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71

여인의 음모

등록 2004.06.24 09:30수정 2004.06.2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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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음모

"허허허. 태조대왕께서 이 나라를 세운지 4백년이 넘어 5백년을 굽어보는데 부처의 뜻을 모시는 곳들은 날로 쇠락해 가는 구나."

혜천스님은 동자승과 함께 한 이름 없는 암자에 짐을 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비록 현판도 없었지만 암자라고 하기에는 제법 널찍한 법당도 있었고 불상도 갖추어져 있는 곳이었다. 다만 암자에 기거하던 스님들이 고된 노역을 피해 모두 달아난 지 오래되었을 뿐이었다.


"인근에 불암사가 있으니 제가 앞으로 도울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혜천스님 옆에 있는 자는 별감 강석배였다.

"아닐세, 자네가 큰 도움을 주었네. 게다가 이번에는 며칠 동안이나 수고를 하지 않았나. 그런데, 그간 진정 그들의 뜻을 알지 못했단 말인가?"

강석배는 머리를 떨구며 고개를 저었다.

"소인이 미련하여 알 수 없었사옵니다. 헌데 왜 그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지요?"


혜천스님은 잔잔히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내게 접근해 오는 통에 일이 꼬이긴 했지만 되도록 날 모르는 것이 좋다네. 솔직히 난 그들을 믿을 수가 없네만…. 자네가 가까이 있으니 잘못 어긋나는 일은 바로 잡아주게."


"제가 무슨 힘이 있겠사옵니까. 하지만 보아하니 허튼 짓을 할 사람들은 아닌 듯 하오이다."

강석배는 고개를 바로 들지 못하며 중얼거렸고 혜천스님은 뭔가 미덥지 못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자들은 사람을 함부로 해쳤네. 게다가 그들 중 하나는 난리를 일으키려다 참수까지 당했는데 어찌 안도할 수 있겠나? 그런 자들을 믿고 그냥 놓아 둔 내가 큰 실수를 한 걸세."

강석배는 혜천스님의 말이 끝나자 정중히 인사를 한 후 서둘러 산을 내려갔다.

'이게 잘 하는 짓일까? 난 오늘 두 번의 배신을 했다.'

강석배는 '배신'이라는 말을 곱씹으며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정신없이 산을 내려왔다. 어느덧 강석배의 뺨에는 한줄기 눈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그는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자, 짐을 다 풀었으면 나와 함께 불암산을 둘러보자꾸나."

혜천스님이 동자승을 데리고 간 곳은 커다란 능이 굽어보이는 곳이었다.

"불암산에 대한 이야기를 아느냐?"
"모르옵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혜천스님은 능을 굽이 보며 천천히 불암산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불암산은 한양의 동북편에 있고 등을 지고 있는 형세로 자리하고 있느니라. 원래 불암산은 금강산에 있던 산인데 태조께서 조선을 건국하고 도읍을 정할 때 한양에 남산이 없어서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문을 금강산에서 듣게 되지. 헌데 불암산은 자기가 가서 한양의 남산이 되고 싶었느니라. 이에 금강산에서 떠나 한양으로 오게 되었지."

동자승은 또랑또랑한 눈으로 혜천스님을 바라보았다. 산이 어찌 걸어올 수 있느냐고 반문할 법도 한데 동자승의 눈은 혜천스님의 속을 바라보는 듯 차분하기만 했다.

"그런데 한양으로 오니 어느 새인가 남산이 자리잡고 있었느니라. 이에 실망한 불암산은 한양을 등지고 여기 서 있게 된 것이니라."
"스님."

동자승은 아이답지 않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님께서 불암산이었다면 어찌 하셨을 것이옵니까."
"그야 여기서 눙치고 있느니 경치 화려한 금강산으로 돌아갔겠지. 너라면 어찌 하였겠느냐?"

"저라면 한양으로 가 자리잡고 있던 남산에게 비키라고 하겠사옵니다."

혜천스님은 엄한 표정으로 동자승을 보았다.

"비켜달라고 해도 쉽게 비켜나지 않을 터인데 어찌할 것인가?"

동자승은 히쭉 웃으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그땐 스님께서 도와주면 됩니다."

혜천스님은 크게 웃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만약 내가 없다면 어찌 하려 그려느냐?"
"여기서는 저 능에 있는 분이 돌보아 주시겠죠."
"어허! 어떤 경우라도 그런 말은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거늘!"

혜천스님의 표정은 조금 전까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해졌고 동자승은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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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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