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퇴진' 전략이 정답일까요?

민주노동당 박용진 위원장께

등록 2004.06.27 15:54수정 2004.06.27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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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선 복권을 축하드립니다. 더욱 더 많은 활약을 기대합니다. 박용진(강북을) 위원장님이 <진보누리>에 쓴 '민주노동당에게 김선일씨를 추모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위원장님의 글에서는 진보진영의 다른 글과는 달리 진정성이 담겨 있어 통하는 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위원장님은 이렇게 주장하셨지요.

"이 저열한 민족주의의 발호를 막아내는 것은 다름 아닌 이번 김선일씨 죽음으로 인한 분노와 투쟁의 칼끝을 노무현 정권에게 겨누는 데 있다. 마냥 김선일씨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성과도 이루어낼 수 없다. 그저 파병론자들의 광기어린 주장이 난무하도록 방치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파병철회가 아니면 정권퇴진 밖에 없다는 단호한 정치적 주장이 필요한 때이다."

기본적으로는 저도 위원장님의 인식과 같습니다. 어느 정당보다도 민주노동당의 정신과 정책을 지지하며, 이라크 파병에 반대합니다. 물론 응징을 선동하는 저열한 민족주의의 발호에도 단호하게 반대합니다. 사실 그것은 민족주의도 아닙니다. 민족의 운명을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발상이 어찌 민족주의일 수 있겠습니까?

노무현 정권의 책임이 크다는 점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외교부 관료들의 무사안일, 중동지역 정보력의 부재, 성급한 파병방침 불변 천명, 안이한 구명노력 등이 김선일씨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파병 결정 자체가 근본적인 원인이지요. 하여 김선일씨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고, 더 이상의 무고한 희생이 나오지 않게 하려면 파병을 철회해야 합니다. 재건 목적이라는 홍보는 먹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이지요. 좁은 범위에서의 인식은 동일하고 추구하는 목적은 같지만, 처방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분노는 이해할 수 있지만, 정권퇴진을 내걸고 투쟁의 칼끝을 겨눌 대상이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단순히 정치적 구호라면 모르겠으나 실천적 방법에서도 그리 방향을 맞춘다면 과녁을 잘못 겨냥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파병철회를 성사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물리치고 파병을 철회하도록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이 점에 대해 냉철하고도 깊은 성찰이 필요한 때입니다. 대통령을 탓하고 정권퇴진을 주장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정부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이빨이 반은 빠진 조중동에 대해서도 무력한 모습을 보이는 정권입니다.

중요한 것은 국민여론입니다. 만약 작년에 노 대통령이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청을 거부하는 결단을 내렸다고 가정합시다.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요. 이럴 때 국민들이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다면 미국도 어쩌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그 반대였을 겁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집니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서희·제마부대 철수와 추가파병 철회를 결정한다고 가정할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요? 여론이 뒤집어져 파병찬성이 70%에 달하는 시점입니다. 광화문에 모인 인원도 2만 명이 채 안 되지 않습니까? 이런 분위기에서 노 정권에게 칼끝을 겨누고 정권퇴진을 주장하는 게 현명한 전략이냐 하는 것이지요. 미국의 압력보다도 더 무거운 압력을 조직하는 게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게 선행되지 않는 주장은 공허할 뿐입니다.

이 문제도 결국은 언론의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세 번의 선거에서 쓰라린 실패를 경험하면서 그 위력이 현저하게 약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번과 같은 사안에서는 위력을 발휘할 여력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언론운동진영은 평소 조·중·동의 여론왜곡을 근본적으로 제어하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하고 있으나 힘에 부칩니다. 진보진영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도 반향이 없습니다. 자발적으로 언론개혁운동에 힘을 보태겠다는 민중·시민단체는 하나도 없습니다.

파병철회를 위해서는, 처음부터 한미동맹을 강조하며 파병을 독려했고, 지금은 추가파병과 테러에 대한 응징을 선동하는 조·중·동에 칼끝을 겨누어야 합입니다. 저열한 민족주의 발호의 진원지인 조·중·동을 비판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대로 파병에 반대하는 언론에는 힘을 실어주어야 합니다.

<조선일보>가 아직도 큰 소리 치는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발행부수가 많은 것은 물론이고, 그 중에서도 관료들이 비중 있게 이 신문에 의존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군사정권 시절부터 <조선일보>에 익숙해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국민들의 생각보다는 <조선일보>의 사설에 더 영향을 받습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습니다. 아무리 분하고 마음이 급해도 정곡을 찌르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노무현 정권이 퇴진하면 좋아할 자들이 따로 있습니다. 파병철회는 더더욱 멀어집니다. 민주노동당 대표라고 해서 잘잘못을 떠나 당원들의 뜻을 거스르는 결정을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마찬가집니다. 국민여론을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관건입니다. 건승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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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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