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아테네는 '공사 중'

부산 촌놈 그리스 여행기

등록 2004.07.12 00:12수정 2004.07.1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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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공항에 도착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책에서 보면서 언제나 그리던 신화의 도시에 도착한 것이다.

지하철을 내려 아크로폴리스언덕을 올랐다. 햇살이 따스했다. 터키보다 남쪽이라 포근한 겨울이었다. 비가 내려서 미끄러운 대리석 돌산에 올랐다. 바닥에도 대리석 타일, 길 양쪽에 늘어선 집들도 대리석 기둥, 마치 옛날의 신전들이 늘어선 것 같은 풍경이다.


a 아크로폴리스 언덕

아크로폴리스 언덕 ⓒ 함정도


대리석 계단들을 올라가니 마침내 파르테논이 보였다. 가슴이 뛰었다. 얼마나 그리던 모습인가. 기둥을 붙잡고 울고 싶었다. 중학교 교과서에서 저 모습을 본 지 수십 년만에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된 것이다.

a 보수 공사가 한창인 파르테논 신전

보수 공사가 한창인 파르테논 신전 ⓒ 함정도


a 정면에서 바라본 파르테논 신전

정면에서 바라본 파르테논 신전 ⓒ 함정도


파르테논은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네 여신에게 바쳐진 신전이다. 돌계단에 앉아서 아테네와 수많은 옛날의 신들을 생각하며 그 때를 상상해야하는데 어쩌나, 보수공사 중이었다. 부근에는 얼씬도 못하게 온통 철 파이프로 받쳐 놓고 안전모를 쓴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공해와 산성비, 너무 많은 관광객의 출입으로 훼손이 심하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다. 한 눈에 보아도 한 쪽이 기운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기에 진작에 왔어야 했는데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이제야 오게 되다니.

언제쯤 끝나는지 물어보았지만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오후 3시가 되니 모든 인부들이 바로 퇴근해 버렸다. 박물관도 모두 3시에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나는 어쩌란 말인가.

a 에릭티온 신전의 아름다운 기둥

에릭티온 신전의 아름다운 기둥 ⓒ 함정도


바로 옆 작은 신전은 에릭티온 다. 기둥 대신 여인들이 지붕을 이고 있는 모습으로 유명한 신전이다. 공해로 손상되기 시작하면서 원본은 박물관에 고이 모셔 놓고 모사품으로 교체했다고 한다.


여인들이 벌을 받느라 영원히 무거운 것을 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나는 믿지 않기로 했다. 너무나 아름답고 기품있는 모습으로 옷자락을 우아하게 늘어뜨린 채 아래에 있는 인간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들은 신전을 지키는 고귀한 무녀처럼 보였다.

a 제1회 올림픽이 열렸던 근대올림픽 경기장

제1회 올림픽이 열렸던 근대올림픽 경기장 ⓒ 함정도


a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 바라본 제우스 신전과 보수중인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문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 바라본 제우스 신전과 보수중인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문 ⓒ 함정도


소크라테스가 제자들과 거닐면서 인간의 무지에 대해 토론했다는 이 언덕의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언덕 위에서 지도와 맞추어 보면서 아테네 시가지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근대 올림픽경기장이 보였고 고대 아고라(시장)터, 제우스신전,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문.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오래된 건축물들이 보였다. 그런데 대부분 보수공사 중이었다.

그리스 사람들은 매우 느긋하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한 번 발굴을 시작하면 주로 50년, 100년 예정으로 프로젝트를 진행시킨다고 한다. 자손들이 발굴할 걸 남겨두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그들의 생각이다.

그 중에도 그나마 빠르게 진행되는 건축공사는 올림픽경기가 열릴 예정인 경기장과 도로들이다. 성격 급한 부산사람 생각으로는 올 여름 올림픽이 제대로 열릴지 걱정이 안될 수 없었다. 한 편으로는 그들의 느긋한 방식이 부럽기도 하다.

a 그리스 음악가 야니의 공연이 이루어진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

그리스 음악가 야니의 공연이 이루어진 헤로데스 아티쿠스 극장 ⓒ 함정도


언덕을 내려오면서 그리스의 세계적인 음악가 야니가 공연했던 극장을 찾아보았다. 이 역시 공사 중이어서 접근할 수가 없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DVD로 감상했던 장면들을 비교하는 걸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오후 3시, 아직 한낮인데 대부분의 관공서가 문을 닫았다. 그들의 오래된 낮잠시간인 것이다. 그나마 대도시는 나은 편이다. 도시를 벗어나면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아 버린다. 그리고 오후 7시쯤 되면 가게를 열고 사람들도 나다니며 밤늦도록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이다.

a 플라카 거리의 오래된 석조 건물(보수 공사중으로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

플라카 거리의 오래된 석조 건물(보수 공사중으로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 ⓒ 함정도


a 폭스바겐을 화단으로 재활용

폭스바겐을 화단으로 재활용 ⓒ 함정도


a 빈라덴 카페의 메뉴판

빈라덴 카페의 메뉴판 ⓒ 함정도


아크로폴리스를 내려와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는 '플라카' 거리로 향했다. 골목마다 오래된 건물을 보수하거나 새로 짓고 있었다. 대부분이 석조물이라 보수공사도 힘들고 신축은 더 힘든 것 같았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재미있는 풍경을 발견했다. 폭스바겐 자동차를 화단으로 재활용한 재치와 건물을 헐어낸 빈터에 '빈라덴 카페'라는 간판을 보고 그들의 유머스런 행동에 웃음이 나온다. 그리스인들은 정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속 주인공 조르바처럼 유머와 여유가 가득한가 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였던 우리들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2004년 이곳 아테네에서 보았다. 그것은 느긋함의 극치이다. 올림픽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낮잠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공동체의 수직 질서를 강조하는 동양 문화와 개인적인 삶의 질을 중요시하는 서양식 사고방식의 차이라고 할까….

신들의 도시 아테네에 서서히 어둠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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