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무게중심은 사진”

건축과 사진 두 세계를 오가는 홍균씨

등록 2004.07.13 09:48수정 2004.07.1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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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홍균씨

홍균씨 ⓒ 권윤영

"암실에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내면에서는 사진을 본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진으로 생계가 가능하다면 오직 사진만 했을 거예요."


자신만의 공간, 사진작업실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는 홍균(52)씨. 그는 이색 경력의 소유자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그가 선택한 직업은 다름 아닌 항공엔지니어. 학창시절 항공기에 묘한 매력을 느껴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고는 대한항공에서 4년간 근무를 했다.

하지만 시력이 안 좋아지면서 엔지니어를 그만둬야했고, 그때부터 본 전공을 살려 건축 일을 시작했다. 현재 그는 설계를 하거나 인테리어를 본업으로 하는 엄밀히 말하면 건축가다. 하지만 그의 삶의 무게 중심은 본업인 건축보다는 취미인 사진에 더 실려 있다.

그가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지난 90년부터. 그 계기가 조금 남다르다.

"건축하면서 답답하면 가끔씩 사냥을 했어요. 그 날도 사냥에 갔다가 30m 전방에서 까투리 한 마리를 쐈습니다. '픽' 쓰러졌던 까투리가 갑자기 목을 들고 저를 노려보는데, 그 작은 눈이 저와 시선을 마주쳤을 때는 엄청 크게 보이더군요."

한 번 뇌리에 박힌 그 까투리는 쉽게 잊혀지지 않았고, 그 후 몇날 며칠 까투리가 꿈속에 나타났다. 그 일을 계기로 그는 사냥이 좋은 취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동물을 죽여서까지 재미를 느끼고 싶지도 않았다.


갖고 있던 총을 팔고 산 것이 바로 카메라. 사진을 즐겨 찍진 않았지만 어린시절부터 흑백사진을 많이 보면서 자랐던 환경이 그를 사진 세계로 이끌었다. 2년여 대전과 서울을 오가며 사진을 배운 그는 94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반응이 좋았다. 사진을 사가는 사람도 많았고, "사진을 전공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며 권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역시 부족함을 느꼈기에 심층적인 공부를 위해 대학에 들어가 사진을 전공했다. 5년 전부터는 충남대, 한남대, 배재대, 중부대 등에서 사진학 강의를 맡고 있다.


"움직이는 피사체를 순간적으로 촬영하는 것을 스냅숏(snapshot)이라고 합니다. 사진도 짐승을 죽이지만 않을 뿐이지 순간적으로 그것을 찍는 것이잖아요. 사냥해서 동물을 떨어뜨리는 것도, 사진을 찍는 것도 결정적 순간을 잡아내는 것은 마찬가지죠."

그는 사진을 굉장히 좋은 취미라고 추켜세운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같은 숏(shot)이지만 사진은 꿩이 안 아프잖아요." 꿩은 그에게 사진을 찍게 만들어준 중요한 계기인 것이다.

a 2000년에 연 개인전 '아메리카 타운' 포스터

2000년에 연 개인전 '아메리카 타운' 포스터 ⓒ 권윤영

주로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는 그는 지금껏 개인전을 4번 열었다. 특히 지난 2000년 열었던 '아메리카 타운’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사진의 배경은 군산 기지촌. 그는 10여 개의 클럽과 슈퍼, 세탁소, 식당, 미군과 러시아 여성, 필리핀 여성들의 숙소가 모여 있는 곳을 찾아가 그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이 사진들을 찍기 위해 무려 1년간 군산을 오갔다. 군산에 방도 얻었다. 1년이란 기간은 사진을 찍는 데 걸린 시간이라기보다는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는 시간들이었다. 무조건 군산에 갔다고 미군들과 여성들의 모습을 찍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사진을 못 찍게 하던 그들과 시간을 두고 친분을 쌓았다.

그는 있는 그대로 찍는 스트레이트 사진을 좋아한다. 그리고 인물 사진을 즐겨 찍는다. 일출을 찍든, 풍경을 찍든 간에 그의 사진에는 사람이 있다. 사람이 없으면 텅 빈 것 같은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인간의 궤적을 좇아 인간이 살고 있는 느낌을 사진으로 찍고 싶지, 사람의 손때가 묻어 있지 않은 풍경을 찍고 싶지는 않다는 그다.

5년 전부터 길상이라는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기도 한 그는 그곳에서 크고 작은 전시회를 연다. 전시 일정이 없을 때는 자신의 사진을 걸어두니 1년 365일 전시회가 있는 셈. 하지만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여유가 생기면 사진에 관한 모든 것이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어요. 카메라, 사진, 현상, 인화, 전시 공간,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 사진 아카데미 등 사진문화가 유통되고 소통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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