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안의 자율학교 꿈꾸는 거산분교

거산분교 탐방기 (1) "그 많던 감자는 선생님들이 드셨단다!"

등록 2004.07.10 01:24수정 2004.07.11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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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주에 꼭 한 번은 들르게 되는 천안아산환경운동연합 차수철 사무국장으로부터 "특별한 학교를 취재해보지 않겠냐?"라는 제안을 받았다.

천안아산환경운동연합에서 시행중인 '숲 해설가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얘기는 전부터 들었기에 별 다를 것이 없었지만, 그 교육이 실시되고 있는 거산분교의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할 만 했다.

차 국장에 따르면 "천안·아산지역 학부모들이 시골의 분교로 자녀들을 입학시키기 위해 그 지역으로 이사를 가거나 통학용 버스까지 대여하는 부담도 감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관 계단에 핀 능소화
현관 계단에 핀 능소화김갑수
9일 오후 3시에 차 국장과 함께 천안을 출발해서 외암민속마을, 송악저수지를 지나 약 30분 후에 도착한 충남 아산시 송악면 송학리 28번지 송남초등학교 거산분교.

학교 울타리 밖에는 300년 이상 되었을법한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장마 속 무더위를 가려주고 있었고, 운동장에서는 여느 학교와 마찬가지로 수업이 끝난 아이들이 운동장에 모여 한창 축구를 하고 있었다.

운동장 한 편에 그네를 타고 있는 6학년 혜원이를 만날 수 있었다.

"여기서 뭐하니?"
"집에 가려고 통학버스 기다리고 있어요."


혜원이는 버스로 5분 거리인 이웃 마을에 살고 있고, 거산분교에서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학교의 모든 변화를 지켜본 '산 증인'이었다.

"처음 입학했을 때 전교생이 몇 명밖에 없었는데, 3학년 끝날 때부터 아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처음엔 전학 온 도시 아이들(혜원이에겐 천안·아산도 '대도시'란다)과 서먹서먹했지만 지금은 많이 친해졌어요. 학생들이 많아져서 운동할 때도 여럿이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이전과 달라진 점에 대해서는 "자연체험학습이 많아졌어요. 꿀벌에 대해서도 배우고, 여름과 겨울에는 체험학습이 있어서 재미있어요"라고 말했다.

'산 증인'답게 여러가지 경험들을 얘기해 주었다.

"청진기를 귀에 대고 나무들의 맥박소리를 들어본 적도 있고, 토요일 아침마다 뒷산에 올라 한 개의 식물을 관찰해서 시를 쓰기도 해요. 6학년 18명 중에서 3명이 이웃 마을에서 사는 친구들이고 나머지 15명이 천안과 아산에서 온 친구들이에요. 아이들이 오기 전에는 시설이 많이 부족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혜원이 한 명을 통해 이 학교의 모든 사실을 알아버린 듯 했다.)

"잠깐만 사진 한 장만 찍을게."

"싫어요. 정말 안돼요."

혜원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고개를 숙였고, 끝내 거산분교의 '산 증인'을 촬영하는데 실패했다.

축구하던 아이들
축구하던 아이들김갑수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6학년 종성이를 불러보았다.

"어떻게 이 학교에 다니게 되었니?"

"4학년 때 엄마가 그냥 전학가라고 그래서요. 아산의 금곡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작은 학교 살리기 모임'의 간사분이 엄마에게 소개해 주셔서 거산분교로 오게 되었어요. 처음엔 싫다고 반항했지만, 동물도 키우고, 산에도 가고, 오늘은 감자도 캤어요. 내일 감자 수제비 해서 먹을 거예요."

종성이는 내일 감자 수제비를 먹는다는 사실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는 듯 자신만만한 목소리였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아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종성이에게 다가왔다.

"형! 재들 반칙인데 계속 하잖아. 빨리 반칙이라고 말 좀 해줘."

상황을 보니 6학년인 종성이는 선수 겸 심판으로 1인 2역을 감당하고 있었다.

주위에 축구를 하던 남자아이들이 모여들었고, 나는 "야 다 모여 봐! 사진 찍어 줄께!"라며 아이들을 운동장 가운데로 모이게 했다.

"너희들 중, 집이 이 근처 거나 처음부터 거산분교에 다녔던 사람 있으면 손들어봐!"

손을 들은 아이는 다섯 명 안팎이었다.

"그럼, 집이 천안·아산이거나 전학 온 사람 손들어봐!"

"저요! 저요!"

나머지 열다섯 명 정도가 모두 손을 들었다.

"자 그럼 사진 찍어 줄 테니까 하나 둘 셋 하면 와 하고 소리치면서 손을 흔들어라!... 하나, 둘, 셋!"

통학차량에 오르는 아이들
통학차량에 오르는 아이들김갑수
통학버스가 출발할 시간이 다가오자 대형 버스가 운동장으로 들어와 주차했고, 버스 안에서 '일일 도우미'로 나선 5학년 준석이의 어머니 양복란씨를 만날 수 있었다.

양복란씨는 "저희 아이가 3학년 때 이 학교로 전학시켰어요. 자연 친화적 학습이 저절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공교육을 하면서도 이런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자부심을 가질 만하죠"라고 말했다.

"도시의 아이들은 학원이다, 과외다, 아이들의 성적에 대해 꽤 신경을 쓰고 있는데 준석이의 성적이 걱정되지 않으세요?"

"공부는 길게 보는 거예요. 아이들이 스스로 느끼는 것이 중요하죠. 준석이는 학원에 안보내는데 요즘 들어 수학이 어렵다며 스스로 공부하고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초등학교에선 인성교육이 중요하잖아요."

양복란씨에 따르면 거산분교의 학부모들은 통학버스의 운행을 위해 한 달에 8만원을 부담하고 있고, 직접 '버스 도우미'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체험학습이 이뤄지면 선생님들과 같이 움직여요. 협조가 잘 이뤄지고 있죠. 처음엔 화장실도 재래식이고 분교라는 이유로 예산이 적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지금도 그런 부분에서는 달라진 것이 없죠."

잠시 후, 아이들을 가득 태운 통학버스가 운동장을 나가자 '숲 해설가 지도자과정 교육'에 참여하기 위한 인근 학교의 교사, 학부모,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학교를 찾았다.

'숲 해설가 지도자과정 연수 교육'은 천안아산환경운동연합이 주최하고 거산분교, 환경교사모임 '초록교실사람들'이 주관하여 2004년 5월부터 동년 10월까지의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강의를 맡은 최상일 박사
강의를 맡은 최상일 박사김갑수
이날 강사는 충북 청주의 생태교육연구소 '터'의 창립자이고, 현재 '원흥이 저수지 두꺼비 살리기' 운동을 하고 있는 최상일 박사였고, '하천 생물과 계곡 생태계'라는 내용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최상일 박사는 30여명의 참가자들에게 "숲은 모든 생명의 자궁입니다"라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고, 82년 대학가요제 대상곡이었다는 "찬비 맞으며 눈물도 흘리고…"라는 가사의 노래도 부르며 생태계의 소중함을 전했다.

고등학교 시절, 과학과 관련된 모든 과목들(생물·화학 등)을 가장 싫어했던지라, 쉽게 들을 수 있는 강의를 외면한 채, 학교 주변 모습을 촬영하느라 강의실을 들락거렸다.

그러다 보니 강의 내용을 기억하는 것은 단 두 가지. 그 하나는 "계곡의 상류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요즘 젊은 것들은 에너지가 없는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이 부리는 객기는 적극 장려해야 합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무슨 일이든 저질러 버리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 뒷감당을 하는 것이 우리 40대들 아닙니까?"라는 강의와 별 상관없는 말과, "어치는 숲 속의 '조폭'입니다. 개구리, 심지어 쥐까지 잡아서 가시나무에 꽂아놓고 육포처럼 잘 마르면 겨울이 되어도 위치를 잊어버리지 않고 잘 찾아 먹습니다"라는 놀라운 사실이다.

텃밭에서 수확한 감자와 가지
텃밭에서 수확한 감자와 가지김갑수
학교 주변의 텃밭을 찾았다. 고구마, 옥수수 등의 곡식이 심겨져 있었고, 밭 한쪽에는 거위, 닭, 토끼 등의 동물들이 '낯선 손님'을 맞이했다.

잠시 후, 쉬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런데 간식으로 나온 것이 6학년 종성이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던, 이날 텃밭에서 수확한 감자였다. 다행히 광주리에는 아직 감자가 많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꼭 이 말은 해줘야겠다.

"종성아! 거산분교 해맑은 아이들아! 텃밭 감자는 선생님들이 먼저 드셨다!!!!(물론 나도 먹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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