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위 저수지에서 바라본 백아산-이 너머에 백아산 휴양림이 있습니다. 움푹 팩 바로 오른쪽이 그 유명한 마당바위입니다. 2000명 정도는 마당바위 위에서 놀 수 있습니다.김규환
해질 무렵 일찌감치 밥을 먹고 아이들끼리 먼저 학교로 달려갔다. 철퍼덕철퍼덕 신작로로 넘친 물도 아랑곳 하지 않고 뛰었다.
학교에 도착해보니 모자를 푹 눌러 쓴 아저씨 대여섯 명이 바삐 움직인다. 운동장 동쪽에 설치된 날이면 날마다 타고 올라 반대로 넘던 사다리 구조물 전체를 흰 천으로 덮어 묶고 있었다.
티켓을 따로 발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영화를 보려면 몇 군데 나무말뚝을 박아 새끼줄을 쳐놓은 금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나는 어슬렁거리다 끝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봤다.
“야 색끼들아. 니기덜 영화가 뭔지 알어?”
“아니. 글면 너는 알아?”
“째까만 있어봐 임마. 내가 금방 알아볼 텡께.”
화물차에 실린 발동기가 요란하게 적막한 시골 학교를 “통통통” 울렸다. 궁금증이 극에 달한 나는 인상 좋아 보이는 아저씨를 골라 여쭤보기로 했다.
“아자씨!”
“뭣 땜시 그냐?”
“아녀라우….”
선생님과 달리 퉁명스럽게 받아치는 아저씨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는 수밖에 없었다. “차르르르” 풀무치가 찰칵거리듯 소리를 내며 필름이 서서히 풀어지며 반대편으로 감긴다. 시험 가동 중이었다. 몇몇 동네 꼬마 녀석들은 필름에서 그냥 빨간 불빛만 나오는 줄 알고 영사기 앞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손으로 빛이 나오는 부분을 막아보기도 한다.
곧 으스름해지자 영사기 주위로 모기와 깔따구, 하루살이가 몰려들었다. 나와 동무들은 마냥 신기해 따끈한 영사기 불빛에 머리를 처박아 영화와 첫 대면을 했다. ‘그래, 내가 첫째로 불빛을 쬐었으니까 제일 먼저 영화 본 것이야’라고 생각하며 뿌듯해 하고 있었다. 돈가스(비프스테이크)를 시켜놓고 스프만 먹고 나온 시골 사람들 이야기처럼 말이다.
요란한 개구리 소리가 긴 밤으로 초대를 했다. 사람들은 각자 들고 온 가마니 쪼가리나 비료 부대를 깔고 앉았다. 삼삼오오 가족끼리 옹기종기 모여 있다. 어른들 손엔 들린 부채는 바람 한 점 없는 데 요긴할 뿐 아니라 모기를 잡는데도 쓸모가 있었다. 한 집에서 대여섯 명은 기본이고 예닐곱, 열이 넘는 집안도 있었다. 학교 절반이 넘는 꽤 큰 운동장에 그 많은 사람이 몰리기는 운동회 때 빼고 전에 없던 일이다.
어디에 설치한지를 모르는 스피커에 대고 “쎄쎄”, “쎄쎄” “아아 마이크 실험 중”이라는 말을 내뱉는다. 이어서 “퉁퉁” 소리가 나더니 흰 천에 불빛이 비친다. 한 사람은 화면크기를 맞추느라 진땀을 뺀다. 영화 화면은 처음부터 무척 큰 빛줄기가 연신 짝짝 빗금을 그어댔다.
소위 연애질(?)을 다룬 첫 편은 예정 시각보다 30여 분 늦게 시작되었다. 제목, 출연자, 배경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지만 영화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키스를 해대는 통에 우린 눈을 돌릴 준비하느라 바빴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 필름이 끊기고 화면이 죽기를 반복했으니 손가락 사이로 슬며시 훔쳐보는 일도 없었다.
중학생들만 “에~”하며 아쉬운 말을 내지른다. 그래도 3~4분여 지나면 불빛이 비추고 다시 돌았다. 그렇게 첫 편은 열 번 가량 멈췄다가 다시 돌았으니 아무 흥미도 주지 못한 채 끝났다. 기존 필름 통을 빼내고 다시 시작하는 데는 5분 여의 시간이 걸렸다. 항의할 줄도 모르고 공짜라니 그저 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