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시대>, 기업의 어두운 면도 다뤄야

[방송비평] 지나친 피해의식과 경제성장론 경계 필요

등록 2004.07.07 01:14수정 2004.07.08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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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중심으로 삼성까지 한국의 양대 재벌을 소재로 만든다는 MBC 경제 드라마 <영웅시대>는 방영 이전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한국경제 성장의 중심축인 기업을 그리는 데 따른 시선의 집중만은 아니다. 이러한 드라마를 만들 때 거대 재벌뿐만 아니라 검찰 그리고 정치권까지 모두 시선을 던질 수밖에 없으니 애초에 주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MBC 드라마 <영웅시대>에서 젊은 시절의 천태산(고 정주영 회장) 역을 맡은 차인표
MBC 드라마 <영웅시대>에서 젊은 시절의 천태산(고 정주영 회장) 역을 맡은 차인표MBC
여기에 경제사정의 악화와 불황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경제살리기에 모아진 것을 생각한다면 '가난'에서 시작해 거대한 기업 군단을 만들어낸 실화 드라마는 관심을 끌기에 더욱 충분하다.

이러한 관심과 시선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시청률은 호조를 보였다. 닐슨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5일 방영분 <영웅시대>는 20.8%로 동시간대 1위였다. 같은 시간대의 SBS <장길산>은 16.9%의 시청률이었다. TNS미디어코리아 조사에서도 19.6%로 <장길산>(18.2%)보다 높고 과거 히트작인 MBC <대장금>(15.2%)이나 <불새>(18.5%)의 첫회 시청률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순조로운 출발은 앞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많은 과제도 있다. 우선 이 드라마가 많은 이해 관계자들이 얽혀있는 점들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가 과제 중 하나다.

무엇보다 기업의 시각에서 드라마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점은 5, 6일의 1, 2회 방영분에서 드러났다. 대표적인 것이 대기업은 오로지 희생자이자, 피해자라는 의식이다.

애초에 제작팀은 드라마 <영웅시대>의 기획의도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시련과 영광의 대한민국 경제사. 그 불모지대에서 기적과 전설을 일으켰던 주역들의 불꽃같았던 삶의 조명. 물적 자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불모의 땅에서 오로지 우리는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지난 세기 우리의 조상들은 상상도 못 했을 지금을 만들었습니다. 드라마 <영웅시대>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렸던 대한민국 경제성장을 그 중심에 있었던 기업인들의 삶을 통해 조명해 보려고 합니다." - <영웅시대> 제작팀의 기획 의도 첫머리

기획의도에는 무에서 유를 만든 오직 가진 것이라고는 인적 자원밖에 없는 한국에서 온갖 시련과 영광을 이겨내고 경제성장을 이루는 과정을 그리겠다는 다짐이 들어 있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린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의 중심에 있던 기업인들의 삶을 조명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제작진에게 무조건 기업인들을 미화하겠다는 의도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의구심이 드는 부분도 있다.


"물론 기업인들이 만들어온 역사가 모두 옳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개발 도상 과정에서 말없이 희생해온 민초들이 있었고 오랜 기간 군사정부의 강압적인 정책과 그들과의 타협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후퇴했고 답보를 거듭하였지만 경제는 기적처럼 성공을 이루어내고, 폐허나 다름없었던 이 땅에서 가난을 몰아내었습니다. 국민 소득 80불에서 시작한 우리의 산업전쟁은 지금 2만불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 <영웅시대> 제작팀의 기획의도 가운데

기업인들에 대한 절대적인 미화는 없지만 결국에는 기업인들의 시각에서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의도는 명확하게 밝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후퇴했지만 경제는 기적처럼 성공을 했다거나 가난을 몰아냈다는 부분은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는 후퇴했지만 경제는 이루었고 가난은 몰아냈지 않았느냐는 논리의 합리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5, 6일 방영분에서 실제로 드러난 감이 있다. 지나치게 가난한 상황을 강조하면서 가난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으로만 전제하고 있다. 그래서 가난을 벗어나게 한 기업들의 목표나 경제 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게 한다. 그러한 위대한 업적을 이룬 기업들은 피해자라는 논리로 연결이 이루어진다.

고 정몽헌 회장의 죽음을 주로 그린 5, 6일의 1, 2회 방영분에서 기업인들은 항상 피해만 보았다는 식으로 전제하고 일반화하는 것은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최불암-천태산(고 정주영 회장), 유동근-박대철(이명박 회장), 김갑수-천사국(고 정몽헌 회장) 등의 대화를 통해 언제나 정치권에 이용만 당하고 버림받았다는 식의 대사와 분위기가 여러 차례 반복되어 일반화되었다.

그동안 지난 시기 권력과 기업의 유착 때문에 재벌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기업인들과 기업가의 중요성이 흐려진 점도 있다. 하지만 기업가들이 항상 억울하게 당한 사람들이라는 내용 일색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제작진은 "영웅시대에 등장하는 기업들은 배경일 뿐 이 드라마는 한국경제개발을 주도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와 그들의 갈등, 고민, 환희 등이 주된 관심사"라고 밝히고 있으며 아울러 "영웅시대의 '영웅'은 지난 50-60년대 피죽도 제대로 못 먹던 시절 우리 경제를 책임지고 어려움을 극복했던 모든 사람을 지칭한다"고 했다.

<영웅시대>에서 젊은 시절의 국대호(고 이병철 회장)역을 맡은 전광렬
<영웅시대>에서 젊은 시절의 국대호(고 이병철 회장)역을 맡은 전광렬MBC
<영웅시대>의 '영웅'이란 단지 세기그룹(현대)이나 대한그룹(삼성)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경제를 책임지고 어려움을 극복했던 모든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가난한 상황을 타개한 것은 반드시 경제를 앞에서 책임지고 이끈 사람들만은 아니듯, 민초들을 하대할 수 없듯, 사회·정치권이나 정치 지도자를 기업들을 못살게 군 존재로만 그릴 수는 없다. 기업가들은 항상 선량하게 행동하였다고 전제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앞으로 그들의 갈등과 고민을 그릴 때 인간의 욕망과 욕심에서 비롯하는 바람직하지 않았던 기업의 행태도 다루어야 할 것이다. 재벌 체제를 통해 부당한 거래나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잘못된 행태들도 가감 없이 다루어야 한다. 또한 권력에 일방적으로 당했다기보다는 권력을 적절하게 이용하고 그것을 통해 경제적인 이권을 가졌던 부분도 그려야 한다.

3회부터는 본격적으로 천태산(고 정주영)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과정에서 단순히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의 성공기로만 그리지 않아야 한다. 기업에 대한 오해가 있었던 부분은 바로잡아야 하지만 그동안 기업을 오해, 왜곡했다며 잘못까지 덮어두는 우를 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잘못과 잘한 점을 동시에 보이는 것이 한국경제사를 올곧게 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경제적 결과가 모든 것을 합리화하는 사회적 기제로 굳어지는 것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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