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많은 비석을 세워 놓았지?

[경북 구룡포] 희미한 기억속의 일본식 거리

등록 2004.07.13 18:04수정 2004.07.15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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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장마에 오늘도 날씨가 흐리다. 6월 26일 다행스럽게 비는 오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를 보내며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맴도는 일제의 흔적은 지울 수 없는 것일까?

정확한 주소는 경상북도 포항시 구룡포읍 구룡포 5리. 부산에서 출발한 나는 울산을 거쳐 동해를 끼고 한참을 달려 구룡포에 도착했다.


이 곳은 일제시대 청어나 꽁치기름을 짜서 공급했다는 말이 들릴 정도로 청어나 꽁치가 많이 잡히는 곳이다. 이러한 명성이 오늘날 '과메기'라는 상품으로 만들어졌다고 하겠다.

호랑이 꼬리를 닮았다는 호미곶이 가까이 있으며, 이 곳은 새해가 되면 해 맞이 행사로 한바탕 매스컴에 오르내기도 한다. 구룡포는 포항시에 속해 있으면서도 시내의 번잡한 느낌보다는 바닷가의 작은 어촌 마을 같은 곳이다. 바닷가를 따라 형성된 어장을 뒤로 하고 주민들이 살고 있는 뒷골목으로 들어섰다.

a 추억의 공중목욕탕(지금도 영업중인가?)

추억의 공중목욕탕(지금도 영업중인가?) ⓒ 함정도


a 비교적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일본식 목조건물

비교적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일본식 목조건물 ⓒ 함정도

<헐리우드키드의 생애>라는 영화에나 나옴직한 골목이다. 좁은 길 양쪽으로 낮은 이마를 맞대고 일제식 목조건물이 나란히 늘어서 있다. 작은 골목 귀퉁이에서 어린시절 보다 훨씬 먼 추억에 잠겨본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남탕 여탕 구분 없이 들어갈 수 있었던 공중목욕탕.

문을 열면 길과 옆집이 마주하는 장난감 같은 목조 건물. 도시 생활에서 느낄 수 없는 모습들이 이 곳에는 가득하다. 타임머신을 타고 시대를 거슬러 온 느낌이다.

a 용왕당 입구 (튼튼한 다용도 건조대 ? )

용왕당 입구 (튼튼한 다용도 건조대 ? ) ⓒ 함정도


a 용왕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용왕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 함정도

갑자기 가파른 계단이 길을 막는다. 용왕당 입구라는 비석을 앞세워 계단 양쪽에 수많은 비석이 특이한 모양을 연출한다.


왜 이렇게 많은 비석을 세워 놓았지?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a 계단 옆의 비석들

계단 옆의 비석들 ⓒ 함정도


a 비석 뒷면(시멘트로 메운 흔적이 보인다)

비석 뒷면(시멘트로 메운 흔적이 보인다) ⓒ 함정도

이 곳은 일제 시대 신사(神社)가 위치한 곳으로 당시 일본인들이 신사 참배를 하면서 자신들의 이름을 새겨 놓은 것이었다. 해방후 비석은 뽑힌 것이 아니라 그 비석에 구룡포 유지들의 이름을 새겨 지금에 이르고 있다. 어떻게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비석 뒷면을 보면 일본인의 이름을 시멘트로 메운 흔적이 뚜렷하다. 신사 참배의 현장을 재활용했나?

잠시 머리가 혼란스럽다.

a 용왕당 에서 바라본 구룡포 전경

용왕당 에서 바라본 구룡포 전경 ⓒ 함정도


a 일본인 공덕비(시멘트로 메운 흔적이 뚜렷하다)

일본인 공덕비(시멘트로 메운 흔적이 뚜렷하다) ⓒ 함정도

계단을 오르니 구룡포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역시 전망이 제일 좋은 곳에 신사(神社)를 만들어 놓은 일본인들의 속내를 알 것 같다.

60년이 지난 지금도 일제의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일본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워놓은 공덕비의 글씨는 시멘트로 메워져 있고 신사(神社)가 위치한 곳에는 용왕당이 대신하고 있었다.

해방후 신사(神社)가 용왕당으로 변한 것도 어촌 마을 공통체의 자연스런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제 신사(神社)와 우리 토속 용왕당의 분위기가 뒤섞인 묘한 기분이다.

우리들 생활 속에 무심히 자리잡고 있는 일본의 문화를 그동안 너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한동안 불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a 용왕당을 지키는 조천용(76)할아버지

용왕당을 지키는 조천용(76)할아버지 ⓒ 함정도


a 용왕당 문을 열어 보이는 할아버지

용왕당 문을 열어 보이는 할아버지 ⓒ 함정도

용왕당을 지키고 계시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조천용(76) 할아버지는 혼자 살며 용왕당을 관리하고 계셨다. 생활비는 어디서 나오느냐는 질문에 선주(船主)들이 조금씩 모아서 보태주고 있다고 했다.

노인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기는 힘에 벅찬 모습이었다. 할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포항시나 읍에서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지금 용왕당마저 허물어져 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용왕당의 모습을 보고싶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뭐 별게 없어요" 하며 정말 보고 싶다면 보여주겠다고 용왕당으로 안내했다. 평소에 굳게 잠겨있던 문이 열렸다. 무너진 지붕을 천막으로 감싼 채 용왕당 비각은 나타났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지방에 흩어져 있는 이름없는 문화재들이 우리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하찮은 문화재도 가치를 인정할 때만 우리들 곁에서 영원히 같이 있는 것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한다. 늘 그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 언제부터인가 옆에 없다는 것을 알고난 후 그 사람에 대한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곤 한다.

있을 때 잘하자. 없으면 후회해도 소용없으니까.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들의 부모, 형제가 이 곳에서 살고 있고,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후손들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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