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의 노예'가 된 나를 반성하며

점수로 잴 수 없는 것들이 더 많다

등록 2004.07.03 09:48수정 2004.07.03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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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까발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더 이상 어리석을 수 없는 내 안의 허구를 만천하에 드러내어 조롱거리로 만들고 싶은 이런 극단적인 감정은, 다행히도 자학이 아닌 오히려 나를 치유하고 싶은 간절한 열망에 가깝습니다. 병은 자랑하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어느 날 인터넷 서점에 들어갔다가 얼마전에 출간한 책에 사회과학분야 주간베스트 순위가 매겨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1위에서 100위까지 매겨진 순위에서 제가 낸 책은 딱 중간지점이었습니다. 기분이 묘했습니다. 택배로 보내온 책표지를 처음 만져볼 때와는 또 다른 흥분이 느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내 행복의 절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며칠 뒤, 순위가 껑충 뛰어 10위 권 안으로 진입할 조짐을 보이면서 저는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몇 계단만 더 오르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입니다. 그 욕심이 차츰 커지면서 내 안에서 뛰놀았던 잔잔한 기쁨과 소박한 기대감 같은 것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남은 것은 오로지 수직상승의 욕망뿐이었습니다.

며칠 뒤에는 더 심각한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전날까지만 해도 감히 바라보지도 못할 만큼 한참 위에 있다가 하루만에 서열이 하향조정되어 내 아래로 내려와 있는 작가와 그의 책을 바라보는 눈빛에 조소에 가까운 이상야릇한 감정이 묻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책의 내용과 저자의 됨됨이와는 상관없이 등위가 나보다 몇 계단 아래라는 사실만으로.

한 주가 지나자 순위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는 아예 주간베스트 순위에서 제외되고 말았습니다. 하루하루 점수도 낮아졌습니다. 그날의 판매실적에 따라 등위와 점수가 매겨지는 것일 뿐, 그것이 작가와 작품을 평가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익히 알면서도 저는 작아지고 또 작아졌습니다. 내가 던진 조소의 눈길이 부메랑이 되어 내 가슴에 꽂힌 격이었습니다.

인터넷 서점에서의 주간베스트 순위란 초대형 베스트셀러를 제외하고는 불과 몇 권, 많아야 수십권으로 순위가 크게 바뀌기도 합니다.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정말 허탈한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후로도 저는 여전히 숫자의 노예가 되어 등위와 점수만으로 작가의 영혼을 저울질하는 부끄럽고 어리석은 짓을 반복했습니다.

오래 전에 전교에서 2등을 하는 학생이 성적비관으로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부모의 지나친 욕심이 불러온 비극이었지요.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 그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숫자와 점수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 등위와 점수만으로 인간의 총체적인 가치를 잴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우리 교육이 얼마나 낙후된 것인지를.


어느 여성 기업가가 미국에서의 생활을 회상하며 쓴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저자는 딸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이 입학식장에서 한 말을 잊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시험을 보지도 않고 아이들의 등수를 매기지도 않는 것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협박(?) 수준의 항의를 했던 한국 학부형들을 마음에 두고 교장선생님은 이런 말을 합니다.

“학교는 한 장의 시험지로 등수를 매겨서 아이들의 인격을 파괴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넓고 자유로운 공간 속에서 귀중한 자신의 존재와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 나아가 엄격한 법칙 속에서 서로 협조하는 마음가짐을 배우는 곳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신 자기만의 달란트를 스스로 발견해서 최대한 계발하도록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따라서 내 목이 붙어 있는 한 아이들의 등수를 매기는 짓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 세상에는 점수로 잴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령,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 떨어진 휴지를 주워 멀리 있는 쓰레기통에 갖다 버린 한 아이의 행동은 점수로 잴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겠지요. 아름다운 행동은 그 자체가 바로 보상이니까요.

문제는 도덕적 성품조차도 한 장의 시험지로 평가하여 등수를 매기는 일이 잦아지다보면 도덕적 행동 자체보다는 숫자로 계산된 등위나 점수에 더욱 가치를 부여하는 오류를 범하기가 쉬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한 아이의 '인격의 파괴'는 필연적인 수순이겠지요.

이제 저는 적이 안심이 됩니다. 이런 말을 귀담아들어야 할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병을 알았으니 치료가 그만큼 더 빨라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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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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