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언니 시어머니에 이어 친구 시아버지까지... 건강한 게 복입니다

등록 2004.07.08 20:18수정 2007.06.1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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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님이 작은 아들을 보시더니 “안녕하세요. 근데 댁은 누구쇼?” 하잖아. 그리고 나한테는 “수고가 많습니다. 미안합니다”하는거야."


드라마 같은 황당한 얘기를 듣고 있던 우리들도 너무나 놀라 “어머머… 어머머….”하는 말만 연발했다.

불과 석 달 전만해도 너무나도 정정하고 건강하게 농사일을 하시던 분이셨는데 도대체가 믿기지 않은 일이다. 우리들도 이렇게 놀랐으니 가족들은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그 친구는 시아버지가 쓰러진 후 석 달 동안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고생하고 있는 친구를 우리들이 불러냈다. 달리 친구를 위해서 해줄 일이 없는 우린 그가 머리 좀 식히고 점심이라도 같이 먹을 생각에서이다. 그를 안 본 사이 그는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었다.

그의 가족들은 시아버지가 쓰러질 때만해도 그 정도까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나마 한결 같이 알아보는 사람은 큰 손자라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퇴원한 후론 병원에 있을 때 보단 많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면 가족들의 사랑이 큰 영향을 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는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라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또한 멀리 있는 일은 아니다. 2년 전에 돌아가신 사돈 어른이 생각난다. 그때 언니도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울고 울었던 날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언니는 “내가 만약 치매 증세가 보이면 시설에 갖다 맡기라”고 자식들에게 미리 말해놨다. 그렇게 힘들게 했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언니는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직접 모셨던 사람이라 그런지 미운정 고운정 다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이왕 걸린 병 이렇게 돌아가실 줄 알았으면 좀 더 잘 해드릴 것을…"이라고 후회하는 말을 했다. 어떤 때는 울면서, 어떤 때는 화를 내면서, 또는 어이없어 하면서도 언니는 그 누구보다도 잘 견뎌냈다.

언니는 지금도 치매환자 얘기만 나오면 “그거 남의 일 같지 않다.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른다. 암 절대 모르고, 말고 그게 온 식구 피 말리는 일이지”하면서 시어머니 생각에 젖곤 한다.


한 번은 시어머니가 계신 방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고 한다. 워낙 환자가 있는 집이라 수시로 대청소도 하고 소독도 하는데, 청소한지 얼마 안 되어서 냄새가 나 길래 온 방안을 코로 끙끙 냄새를 맡아가며 확인하고 다녔다고.

확인 결과 장판 밑에 소변이 잔뜩 고여 있었다. 어머니가 대변본 것을 벽에 발라 놓는 일은 수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했다. 또 주방에서 반찬을 정신없이 하고 있다가 무심코 뒤를 돌아보면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언니 뒤에 가만히 앉아있다고 한다. 그럴 땐 머리발이 삐쭉 쓰고 온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깜짝 놀라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일은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 언니 말을 들으면 난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이다.

그러는 동안 언니가 대단하면서도 안쓰러운 적이 많았다. 그래도 언니가 그렇게 모시다 돌아가셔서 그나마 그것으로 많은 위안을 받기도 한다. 그러면서 경험이 있는 언니는 “우리 엄마는 저 연세에 저 정도로 정정하고 깔끔한 것이 큰 복중에 복이다”라고 한다. 나도 그런 생각엔 동감이다. 더도 덜도 말고 지금 만큼만 건강하신다면 어머니를 비롯해서 우리 모두에게 홍복(洪福) 중에 홍복인 것이다.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든다. 우리들은 부모님들이 그런 힘든 병에 걸리면 시설에 맡기는 것을 아직은 큰 불효라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또 시설을 이용하고 싶어도 그 비용이 만만치도 않고, 그 수도 많지 않다고 한다.

물론 자식들이 정성을 다해서 병 수발을 해줄 수 있으면 그보다 더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너무나 힘들 땐 가끔씩 전문인의 도움을 받는 것도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치매라는 병은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고 가끔은 황당한 일도 일으키기 때문에 모든 식구들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긴 이렇게 생각하는 나도 막상 나의 부모님께서 치매에 걸리셨다면 어떻게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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