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배
당시 지방 교회에서 있었던 이 사건은 나중에 사람들이 제2명동사건이라고 이름지었다. 임기준 목사는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인권외교를 표방한 미국 카터 행정부의 대외정책 등의 압력으로 박정희 정권이 1년 만에 그를 풀어 줬다. 그 이후 70년대 말부터 지난 93년 은퇴할 때까지 무안과 목포에서 목회 활동을 해 왔다.
5공 정권 시절인 지난 8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목포 상임공동의장을 맡았고, 92년 10월에는 목포민주시민운동협의회 의장으로 있으면서 집시법 위반 등으로 당시 징역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기도 했었다.
‘아직도 꿈이 있다‘
지난 93년 목회사역에서 물러난 뒤 목포민주시민운동협의회 고문으로 있다가, 3년 전 건강 때문에 경기도 고양에 사는 셋째 아들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지난해 평생을 함께 해온 부인 강금순씨가 투병 끝에 세상을 먼저 떠났다.
자신의 목회 활동과 민주화 운동의 무대나 다름없었던 목포를 불편한 몸으로 다시 찾은 임 목사는 이날 회고록 출판기념회에서 “그러나 내게 아직도 꿈이 있습니다. 조국통일의 산하를 보고 싶습니다. 고향 땅 함경도 회령 냇가에서 버들피리 꺽어 찬송을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팔순을 넘긴 임 목사 세월의 궤적 못지 않게 노구를 이끌고 찾아온 후배목사들이 함께 해 행사의 의미를 더해 줬다. 김창수 목사(전남노회장)는 이 자리에서 “임 목사님이 사회 문제 눈을 뜨게 해 준 정신적 스승이었다”며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었던 발자취가 회고록에 녹아있다”고 술회했다.
또 목포에서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해온 서창호 교수(목포대 대학원장)는 “하나님의 목자가 부당한 국가 권력과 사회악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를 말하고 있다”고 평했다.
회고록은 임 목사와 절친했던 목사가 지어 줬다는 호 천적(天笛)을 풀어쓴 ‘하늘 피리소리’로 이름지었다. 한 노목사의 이 회고록에는 일제치하, 해방공간, 6·25 동란 그리고 유신시절과 80년대, 현대사의 격랑을 헤치면서 살아온 그의 목회 발자국과 민주화 투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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