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
"은빈이 지갑에 돈이 얼마나 있어요?"
"이제 몇 천원밖에 없을 걸요?"
"정말? 나는 한 십만원 쯤 있다고…그런데 나한테 2만원을 주었단 말이오?"
"올 설날 때 세배하고 받은 돈과 어른들에게 인사하고 받은 돈을 하나도 쓰지 않고 다 모았어요. 처음에는 10만원도 넘었지요. 그런데 올 2월 큰오빠 아딧줄이 필리핀에 공부하러 갈 때 오빠 구두 사 신으라고 5만원을 내놓더라고요. 그리고 지난달에 파마하라고 내게 2만원 주고, 어제 당신한테 2만원 주고, 그러니 남은 돈이 얼마나 있겠어요."
그랬습니다. 은빈이가 나한테 2만원을 주고 나면 몇 천원밖에 남는 게 없다는 것을 알면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내가 불쌍해 보였을까요? 은빈이는 내 서재에서 팬티만 입고 정신없이 자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학교 지각하겠다고 흔들어 깨우자 간신히 일어났습니다. 세수를 하고 아침밥을 먹고 있는 은빈이에게 내가 물었습니다.
"은빈아, 아빠가 어제 너무 감격했다. 우리 은빈이가 그렇게 속이 깊은 줄 몰랐어. 너도 돈이 많지 않은데 어떻게 네가 준 돈을 아빠가 쓸 수 있겠니? 그러니 다시 돌려줄게."
"아빠, 아녜요. 아빠가 백만원이나 이백만원쯤 돈 많이 벌면 그 때 돌려주라."
"너한테 몇 천원 밖에 없다며?"
"괜찮아요. 내가 돈 쓸 일이 어디 있나요."
자고 나면 은빈이 마음이 바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은빈이가 준 만원권 지폐를 지갑에서 여러 차례 꺼내 만지작거리며 늦둥이의 사랑을 곱씹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습니다. 저녁 나절 뜻하지 않게 서울 처형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내를 바꿔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장난기가 발동이 되어 나한테 말하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내일이 아내 생일인데, 동생 생일 축하해 주려고 전화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내 생일을 모르고 있었냐고 묻더군요. 옆에서 아내가 다 듣고 있었습니다. 거실에 걸어놓은 달력을 보니 7월 3일(토)에 동그라미를 그려놓았고 김○○ 생일하고 써놓은 것이 보였습니다.
"당신, 내일이 생일이야?"
"달력에 표시해 놓은 것도 못 봤어요."
거실 바닥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은빈이가 어지럽혀 놓은 그림도구를 치우고 살며시 내 앞으로 오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낮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빠, 그저께 내가 준 돈 다시 돌려주면 안 될까요?"
"왜? 어디다 쓰려고?"
"엄마가 내일 생신이라는데 가만있을 수 없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