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 호랑이 이야기 48

길도 이름도 없는 숲 1

등록 2004.06.29 00:52수정 2004.06.2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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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천문신장님이 주신 나침반으로 찾아간 곳은 울창한 숲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만난 가신들 모두 전부 깊은 산 속 울창한 숲에 살고 있었지만, 이곳은 좀 달랐습니다.


나무들이 하늘을 메우고 있는 것처럼 빽빽이 들어차 있고, 아무리 걸어도 성주신의 집이 있을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울창한 숲이었지만 새소리 하나 벌레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습니다.

길게 뻗은 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햇빛 줄기가 어두컴컴한 숲을 밝히고 있었고 나무 아래에서 고개를 숙이고 자라고 있는 이끼들이 묘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바리가 물었습니다.

“백호야, 대체 어디를 가야 성주신을 만날 수 있는거야? 성주신도 이런데 오두막을 짓고 살고 계셔?”


백호가 말했습니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모든 나무들의 영혼이 살아 숨쉬는 곳이야. 성주신은 이 나무들 어딘가에서 나무들과 함께 살고 계실거야.”


“그럼 누구한테 물어볼 수는 없는거야? 지난 번에 서낭신처럼 말이야.”

바리가 힘겨운 듯 백호에게 기대어 걸으며 말했습니다. 자기의 볼로 바리의 머리는 부비며 백호가 약간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래? 그럼 어디 물어볼 사람이 있는지 한번 찾아봐라.”

“그런데 누구에게 가서 물어본담?”

바리가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 누군가 뒤에서 바리를 부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아가씨. 우리가 뭐라도 도와줄까요?”

“예?”

놀란 바리는 화들짝 뒤를 쳐다보았습니다.

바리 뒤에는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 밖에 없었습니다.

“백호야, 너 들었지. 누가 날 불렀잖아.”

바리는 백호를 보며 다시 묻자, 백호는 가만히 자세를 고쳐 앉더니 지난 번 산오뚝이들을 부를 때처럼 달가닥거리는 이상한 소리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러자 어딘가에서 다른 소리가 들렸습니다.

“여기선 산오뚝이들을 부를 필요가 없어요, 우리는 산오뚝이들과 살지 않습니다.”

백호가 그 소리에 답했습니다.

”나무님들이 이야기하시는 소리인가요?”

“예, 우리들은 이곳의 나무들입니다.”

“손님들이 오셨군요.”

”참 오랜만에 손님들을 보네요.”

“우리들을 해하려고 오신 것은 아니죠?”

숲 여기저기에서 이런 목소리들이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바리라고 해요.”

바리가 대답하자 나무들이 말하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다시 울려퍼졌습니다.

“아, 바리.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여기까지 올 수 있다니 너무 놀라와요.”

“조금만 기다려요, 다시 엄마 아빠를 만날 수 있을거예요.”

“혹시 이 숲이 너무 춥지는 않나요.”

그러자 갑자기 한줄기 강한 햇빛이 바리를 향해 내리꽂혔습니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요, 너무 눈이 부셔서 아무 것도 못 보겠어요.”

바리가 손으로 눈을 가리며 이야기하자, 햇빛은 다시 다른 곳으로 길을 피해갔습니다.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목소리는 있었습니다. 누가 이야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 사는 나무들은 전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리가 물었습니다.

“나무님들 지금 다들 어디에서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우리는 지금 바리 옆에 있잖아요.”

”바리 주변에 있는 우리들이 이야기하고 있는거예요.”

“우리는 다른 동물들처럼 입을 벌려서 이야기하지 않아요.”

“우리는 사람들처럼 누구를 쳐다보면서 이야기하지도 않아요.”

“이곳은 모든 나무들이 전부 하나가 되어 이야기를 한답니다.”

“바리도 백호도 이곳 숲에서는 우리 나무가 되어서 우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
는 거예요.”

“뭐라구요? 우리가 나무가 되었다구요?”

바리는 놀라 자기 몸을 둘러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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