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느 계단을 넘고 계십니까?

박철의 <느릿느릿 이야기>

등록 2004.06.27 16:07수정 2004.06.2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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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오

만발한 꽃은 시들고 청춘은 늙음에 굴복하듯이 인생의 각 계단도 지혜도 덕도 모두 그 때마다 꽃이 필 뿐 영속은 허용되지 않는다. 삶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은 용감하게 그러나 슬퍼하지 말고 새로운 단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이별과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만 한다. 무릇 생의 단계의 시초에는 우리를 지켜주고 살아가게 하는 마력이 깃들어 있다. 우리는 이어지는 생의 공간을 명랑하게 지나가야 하나니 어느 곳에도 고향같이 집착해서는 안 되며, 우주의 정신은 우리를 붙잡아 두거나 구속하지 않고 우리를 한 계단씩 높이고 넓히려 한다. 우리가 어떤 생활권에 뿌리를 내리고 마음 편히 살게 되면 무기력해지기 쉽나니, 새로운 출발과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만이 우리를 마비시키는 습관에서 벗어나리라. (Hermann Hesse. 생의 의미)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왜 살아야 하느냐의 문제에 대하여 성실한 대답이 주어지려면 깊은 정신적인 고민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삶의 보람, 가치, 행복 등과도 관련된 이야기이지요. 대체로 세 개의 계단을 거치게 됩니다.

첫째의 계단은 주체성의 형성입니다. 이것은 자기 발견의 계단이지요. 역사 안에서 그리고 사회 속에서 자기를 인식하고 자신의 주체성을 자각하는 일입니다. 스스로 서는 일입니다.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일입니다. 스스로 행동을 결단하고 그 행동에 대하여 책임을 진 줄 아는 일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주체성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할 때 어떠한 현상이 생겨납니까? 그냥 무엇에 밀려가게 됩니다. 흐르는 시간 속에 그냥 떠내려가게 됩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형국이 되고 맙니다. 이를테면 자기의 생활이 없고 그저 끌려가는 삶이 있을 따름입니다. 부모에게 끌려가고 친구에게 끌려가고 상황에 몰리고 정세에 밀리고 운명에 매달려야 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결국 삶의 의미나 보람을 찾지 못한 채 시들어 버리고 말게 됩니다. 거기에는 피동이 있을 뿐 주체가 없습니다. 거기에는 운명이 있을 뿐 결단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모방이 있을 뿐 창조가 없습니다. 의존이 있으나 독립이 없습니다. 오늘의 많은 젊은이들 중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비극적인 삶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흔히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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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오

두번째의 계단은 어울림의 길입니다. 이는 삶의 조화를 발견하는 계단이지요. 주체성 형성이라는 단계에 머물고 말면 그의 인생은 고집스러워지기 쉽고 배타적이기 쉽습니다. 지나친 자기주장의 표현 때문에 완강해 지고 독선이 되며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고립시키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인간은 다음의 계단인 어울림의 세계를 발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나의 주체성만이 아니라 남의 주체성, 이웃과 여럿의 주체성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삶의 어울림을 찾을 줄 아는 지혜를 가지는 일입니다. 이를테면 우리의 인생이 주체적이고 창의적 이고 자의식적(自意識的)이어야 하는 동시에 그렇다고 독선적이거나 배타적이거나 자존, 고립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삶이란 사회성을 가질 때에 만 의미가 있게 되기 때문이지요. 이 어울림의 길은 몇 가지 면이 있습니다. 나와 자연과의 어울림, 나와 사회와의 어울림, 그리고 나와 역사와의 어울림,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나와 신(神)과의 어울림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거기서 비로소 인간은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외로이 떨어진 존재가 아니요, 피차 서로가 진실한 어울림을 느낄 때에 인생의 기쁨, 가치, 행복감에 젖어들게 됩니다. 그것은 결코 줏대 없는 타협이나 무기력한 굴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건전하고 성실한, 종교적이며 윤리적인 자아가 형성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이 사랑을 필요로 하며 협조와 이해를 요구하는 이유인 것이다. 마틴 부버의 "나와 너"의 문제가 바로 이러한 사회적인 조화감 안에서 참된 삶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올라서야 하는 계단은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느냐 하는, 이른바 삶의 방향과 목표의 계단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원숙한 인간의 모습을 봅니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간다는 신념의 확립입니다. 의식적으로 주제넘은 생각을 가진다는 말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주체성 형성과 사회의식이 만들어졌을 때에 내 안에서 생겨나는 하나의 자기실현의 과정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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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인오

여기서 말하는 자기실현이란 곧 봉사 정신과 연결됩니다. 일종의 사명의식과도 일치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삶의 방향이 서고 목표가 뚜렷해집니다. 이것은 나무에 비한다면 잎이나 꽃의 이야기가 아니라 열매의 이야기이지요.

한편으로 보면 자기완성의 길이요, 다른 편으로 보면 사회봉사의 길, 가치 창조의 길인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야말로 참된 의미를 지닌 인생의 모습입니다. '무엇' 때문에 살고 계십니까. 그 '무엇'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가치와 행복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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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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