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주의가 한 사회를 좀먹는 이유

세계적인 사회학자가 바라본 알제리 이미지 <피에르 부르디외 사진전>

등록 2004.06.28 13:45수정 2004.06.2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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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대륙 북서부, 지중해에 인접한 아랍계 국가 알제리. 지금은 지중해와 아프리카 대륙의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된 이 나라는 1830년 프랑스의 수도 알제 점령 이후 130여년 간 프랑스의 식민 통치를 받았다.

오랜 기간 프랑스의 통치하에 놓여 있던 알제리는 192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친 기나긴 민족주의 운동 끝에 겨우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현재 대림미술관 전시실에서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피에르 부르디외 사진전>은 식민 통치하의 알제리 모습을 담고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알제리의 독립 운동 기간 동안 징집되어 이곳에서 군복무를 하였던 프랑스의 유명한 사회학자이다. 그는 원래 철학을 전공했는데 알제리에서의 충격적 경험 이후 사회학을 공부하게 된다.

부르디외는 식민 통치로 인해 억압받았던 알제리 국민들, 프랑스의 군사적 탄압, 프랑스 자국 문화를 강제로 알제리에 전파시키려 했던 폭력성 등을 사진을 통해 고발한다. 이 전시는 그가 군복무를 끝내고 2년 여간 알제리에 머물면서 작업한 것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그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장면 하나하나는 식민 치하의 알제리 현실을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보여 준다. 사진과 함께 부착되어 있는 그의 저서 속 구절들은 프랑스의 식민 통치가 어떻게 알제리 문화를 파괴해 갔는지 극명히 드러내는 것들이다.

a 피에르 부르디외의 작품들

피에르 부르디외의 작품들 ⓒ 대림미술관

봉스와(저녁 인사)를 처음 듣던 날
우리 입에는 일격이 가해지고
빗장 지른 감옥이 넘쳤다.

봉쥬르(안녕)을 처음 듣던 날
우리 코에는 일격이 가해지고
축복은 더 이상 없었다.

꼬숑(돼지)를 처음 듣던 날
우리는 개만도 못하게 되었고
소작인은 노새 한 마리를 샀다.


프레르(형제)를 처음 듣던 날
우리 무릎에 일격이 가해지고
수치는 가슴까지 찼다.

디아블(악마)를 처음 듣던 날
우리를 미치게 하는 일격을 받았고
우리는 인분 배달꾼이 되었다.


하노르, 쥬르주르 지방 카빌족의 민중 시가
- 피에르 부르디외의 저서 <실향> 중에서


이 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프랑스는 알제리의 고유 문화와 전통적 삶의 방식을 서서히 파괴했다. 마치 우리나라가 30여년 일본 통치로 우리 문화가 일본 문화에 좀먹었듯이, 130여년의 프랑스 통치 기간은 알제리의 전통 문화를 충분히 파괴하고도 남는다.

프랑스식의 구획 정리, 노동력 착취를 위한 강제 이주와 집단 거주, 전통 문화를 미개한 것으로 취급하여 파괴하기 등 부르디외의 사진전은 프랑스 지배자들의 폭력성을 냉정하게 고발한다. 그 고발이 피해자인 알제리인을 통해서가 아니라 지배자였던 프랑스인의 시각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자신들의 폭력적 행동을 인정하고 그것을 또 다른 나라 국민들에게 보여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자신의 저서와 사진들을 통해 평생 프랑스의 알제리 문화 파괴를 드러내는 데에 주력하였다.

부르디외가 사르트르와 미셀 푸코에 이어 프랑스 지성사에 빛나는 세계적인 석학으로 평가받는 데에는 그의 사회 비판적이고 현실 참여적인 태도가 한 몫을 한다. 부르디외의 연구들은 '사회 문화적 불평등이 어떻게 재생산되는가'라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하여 서구 문명으로 인해 알제리 원주민이 겪은 문화 박탈에 대한 것들을 포함한다.

대림 미술관의 안내서에도 언급되었듯이, 그의 사진은 단순한 기록의 차원을 넘어 사회 문화적 박탈과 폭력성에 대한 그의 연구를 심화 발전시키는 역할을 한다. 사진들 속에 담긴 슬픈 눈의 사람들, 사라져 가는 알제리 전통 문화, 프랑스 식 건물들과 서서히 변화하는 알제리의 모습.

이것은 단순한 사진이 아닌 역사적 기록이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역사의 서글픈 과거이다. 현재에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폭력이며, 알게 모르게 진행되고 있는 문화 침범과 전통 파괴이다.

과거 식민주의가 한 사회를 좀먹고 그들의 전통을 말살시켰듯이, 현재 세계화라는 이름의 괴물이 많은 약소 국가들의 고유 문화를 파괴하고 있다.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는 이러한 위기감을 항상 느끼면서 지내라고, 2002년 사망한 부르디외의 사진들은 한국의 조그만 전시실에서 주인도 없이 그 흐릿한 흑백의 조화를 빛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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