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를 뽑으면서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14)

등록 2004.07.06 18:29수정 2004.07.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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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노씨의 양배추, 시장에 내다 팔 때 제발 제 값을 받았으면 좋겠다.
옆집 노씨의 양배추, 시장에 내다 팔 때 제발 제 값을 받았으면 좋겠다.박도
자식 버릇은 어릴 때 고쳐야


요즘은 일기예보 적중률이 매우 높지만 그래도 농사꾼이나 어부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하늘부터 쳐다 본다. 그리고는 그날 할 일을 시작한다.

오늘 아침은 아주 오랜만에 햇살이 비치는 쾌청한 날씨였다. 며칠 만에 보는 햇볕인지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동안 태풍 ‘디앤무’다 ‘민들레’다 하여 근 보름여 볕든 날이 별로 없었다. 간밤 일기예보에는 오늘 내일 좀 맑고 주말부터는 본격적인 장마에 접어든다고 한다.

날이 개면 한다고 미루어 두었던 잡초를 뽑고자 텃밭에 나갔더니 그새 엄청나게도 자랐다. 곡식이 잡초처럼 자란다면 농사꾼들은 얼마나 수월할까. 자식 버릇 길들이기도 어릴 때에 해야지 쉽다. 다 큰 자식 버릇 고치려면 아주 힘들거나 자식 놈이 튀기에 아예 포기해 버리듯, 잡초 뽑는 일도 마찬가지다.

장마로 웃자란 잡초는 맨손으로는 뽑히지도 않고 호미로 매도 뽑히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저도 한 세상 보려고 태어났는데 사람들은 보는 족족 ‘잡초’라고 하면서 뽑거나 제초제를 뿌려 대니 그들 처지로는 얼마나 분통이 터지겠는가?

금세 비지땀이 겉옷까지 다 적셨다. 문득 돌아가신 할머니의 노고가 새록새록 돋았다. 나는 한 마지기(200평) 남짓한 텃밭 하나에도 쩔쩔 매는데, 할머니는 20여 마지기의 밭농사를 거의 혼자 지으셨다. 거기에는 온갖 잡곡을 다 심으셨고, 삼이나 목화도 심어서 농한기에는 물레질을 하면서 삼베나 무명베도 숱하게 짜셨다.


어릴 때 기억으로는 할머니는 늘 밭에 김 매러 가지 않으시면 베틀에 앉아서 길쌈을 삼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눈물인지 땀인지 눈시울을 적셨다.

나는 올해 텃밭에다 욕심 많게 여러 종류의 곡식과 채소를 심었다. 옥수수, 고구마, 고추, 콩(토종 콩, 강낭콩, 검은 콩, 양대), 거기다가 상추, 쑥갓, 파, 가지, 열무에다 가장자리에는 더덕, 그리고 집안 둘레에는 호박, 오이, 도마도, 수세미에다 수박 참외까지 심었다. 그래 놓고는 쩔쩔매고 있다. 경험도 없는 얼치기 농사꾼이 욕심을 너무 많이 부렸다. 무식하면 용감하고 허욕도 많나 보다. 수박 참외는 아무래도 모종 값도 못할 것 같다.


얼치기 농사꾼이 밑거름을 많이 줘서 웃자란 콩 포기.
얼치기 농사꾼이 밑거름을 많이 줘서 웃자란 콩 포기.박도
그런데 토종 콩은 무척 웃자랐다. 벌써 허리 높이까지 자랐다. 거기다가 장마에 쓰러진 놈이 반 이상이다. 옆집 노씨가 와서 콩 포기가 누워 버리면 나중에 콩이 열리지 않는다면서 웃자란 놈은 낫으로 콩잎과 줄기를 베어 주라고 시범을 보였다.

나는 노씨가 가르쳐 준 대로 콩잎을 낫으로 베 주면서 곰곰 생각하니 이른 봄에 밭갈이를 할 때 밑거름을 너무 많이 준 탓으로 여겨졌다. 얼치기 농사꾼이 콩의 특성도 모르고 많이 수확할 요령으로 거름을 과하게 주었나 보다. 콩이란 놈은 뿌리혹박테리아가 발달하여 거름을 주지 않아도 잘 자란다고 배운 게 이제야 생각이 났다.

그런데 장마나 바람이 불 때 가장 잘 쓰러지는 것은 웃자란 놈이다. 사람 교육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부터 잔뜩 과외다 보충수업이다 자율학습이다 하여 오두방정을 떨면서 교육 시킨 녀석이 다른 아이보다 웃자라서 부모 보기에는 잘 키운 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 녀석은 조그마한 어려움만 닥쳐도 이내 좌절하거나 쉽게 포기해 버린다. 잡초처럼 억세게 자란 놈은 어떠한 어려움에도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난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다 같다. 더욱이 생명체는 동물이건 식물이건, 고등이건 하등이건 그 자라는 이치는 다 같다. 내 자식이 다른 자식보다 공부를 잘 못한다고, 똑똑치 못하다고 부모들이 속상해 할 필요가 없다.

잘하는 정치란 노력한 만큼 대가가 돌아오게 하는 것

그런데 아랫집 밭 배추는 그동안 잘 자랐는데 그제 사람들이 몰려들어 배추를 뽑고 있었다. 시장에 내다파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고 밭에다 썩히고 있다. 그 영문을 물었더니 비가 오다가 갑자기 날씨가 들면 배추 속에 물이 들어가서 안에서부터 썩어서 상품으로서 가치를 잃기 때문에 별 수 없이 밭에다 썩히는 거라고 했다.

봄부터 자식 키우듯 애써 가꾼 배추를 밭에다 썩히는 농사꾼의 속은 숯덩이처럼 탔을 게다. 씨앗 값에 비료값, 농약 값, 품삯을 대느라 농협에서 농자금을 융자 받아 애지중지 키워서 밭에다 내버리는 농사꾼이 마음을 그 누가 헤아리겠는가?

애써 가꾼 배추를 밭에다가 썩히고 있다.
애써 가꾼 배추를 밭에다가 썩히고 있다.박도
옆집 노씨도 지난해 무 농사를 잘 지어 놓고도 밭에다 썩혔다. 풍작이라서 서울 가지고 가 봐야 차삯도 나오지 않기에 그런다고 했다.

농사꾼들의 푸념은 풍작도 걱정, 흉작도 걱정이라고 했다. 풍작이면 값이 폭락이요, 흉작이면 값은 좋지만 내다 팔 농산물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몇 해 실패를 거듭한 농사꾼은 마침내 땅을 버리고 도시로 떠나나 보다.

좋은 정치, 잘하는 정치란 뭘까? 농사꾼도 어민도 노력한 만큼 대가가 돌아오게 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된다면 시골 사람들이 굳이 환경 오염이 심한 대도시로 몰려들지 않을 게다. 오히려 도시 사람들이 시골로 내려올 것이다.

잡초를 뽑으면서 이런저런 별별 생각을 다해 보았다. 우선 무성해서 보기 흉한 몇 고랑의 잡초를 뽑자 온몸이 비를 맞은 듯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석간수에다 몸을 닦은 후 글밭을 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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