평범한 플라스틱 바구니가 미적 가치를 지닌 예술품으로 탈바꿈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전시에는 플라스틱 폐기물이나 녹슨 쇠파이프, 산업 쓰레기 등이 '재활용'된 작품들도 꽤 많다. 이른바 '환경 조각품'이라고 불리는 이 조형물들은 자원의 재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또 다른 시도에 해당한다. 거창하고 비싼 재료만이 미술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현대 미술은 고정화된 과거 미술품들의 특징들로 벗어나고 있다. 새로운 재료, 새로운 시도, 새로운 표현, 새로운 상상력만이 미래 사회에 걸맞는 예술품들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새로운 것만이 각광받는다면 그것 또한 문제이다.

새로움을 시도한다고 하여 그 속에 담긴 의미나 주제 의식이 죽어버린다면, 현대 미술은 단순한 소재에 나열에 불과할 것이다. 그 새로움 속에 표현된 주제성이 미래지향적이고 발전적일 때에 현대 미술은 또 다른 발전과 변화를 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인다.

a 조성묵의 작품 <커뮤니케이션> -재료: 식용국수

조성묵의 작품 <커뮤니케이션> -재료: 식용국수 ⓒ 국립현대미술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2. 2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3. 3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4. 4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갚게 하자" "전세 대출 원금, 집주인이 갚게 하자"
  5. 5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단풍철 아닌데 붉게 변한 산... 전국서 벌어지는 소름돋는 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