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 논란 '이승복사건' 뜨뜻미지근한 판결

법원, <조선>의 '현장취재' 인정하고도 "의혹제기 가능한 일"

등록 2004.06.16 13:52수정 2004.06.1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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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까지 간 <조선일보> 68년 12월 11일 이승복군 사건 보도
소송까지 간 <조선일보> 68년 12월 11일 이승복군 사건 보도조선 PDF

서울중앙지법 민사25부(재판장 김상균 부장판사)는 16일 오전 '이승복 사건' 조작 논란과 관련, 조선일보가 김주언 전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과 김종배 전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을 상대로 제기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이승복 사건은 진실일 가능성이 매우 크고 당시 조선일보 기자였던 강인원과 노형옥이 현장취재를 한 것은 사실로 인정된다"면서도 "하지만 이승복 사건이 의혹조차 제기할 수 없는 절대적 대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재판부는 "설령 피고들이 이승복 사건의 실체와 성격을 희석시키기 위해 조작 의혹을 제기하였다고 해도 언론·표현의 자유에서 용인되는 범위의 '있을 수 있는' 의혹제기"라며 "조선일보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김 전 총장은 지난 98년 8월 '언론계 50대 허위·왜곡보도'를 선정하면서 68년 <조선일보>의 '이승복 사건'을 대표적인 작문 기사로 발표했고, 같은 해 8∼9월 서울과 부산에서 '정부수립 50주년 기념 오보전시회'를 열면서 해당 기사를 전시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김 전 편집장은 이보다 앞서 92년 한국기자협회 계간지 <저널리즘> 가을호에서 조선일보 보도의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조선일보는 자사 특종사건이 작문 논란에 휩싸이자 98년 9월 28일부터 본지와 <월간조선> 등을 통해 대대적으로 반박기사를 내보냈고, 같은 해 11월 처음으로 의혹을 제기한 김 전 국장과 오보 전시회를 주도한 김 전 총장을 상대로 명예훼손에 따른 민·형사상 소송을 냈다. 조선일보가 명예훼손 혐의로 청구한 손해배상 규모는 김 전 총장과 김 전 국장에게 각각 1억원씩 모두 2억원에 달한다.

한 폐교된 초등학교에 서 있는 이승복 동상. 뒤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문구가 보인다.
한 폐교된 초등학교에 서 있는 이승복 동상. 뒤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문구가 보인다.오마이뉴스 자료사진
김 전 총장과 김 전 국장은 이보다 앞서 지난 2002년 9월 3일, 같은 사건의 1심 형사소송에서 각각 징역 6개월과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은 바 있다. 피고인측은 당일 항소를 제기했고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당시 재판부는 "김 전 총장이 오보 전시회를 통해 조선일보 기자가 현장취재도 없이 이승복 군이 하지도 않은 말을 임의로 만들어 기사화 했다고 주장했고, 김 전 국장도 92년 <저널리즘> 가을호에 이승복군의 신화가 조작됐다는 글을 실었으나 사건 관계자들의 증언과 현장취재 사진으로 보아 이를 증명하기 어렵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이승복 사건'은 68년 12월 9일 울진·삼척을 통해 침투했던 북한측 남파공작원 5명이 강원도 평창군의 한 시골 오지마을에 숨어 들어갔다가 어머니 주대하(당시 33세), 차남 승복(당시 10세), 3남 승수(당시 7세), 4녀 승녀(당시 4세) 등 4명을 살해한 뒤 아버지 이석우(당시 35세)씨와 장남 승권(당시 15세, 호적상 이름은 '학관') 군 등 2명에게 중상을 입히고 도주한 사건이다.

조선일보는 이와 관련, 68년 12월 11일 3면 머릿기사 <공비, 일가 4명을 참살/"공산당이 싫어요" 어린 항거 입찢어>을 통해 이틀 전 남파공작원에게 살해당한 승복군이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며 유일하게 항거하다가 죽임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또 "장남 승원 군에 의하면 강냉이를 먹은 공비들은 가족 5명을 안방에 몰아넣은 다음 북괴의 선전을 했다. 열 살 난 2남 승복 어린이가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얼굴을 찡그리자 그 중 1명이 승복 군을 끌고 밖으로 나갔으며 계속해서 주 여인을 비롯한 나머지 세 자녀를 모두 끌고 나가 10여m 떨어진 퇴비더미까지 갔다. 공비들은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벽돌만한 돌멩이로 어머니 주 여인의 머리를 여러 차례 내리쳐 현장에서 숨지게 했으며 승복 어린이에게는 '입버릇을 고쳐 주겠다'면서 양손가락을 입속에 넣어 찢은 다음 돌로 내리쳐 죽였다"고 상세하게 묘사했다.

그러나 증언자들에 따르면 사건 발생 뒤 당시 중앙·지방신문사 기자들은 10일 낮쯤 현장에 도착했고, 이미 출동해 있던 군·경에 의해 사체들은 수습됐고 중상자들은 혼수상태에 빠져 인근 병원으로 실려간 상태였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자들은 군·경과 인근 주민들의 증언 및 참사 현장 등을 토대로 기사를 작성해 송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92년 김 전 국장은 사건의 유일한 현장 목격자인 장남 승권씨 증언을 토대로 "조선일보 기자를 만난 적이 없다"는 내용의 인터뷰 기사를 <저널리즘> 가을호에 기고했다. 승권씨는 동생 승복 군이 살해된 뒤부터 원주에 위치한 병원에 후송되기까지 사건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 전 국장은 이를 근거로 조선일보의 68년 기사의 취재원이 승권씨였다는 점에서 당시 보도가 조작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조선일보는 이와 관련, 나중에 "승권 씨를 '승원 군'으로 표기한 것은 오기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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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언론운동협의회(현 민언련) 사무차장, 미디어오늘 차장, 오마이뉴스 사회부장 역임. 참여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을 거쳐 현재 노무현재단 홍보출판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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