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 호랑이 이야기 51

길도 이름도 없는 숲 4

등록 2004.07.04 07:08수정 2004.07.0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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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가 물었습니다.

“그럼, 새롭게 자라는 나무순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이곳에는 나무순이 없어요. 여기 있는 나무님들은 전부 수천년 동안 이곳에 살고 계시답니다.”

“성주신님은 새로 태어나는 나무들을 점지해 주시기도 하고 그 나무들을 관리해 주고 계시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인간 세상의 숲에 길을 내고 파헤치기 시작해서 꽃님들이랑 나무님들이 많이 죽어가고 있어요.”

“그리고 호랑이들을 따라다니는 나쁜 사람들이 이 땅의 물길을 막아놓아서 우리들도 곧 시들어버릴지도 모른답니다.”

“성주님은 분명 어딘가에서 그 나무들을 돌보고 계실 거에요.”


“아니면 그 곳에 새로운 생명을 점지해 주고 계실지도 몰라요.”

그런 수수께끼 같은 소리에 답답해진 바리는 짜증이 난듯 약간 볼멘 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럼, 대체 어디로 가야 성주신을 만날 수 있는 거에요?”

그러자 바리 뒤에 서있던 잎이 무성한 나무 한 그루가 허리를 숙여 바리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제 꼭대기에 올라타요. 꼭대기에 올라가면 숲을 다 볼 수 있어요. 죽어가는 나무들이 어디에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거에요.”

바리가 그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나무가지를 세게 붙들자 나무는 바리가 무서워하지 않도록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바리는 약간 움찟하긴 했지만, 나뭇가지를 잡고 나무의 움직임을 따라서 몸의 중심을 맞추려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바리가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천천히 움직이던 나무는 완전히 하늘로 우뚝 섰습니다. 그 위에서는 나무님들이 살고 있는 숲이 한눈에 다 보였습니다.

“우와…..”

어린 시절 아빠와 보았던 바다의 모습 같았습니다.

햇볕을 받아 눈부시도록 푸르게 빛나고 있는 그 숲은 바다와 같이 넓었습니다. 설악산 지리산 아무리 높은 산에서 바라보아도 이런 숲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눈이 닿는 곳은 전부 바다처럼 파란 숲이었습니다.

백호가 바리를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바리야, 거기 뭐가 보이니?”

바리가 나무 위에서 백호를 내려다 보면서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키가 큰 나무님들이 줄기에 가려 백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무들이 아주 많아. 정말 바다 속에 있는 것 같애.”

정말 그 곳은 나무가 만들어 내는 거대한 바다였습니다. 왜냐하면 저 끝에는 노란 모래사장까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리가 다시 백호에게 말했습니다.

“저기 모래사장이 있는 것 같애. 그래서 더 바다 같애. 해수욕장 말이야….”

그러나 그 곳의 모래사장 같아 보이는, 약간 붉은 듯한 그리고 검은 색을 머금은 듯한 그 곳은 파란 숲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같이 물결지어 고개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래사장이 아니라 누렇게 시들어가고 있는 나무들의 숲이었던 것입니다.

“저기 어딘가에 누렇게 시들어가고 있는 나무들이 보이나요?.”

바리를 태우고 있는 나무가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꺾어버린 나무들의 영혼이 신음하고 있는 곳이랍니다. 고개를 들어서 좀 더 멀리 바라보세요.”

바리는 고개를 더 앞으로 뻗어보았습니다. 그 노란 숲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 뒤로도 그렇게 갈색으로 타들어가는 숲은 끝이 없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숲의 나무들도 바람에 따라 물결처럼 고개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아파하고 있는 나무들이 도와달라고 바리와 백호에게 손짓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나무는 바리를 다시 땅으로 내려주었습니다. 내리자 마자 백호의 목을 껴안은 바리의 얼굴은 나무 위에 올라가 햇볕을 받았는지 아니면 흥분해서 상기가 되었는지 온통 붉었습니다.

“나무님들이 꽃님들이 너무 많이 죽어가고 있어. 우리를 부르고 있다고.”

백호는 바리의 얼굴을 부비면서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얼른 가서 그곳에서 나무를 돌보고 계신 성주신님을 만나자. 분명 거기 어딘가 계실거야. 그래야 이 나무님들도 살고 네 엄마 아빠도 만나지.”

바리를 올려 주었던 그 잎이 무성한 나무가 말했습니다.

“성주님은 그곳의 나무들과 함께 계실 거에요. 얼른 가서 성주님을 도와주세요.”

바리는 마침내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누렇게 죽어가고 있는 나무님들이 너무 가엾기만 했습니다.

바리는 울면서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가야하는지 모르겠어요, 길도 나있지 않고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는데, 이 연약한 꽃님들을 아프게 하면서 밟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그때 새 한 마리 살고 있지 않는 숲에서 푸드덕 거리는 날개짓소리가 들렸습니다. 바리와 백호의 머리 위로 까마귀 한마리가 날아와 날고 있었습니다. 나무가 말했습니다.

“저 까마귀를 따라가요.”

나무가 말을 끝내자마자 줄기를 하늘로만 쳐들고 있던 나무들과 꽃님들이 전부 한방향을 향해서 고개를 젖혔습니다.

길도 없고 이름도 없고, 자기의 자리에서 자신의 모습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꽃님들과 나무님들이 고개를 숙여서 바리와 백호에게 그 곳으로 가는 길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을 길이라고 부르는 것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길이란 우리가 지나간 후에도 남아서 영원이 우리의 갈길을 일러주지만 이렇게 나무들과 꽃들이 만들어주는 길은 바리가 지나가면 다시 사라질 것이 뻔했으니까요.

백호와 바리는 그렇게 그 둘만을 위해 난 작은 길을, 꽃님들이 밟히지 않도록 조심조심해서 성주님을 향해 걸아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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