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의 '커밍아웃'과 독일 사회

[현지보고] 베를린 동성애축제에서 만난 사람들

등록 2004.06.20 11:53수정 2004.06.2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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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면서 가끔 동성애자들의 삶을 다룬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들의 삶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기는 했지만 고백하건대 그 문제에 대해서 깊이있게 고민한 적은 별로 없던 것이 것이 나의 삶이었다.

대학 시절, 하루는 함께 자취하던 친구와 비디오방에 갔었다. 실험영화를 제법 즐기던 그 친구가 직접 골라온 비디오는 생각지 않았던 동성애자에 관련된 것이었다. 비디오를 보는 내내 찝찝한 기분을 어떻게 할 수 없었고 몇 천원을 아쉬워하며 빨리 비디오 테이프가 다 돌아가기만을 기다렸다.

사회가 바뀌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점점 많아지면서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마저 누리지 못하는 그들의 삶에 대해 조금 관심을 가져보기도 했지만 그들의 문제는 여전히 그들의 문제였다.

a 다정스레 손을 잡고 있는 동성애자의 모습

다정스레 손을 잡고 있는 동성애자의 모습 ⓒ 강구섭

몇 년 전 처음으로 손을 잡고 걸어가던 남자 커플을 독일 시내에서 '구경'했다.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다정스레 포옹을 하며 서로를 어루만지는 모습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충격적이지도 않았다.

그냥 '저런 사람들이 정말 있구나' '이곳이 한국과 좀 다르기는 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천벌 받을 사람이나 다름없이 여겨지던 한국에 있는 '그들'에 대해 생각을 했다.

a 엄마 손잡고 함께 구경가는 동성애 축제.

엄마 손잡고 함께 구경가는 동성애 축제. ⓒ 강구섭

40만명 이상의 발길이 예상되는,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하지만 6월 19일 베를린에서 열린 동성애 축제는 가끔 독일에서 경험하는 여느 축제와 분위기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참가자 비율도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반반 수준이다.

물론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가 손을 잡고 다니고 있는 풍경들, 동성애자의 상징처럼 사용되고 있는 무지개 무늬의 국기들이 여기 저기에 걸려 있는 모습들이 이 축제의 주인은 동성애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동시에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다니며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는 아이들, 길에 선 채로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가볍게 몸을 흔드는 젊은이, 간만에 주말 나들이를 나와 서로 손을 꼭 잡고 찬찬히 여기 저기를 훑어보는 노부부의 모습은 이 축제가 단순히 그들만의 축제는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a 작년 행사에 참여했던 경찰 내 동성애 클럽, 올해는 참여하지 않았는지 찾을 수 없었다.

작년 행사에 참여했던 경찰 내 동성애 클럽, 올해는 참여하지 않았는지 찾을 수 없었다. ⓒ 강구섭

동성애 단체 활동가 스테판 렉(Stefan Reck)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그들 또한 이곳에서 소수자라는 당연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적어도 그들은 그들을 평범한 사회의 일원으로 대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었고 그 속에서 더 나은 앞으로를 꿈꾸고 있었다.


그가 꿈꾸는 삶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다름을 인정받으며 평범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a 떨이 비슷하게 염가로 화분을 팔고 있는 장사꾼의 모습.

떨이 비슷하게 염가로 화분을 팔고 있는 장사꾼의 모습. ⓒ 강구섭

그들이 단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들만의 폐쇄적인 삶을 강요받지 않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때가 빨리 왔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다음은 이날 축제에서 만난 스테판 렉과 나눈 대화내용이다.

a 대화를 나눈 동성애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테판 렉 (Stefan Reck)씨. 활동가라기 보다 지극히 평범한 한 사람의 이웃이었다.

대화를 나눈 동성애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테판 렉 (Stefan Reck)씨. 활동가라기 보다 지극히 평범한 한 사람의 이웃이었다. ⓒ 강구섭

- 베를린을 비롯한 전체 독일에 대략 몇 명의 동성애자가 살고 있는가.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고 베를린에는 전체 인구의 10% 가량이 동성애자라고 알려지고 있다. 즉 35만명 가량이라고 할 수 있다. 베를린에는 다른 지역보다 동성애자가 많이 살고 있는데 작은 도시, 지방에서 옮겨온 사람이 많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베를린 이외에 함부르크, 뮌헨, 쾰른 등에도 동성애자들이 많이 살고 있고 관련 단체들이 많이 존재한다. 통계 자료에 의하면 전체 독일 인구의 5~10% 가량이 동성애자라고 알려지고 있다."

- 언제 '커밍아웃'을 했는가.
"16살때다. 지금부터 21년 전이었으니까 아주 어린 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큰 갈등 없이 스스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 당시만 해도 사회분위기가 매우 보수적이었을 것 같은데.
"그때가 1982년이었다. 물론 독일도 보수적이긴 했는데 내가 살고 있는 주변환경은 그렇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은 전반적으로 상황이 많이 좋아졌고 커밍아웃을 하기에도 훨씬 수월한 분위기다."

- 커밍아웃 이후에는 어땠는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때 스스로 그것을 감당할 만한 상황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람마다 상당히 다를 것이라고 생각된다. 제법 이른 나이에 커밍아웃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데 베를린에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늦게 커밍아웃을 한다."

- 커밍아웃 이후 가족들이나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땠나.
"사실 주변의 사람들은 그렇게 놀라거나 충격을 받지는 않은 것 같다. 가족들의 경우에는 좀 상황이 달랐다. 부모님의 경우 손자를 보고 싶어 하기도 하고 또 대를 잇는 문제도 있고…. 그렇지만 나중에는 상황을 충분히 인정하셨다. 부모님은 아주 보수적인 분들이지만 아버지는 제법 빨리 나를 인정했고 어머니의 경우 좀더 시간이 필요했다."

a 정치정당에 소속해 있는 동성애자 클럽의 부스.

정치정당에 소속해 있는 동성애자 클럽의 부스. ⓒ 강구섭

- 사회생활 속에서, 혹은 일상생활 속에서 성적 정체성 때문에 차별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는가.
"내가 살아가고 있는 베를린에서는 별 어려움을 못 느낀다. 주변의 이웃들과도 아주 잘 지내고 있고 별 어려움이 없다. 이웃들은 모두 내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고 있고 나에 대해 여러가지를 많이 알고 있지만 아주 잘 지낸다. 그렇지만 베를린을 벗어나 작은 도시에 가거나 다른 지역에 가면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거나 적대적으로 대하고 싫어한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그렇게 대하는 다른 이유가 없다. 단순하게 나를 다른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 독일사회에 있는 동성애자들이 일반적으로 그렇게 느낀다고 말할 수 있는가.
"대도시에서는 대체로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작은 지방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정책적으로 그런 차별적인 요소를 해소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이제 막 시작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반대 분위기도 만만치 않고 여전히 동성애자가 사회적 소수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베를린을 비롯한 독일의 경우는 그래서 상당히 상황이 좋다고 말할 수 있다. 베를린에서 50~100km 가량 떨어진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지역만 해도 동성애자라는 것을 드러내고 살아가는 것이 아주 어렵다. 반대로 네덜란드의 경우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차이가 거의 없고 독일보다 몇 단계 앞선 상황이다."

- 이 행사의 모토가 '다른 우리에게도 동등한 권리를(Gleiche Rechte fuer Ungleiche)'이다. 이러한 주제가 이미 동성애자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게 아닌가.
"최근 동성애자에 대한 정치적 토론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나아가 성 정체성뿐 아닌 문화적 정치적 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해 전반적으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사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연대가 중요한 관건인데 시간이 꽤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 독일에는 대략 몇 개 정도의 동성애자 관련 단체가 있는가.
"독일 전체적으로는 잘 모르겠고 베를린에는 400개 이상의 각종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인터넷 등을 통해 함께 연대활동하는 것을 시도하고 있지만 워낙 종류도 다양하고 활동도 다양해 모든 단체를 포괄하는 활동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a 동성애자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무지개 깃발, 깃발이 꽃혀 있는 집을 베를린에서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동성애자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무지개 깃발, 깃발이 꽃혀 있는 집을 베를린에서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 강구섭

- 결혼은 했나?
"현재는 혼자 지내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고민중이다. 현재는 정치적인 이유로 결혼을 하지 않고 있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동성애 부부에게 법적인 제약이 아주 많은 반면 권리는 별로 없다. 네덜란드나 벨기에의 경우, 동성애 부부와 이성애 부부간 법적인 권리의 차이가 거의 없다.

그렇지만 독일의 경우는 법적, 사회적 제약이 아주 많다. 예를 들어 입양 문제 등에서 많은 제약이 존재한다. 독일에서 아주 유명한 (동성애자) 가수 한 사람이 아이를 입양을 했는데 불법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동성애자들도 보통의 일상을 살고 싶고 아이도 키우고 싶다. 동성애자들이 또 다른 동성애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아이를 키우려고 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터무니 없는 말이다."

- 몇 달 전 함부르크에서 동성애자 부부가 법적으로 인정받은 일이 있었는데.
"함께 생활하는 동반자(Lebenspartner)로 인정을 받았는데 아직 법적인 권리도 미약하고 문제가 많다.

현재 독일의 정치 지형 속에서 연방의회의 경우 동성애 부부에 대해 어느 정도 우호적인 세력들이 존재하고 있고 현 정부의 경우도 그런 편이다. 반면 지방정부는 전 독일에서 보수적인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들은 동성애자에 대해 아주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고 동성애자 문제에 대해 눈을 감으려고 한다."

- 무슨 일(직업)을 하는가.
"주택관리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동성애 단체의 포털 인터넷 사이트를 관리, 운영하고 있다. 글도 쓰고 새로운 행사도 계획하고 여러 사람들도 만나는 등 많은 일을 하고 있다."

- 활동을 위한 재정은 어떻게 충당하나.
"지금 갖고 있는 직업을 통해 생활에 충분한 수입을 얻는다. 때문에 단체에서는 보수 없이 일한다. 활동을 위해 필요한 부분은 개인 수입에서 직접 충당하기도 한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체에서는 운영진에 속해 있다.

- 한국 동성애자들은 독일보다 훨씬 어려운 사회적 환경에 처해 있다. 조언해 줄 말이 있다면.
"국가마다 상당히 다른 상황이고 아시아의 경우 상당히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다.

몇 년 전 동성애자와 정치 사이의 의사소통과 관련된 태국과 독일의 상황을 다룬 박사논문을 준비중인 태국사람을 만났는데 우리의 상황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동성애 문제는 정치와 연결지어야 한다. 이 문제를 중요하게 인식하는 정치가들이 하나의 그룹을 형성해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언론의 힘을 이용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이 문제에 관련된 대화, 토론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문제에 대한 이해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동성애자들 스스로 뒤켠에 있을 것이 아니라 TV 에 직접 나와 스스로를 내보이고 대화해야 한다."

- 동성애자들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할 말은 없는가.
"동성애자에 대한 거부감, 두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주 많고 그러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충분히 안다. 80% 이상의 사람이 그저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동성애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트랜스잰더의 사진이나 남장 여자, 여장 남자의 사진을 보는 것 등 단순한 호기심 거리로 동성애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도움이 안된다. 동성애자들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간다면 그들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성애자들의 삶 또한 보통 사람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상 생활 속에서 그것을 자연스럽게 인식할 때 생각이 바뀌리라 본다. 동성애자들의 역할도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자신을 자연스럽게 내보이고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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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독일에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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