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규현 신부오마이뉴스 권우성
주민이 최대 지주가 되는 신문, 노조의 경영참여가 보장되는 신문. 프랑스 유력일간지 <르몽드>식의 지분구조를 갖는 풀뿌리 독립언론이 부안에서 창간된다.
부안주민들의 자발적인 기금 출연으로 추진중인 <부안독립신문>의 창간 배경에는 무엇보다 지난 '핵폐기장 반대투쟁' 과정에서 주민들이 느꼈던 기성언론에 대한 실망감이 크게 작용했다.
<부안독립신문>은 창간취지문을 통해 "부안주민들은 (반핵투쟁과정에서) 목소리를 담아낼 언론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각했다"며 "우리의 목소리를 담지 못했던 설움을 딛고 주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희망을 보듬을 부안의 신문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대표이사로 내정된 문규현 신부는 15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부안독립신문의 창간은 핵폐기장 반대투쟁이 낳은 기적적인 일"이라며 "계층과 가난, 종교의 울을 넘어섰던 지난 투쟁의 과정처럼 기존의 언론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나눔 운동을 펼치는 부안의 언론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주요하게 다룰 분야를 묻는 질문에 "주민의 의사를 왜곡하려는 관의 조직적인 방해가 여전히 상존한다"며 "이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에 주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한국판 르몽드식 지분구조 실험... 편집권 독립·경영권 안정 주력
<부안독립신문>의 창간배경과 더불어 현재 창간준비위원회가 추진중인 '자발적 무상증여를 통한 편집권 독립' 방식도 언론계 내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5월 19일 모임을 가진 발기인과 주주들은 자신들이 출자한 주식지분의 50%를 무상으로 노조와 시민단체에 증여키로 결의했는데, 이 결의가 현실화 된다면 주민이 50%, 노조가 20% 이상, 시민단체가 나머지 지분을 갖는 국내 최초의 언론사가 탄생하게 된다.
편집권 독립을 위해 주주 스스로 자기 몫의 절반을 포기하고, 그 절반을 노동조합과 시민단체가 소유해 신문사 경영에 대한 참여를 보장하는 실험이 추진되는 것이다.
이는 이른바 '르몽드식 모델'로 불리는 신문 지분소유구조다. <르몽드>는 1951년 당시 편집주간이었던 위베를 뵈브메리가 30%에 가까운 자신의 지분을 편집조합에 넘기면서 '편집권의 독립'과 '노조의 경영참여'라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낸 바 있다.
신문사 설립 초반에는 경영권 안정을 위해 무상증여 받은 50%의 지분을 대표이사가 보유하지만, 재정이 안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2~3년 후에는 대표이사의 지분을 노조와 시민단체에게 무상증여키로 했다.
9월 창간 부안읍 중심으로 5천부 발행·배포 예정
지난해 6월부터 창간 논의가 진행된 부안독립신문은 지난 2월 25일 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으며, 이후 창간공청회, 읍·면별 설명회, 발기인 대회 등을 거쳐 본격적인 창간 준비가 진행 중이다.
창간준비위원회에 따르면 부안독립신문은 오는 9월 초부터 대판 12면 5천부 가량을 발행에 부안읍을 중심으로 배포할 예정이다. 편집국장에는 문병원(39) 하인미디어 대표가 내정됐으며 현재 편집진과 취재 기자를 모집중에 있다.
문규현 신부는 "역시 지방이라는 여건 때문에 신문을 만들어갈 일꾼들을 모집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부안독립신문 취지에 공감하는 뜻있는 젊은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발기인 대회에서 채택된 <부안독립신문> 창간취지문 전문이다.
창간취지문
우리는 한국 언론 사상 최초로 주주의 자발적 증여운동에 의한, 노동조합이 대주주 지분을 소유하는 언론사를 창간하고자 합니다.
편집권의 항구적 보장과 노동조합의 경영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주주들의 '내 몫 포기'는, 돈으로 모든 것을 환산하는 물신주의의 풍토에서 그 자체로 충격적인 사실이며, 한국언론사에 찬란하게 기록될 것입니다. 주민투표에 이은 또 하나의 기적이 부안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한국사회를 주도하는 언론은 대부분 사주의 언론입니다. 주식 지분을 사주가 독점했기 때문입니다.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민족을 유린했던 신문, 독재자를 옹호하고 추켜세운 대가로 권력 그 자체가 되어버린 신문, 오늘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이른바 일등주의 신문들의 과거이며, 사주의 과거입니다.
부안독립신문은 주민과 기자들, 직원 모두의 신문을 만들려고 합니다. 지분의 절반은 군민에게, 절반의 반은 경영권을 위한 대표에게, 나머지 절반의 반은 편집권을 지켜낼 신문사 노동자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이처럼 안정적이며 대안적인 지분 구조를 통해 우리는 어떠한 압력과 권위에도 굴하지 않는 언론을 만들고자 합니다.
지난 1년, 부안은 민란 속에 휩싸였습니다. 주민투표로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지만 핵폐기장 유령은 부안을 넘나들며 전국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언론은 부안의 고통을 외면했습니다. 부안 주민의 절규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생업을 포기해가며 핵폐기장 반대투쟁을 벌였던 주민들은 언론에 치를 떨었습니다.
부안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정부와 한수원, 군과 군수의 나팔수가 되어 부안을 분열시켰고, 투쟁에 지친 주민들을 더욱 절망적으로 몰아갔습니다.
부안 주민들은 비로소 우리의 목소리를 담아낼 언론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각했습니다. 부안독립신문은 바로 이런 주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희망을 보듬게 될 우리의 언론입니다. 오늘 우리는 부안의 진정한 독립을 선포합니다. 부안독립신문의 창간으로 비로소 부안의 희망이 잉태되었음을 선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신문을 만들고자 합니다.
부안을 위한 신문을 만들겠습니다
우리의 목소리를 담지 못했던 설움을 딛고 부안의 신문을 만들겠습니다. 부안 사람들이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건설하겠습니다. 반핵투쟁으로 분열된 지역의 통합과 자유로운 소통을 위해 모두에게 개방된 언론을 지향하겠습니다. 부안 주민 모두에게 발언권을 보장하고 객관적이며 불편부당한 언론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겠습니다.
정보와 진실이 넘쳐나는 신문을 만들겠습니다
부안의 현장을 샅샅이 누비며, 땀으로 만든 신문을 만들겠습니다. 더 많은 정보를 담고, 정확한 해설과 분석을 싣겠습니다. 농사는 농민이 전문가이며 바다일은 어민이 전문가입니다. 이들 전문가 민초들이 전해줄 투박하지만 오랜 경험의 진리가 담긴 글을 발굴하겠습니다. 지역에 새로운 주민 참여 저널리즘을 심겠습니다. 더 많은 사실을 발굴하여 본질의 땅을 경작하고, 거짓과 허위의 세력을 무릎 꿇리겠습니다.
부안의 밖에서도 열독하는 신문을 만들겠습니다
부안과 전북에서 더 나아가 전국적 의제를 다루는 폭넓은 신문을 만들겠습니다. 그래서 부안에서만이 아니라 부안 밖에서도 열독하는 신문을 만들겠습니다. 무엇보다도 권력을 감시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작은 권력, 큰 권력 모두 주민과 시민의 투표로 세웠지만 그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언론 본연의 의무를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또 부안의 편익만을 옹호하는 대신 국가공동체를 위해 발언하겠습니다. 그러나 자결과 자치에 반하는 중앙집권적 지역 경시와 차별을 조장하기 위한 지역주의와는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신문이 되겠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와 환경을 담는 신문이 되겠습니다
이 땅의 야만적이고 반지성적인 언론문화에 정면으로 대항하겠습니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기계적 평등이 아닌 경제 민주와 정치 민주를 옹호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소수자와 약자를 위한 인권과 그를 위한 편들기에 매진하겠습니다. 지구의 유일한 분단지역 한반도에서 평화를 위해 발언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남과 북만의 평화에서 그칠 게 아니라 뭇 생명과의 평화와 공존에도 힘을 쏟겠습니다. 개발독재가 망가뜨린 이 땅의 환경을 위해, 뭇 생명을 대변하는 절절한 심정으로, 제대로 된 신문을 만들겠습니다. 부안과 전북에 정론의 영토를 세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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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식 소유구조 실험, <부안독립신문> 9월 초 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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