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우리 아들에게 죽으라 할 권한 없어요"

[현장] 16일밤 청와대 앞 분신 시도한 택시기사 모친의 눈물

등록 2004.06.16 20:08수정 2004.06.1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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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앞에서 16일 분신을 시도한 이아무개씨를 찾은 박계동 한나라당(오른쪽) 의원이 이씨의 어머니(가운데)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
청와대 앞에서 16일 분신을 시도한 이아무개씨를 찾은 박계동 한나라당(오른쪽) 의원이 이씨의 어머니(가운데)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강이종행
[3신 : 17일 새벽 2시]

"정부가 우리 아들에게 죽으라고 할 권한 없어요"
청와대 앞 분신 시도 택시기사 어머니의 눈물의 하소연


"대한민국 정부에서 우리 아들보고 이렇게 죽으라고 할 권한 없어요. 죽으라고 할 권한 없다고요.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 아들을 죽음으로 몰았어요. 나는 남한테 손가락질 안 받고 내가 착실하게 노력하고 정직하게만 살면 다 도와주는 정부라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육순이 다 돼가는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권한 없어요"라는 말을 십여 차례 되뇌었다.

16일 저녁 7시 10분께 청와대 앞에서 분신을 시도, 전신에 2-3도 화상을 입고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중인 이아무개(36, S 운수 택시기사)씨의 어머니 김아무개씨는 위로차 병원을 찾은 박계동 한나라당 의원에게 하소연한다. 이씨의 아내는 10여년 전 집을 나갔고 이씨는 슬하에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두고 있다.

김씨는 "우리 아들 노조 하느라고 분신한 거 아니예요. 카드 빚 때문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입금도 못시키는데 어떻게 빚을 갚나?"


김씨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박 의원에게 말을 이었다. 이씨는 딸의 교육비, 임대아파트 월세 등 때문에 빚을 진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빚이 수백만원 있는데 L카드사에 2달 동안 20만원씩 연체를 했어요. 그런데 오늘 낮에 예고도 없이 L카드사에서 집달리(법원직원)한다고 왔어요. 집에 있는 물건 적어가면서 60만원밖에 안 된다네요. '내가 몇백만원 낼 돈 있으면 연체하겠냐'며 월요일까지 갚겠다고 했는데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김씨에 따르면 이씨는 오후 4시 교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여기 저기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고 한다.

"아들이 변호사들… 나라에서 해(도움)준다는 곳에 전화를 해서 이런 상황인데 도움이 가능한지 물었는데 없었나 보더라고요."

이씨는 곧바로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카드사에 사정을 말해도 봐주지 않는다고 해서 세 식구가 청와대로 가서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딸 이양이 "무섭다"며 울자 이씨는 혼자 집을 나섰다. 그리고는 청와대로 향했다.

"구체적인 사정을 말하자 카드사에서 월요일까지 연장을 시켜준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카드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한두사람도 아닌데 너 죽는다고 해서 청와대에서 봐주지도 않고 무책임한 일이다. 조금이라도 벌어서 갚아야지. 아파트 내놓아서 돈 갚고 우리 시골에 가면 빈 집 있더라. 안죽고 잘 살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알았다고 끊었어요. 그게 마지막예요. 마지막…"

김씨에 따르면 아들 이씨는 최근 사납금도 제대로 채우지 못할 정도로 어려웠다고 한다. 김씨 자신도 파출부, 식당일 등을 하다가 최근 몸 상태가 나빠져 집에서 소일거리만 해왔다고. 김씨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내가 아쉬워서 카드 빚지고 나 몰라라하고 살았으면 문제가 있다고 하겠지만 우리 아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래도 이만큼 노력하고 이만큼 월세로 살고 있으면서 그걸 모아서 딸애 교육시키고 싫은 소리 한번 안했어요. 착실하게 살려고 동네 방범순찰대원까지 하고 살았던 애예요."

"현 택시 수입구조를 보면 다 죽음으로 내모는 것"

어머니와 대화를 나눈 뒤, 박 의원은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다음과 같이 심정을 토로했다. 박 의원은 기자들과의 저녁식사 중 부인에게 연락을 받고 밤 11시께 한강 성심병원을 찾아 1시간 가량 병원에 머물다 갔다.

박 의원은 "어머니의 말에는 깊은 고통 속에 진리가 있다"며 "카드빚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왜 빚을 갚지 못했겠나. 다 구조적인 문제에서 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예전엔 택시기사 중 카드빚 지고 있는 사람을 몇 사람 안됐다. 하지만 며칠전 한 회사에 가보니 140명 중 50명 이상이 카드 빚을 지고 있었다"며 "사유는 뻔한 것 아닌가. 자녀 등록금 등 생활고 해결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어 "현 택시기사 수입구조를 보면 다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라며 "이런 극단적인 사건은 모두 바닥을 못 보는 정치인과 무감각한 정치인의 합성 행위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정부와 정치인들을 강력히 비판했다.

박 의원은 또 "우리가 죄인이라는 의식 없이는 사회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한숨을 쉰 뒤, "속죄의 마음으로 내가 속해 있는 40여명의 '국가발전전략연구회' 회원들과 10만원씩이라도 모아 카드빚이라도 갚아줄 것"이라고 밝혔다


16일 청와대 앞에서 분신을 시도한 이아무개씨가 치료를 받고 있는 한강성심병원.
16일 청와대 앞에서 분신을 시도한 이아무개씨가 치료를 받고 있는 한강성심병원.오마이뉴스 강이종행
[2신 : 16일 밤 9시50분] 분신 이 씨 카드빚 800만원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진 이아무개씨는 밤 9시45분 현재 병원 3층 화상치료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씨는 전신에 2도에서 3도의 화상을 입은 상태지만 의식은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800만원의 카드빚을 지고 있었다. 이씨는 분신하기 직전인 6시40분께 회사 동료와의 전화통화에서 "카드빚 때문에 집에 가봐야 한다"고 말했다.

부인과 이혼한 이씨는 어머니 김아무개씨와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을 두고 있다. 가족들은 병원에 찾아왔으나 전혀 입을 열지않고 있다.

임시운 전국택시노조연맹 정책부국장은 "이씨가 신용카드 빚 때문에 분신을 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며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택시 사납금 제도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빚을 지고도 갚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임 부국장은 또 "자세한 사정은 이씨와 얘기를 나눠봐야 알겠지만 택시문제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오면 강력하게 투쟁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기사대체 : 16일 밤 8시40분]

16일 저녁 7시5분 경에 택시기사 이아무개씨(36)가 청와대 앞길에서 분신을 시도했다. 그러나 마침 근처에 있던 청와대 외곽 경비 근무자가 신속하게 대처해 2도 화상을 입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는 곧바로 강북 삼성병원에 옮겨졌고, 화상 전문 병원인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됐다.

이씨는 이날 택시를 몰고 청와대 기자실이 있는 춘추관 쪽에서 청와대 앞길로 진행하다가 55면회실 앞에서 내리면서 갑자기 몸에 시너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여 분신을 시도했다. 그러나 근처의 경비 근무자가 택시 안의 소화기로 불을 끝 뒤 인근 강북삼성병원으로 옮겨 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그 시각에 청와대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국민통합위원회 위원들과 이라크 파병 관련 만찬 간담회를 하고 있어서 파병 반대 시위자가 아니냐는 추측이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측은 "현재 경찰이 정확한 분신 사유를 조사중이나 이씨가 소지한 불에 타고 남은 쪽지에 '카드빚 연체'라고 쓴 부분이 발견되어 일단 카드빚을 비관해 분신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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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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