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49

보따리 내놔요! (7)

등록 2004.07.13 14:24수정 2004.07.13 16:33
0
원고료로 응원
“으음! 그래, 이 맛이야. 하하! 역시 어머니의 솜씨는 최곱니다. 와아! 이건 곽탕(藿湯 : 미역국)이고, 이건 전유화(煎油花 : 지짐)가 아닙니까? 허걱! 이건 너비아니(소의 안심이나 등심을 얇게 저민 뒤 칼로 자근자근 두들겨서 갖은 양념을 하여 구운 것)?”
“그래 맞다! 잊지 않았구나.”

“그럼요. 제가 어찌 이 맛있는 것을 잊겠습니까? 어머니, 고맙습니다. 그 동안 이런 게 먹고 싶어 죽을 뻔했거든요.”
“그래…? 그랬어?”


“예! 하하! 앞으로는 이런 걸 자주 먹을 수 있는 거지요?”
“응? 그, 그래… 그럼, 그렇고 말고.”

대답을 하기는 하였지만 곽영아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하지만 둘의 시선은 다른데 있었다.

“어머! 이건… 이것 좀 보세요. 이건 열구자탕(悅口資湯 : 신선로에 여러 어육(魚肉)과 채소를 넣어 끓인 음식)이 아니라 곱창전골이에요. 여기 이 곱창 좀 보세요.”
“뭐어? 곱창전골…? 어디…? 곱창이 어디에 있소? 그거 먹어 본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오.”

이회옥과 조연희는 마치 다정한 부부처럼 음식을 뒤적이며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그런 둘의 모습이 흐뭇한지 연화부인의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어렸다.

‘그래, 연희 너를 며느리로 맡고 싶었는데 잘 되었구나. 너라면 나대신 저 녀석 입맛에 꼭 맞는 음식을 해줄 수 있겠지? 휴우…! 이제 되었어. 이제 되었다고…’


연희가 아들의 입에 음식 넣어주는 모습을 본 곽영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보! 우리 회옥이가 다 컸네요. 꼭 젊었을 때 당신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좋은 짝도 찾은 것 같네요. 앞으로 잘 지내겠죠? 조금만 더 기다려줘요. 저 녀석들이 맺어지는 것만 보면 곧바로 당신 곁으로 갈 테니까요. 가거들랑 더러운 계집이라고 박절히 대하지는 말아요. 당신은 착하니 그렇게 해주실 거죠? 흐흑!’


연화부인은 주르르 흘러내리는 눈물이 닦아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웃는 낯을 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아들과 오래오래 같이 지내고 싶지만 이제 얼마 후면 이승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녀석! 이 어미 맘은 조금도 헤아려주지 않고 음식에만 정신이 팔려있다니… 야속한 놈! 아냐! 아암, 아니고 말고… 저 녀석이 나를 기쁘게 하려고 일부러 저러는 것일 거야. 아암! 그렇고 말고. 우리 아들이 누군데? 어렸을 때에도 효자였지. 그럼!‘

“호호! 맛이 어때요?”
“하하! 몰라서 묻소? 어머니가 만든 음식은 이 세상에서 최고로 맛이 있소. 그러니 물으나 마나지. 안 그렇소?”
“호호! 그건 그래요. 어머니 솜씨는 아무도 못 따라가지요.”

가가호호하던 이회옥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가만, 낭자가 어찌 우리 어머니를 어머니라 칭하시오?”
“모르셨어요? 소녀가 어머니의 의녀가 되었답니다. 어머! 그러고 보니 이젠 제게 오라버니가 되시는군요. 호호! 앞으로는 공자님이라는 칭호대신 가가(哥哥)라고 부르겠어요. 그래도 되죠?”

“가, 가가요?”
“왜요? 누이가 오라비더러 가가라고 부르겠다는데 설마 안 된다고는 안 하실 거죠? 호호! 그래도 소용없어요. 오라비는 오라비니까 그냥 가가라고 부를래요. 그러는 게 맞죠? 어머니!”

“응? 그, 그럼. 내가 네 의모이고 저 녀석은 내 아들이니 너희는 남매지간이 되었구나. 그러니 가가라고 불러도 된다.”
“거 보세요. 어머니께서도 인정하셨으니 이제부턴 가가라고 부르겠어요. 아이, 좋아라. 호호호! 가가!”
“끄으응…!”

할 말이 없었진 이회옥은 낮은 침음만 냈다. 그리고는 정신 없이 퍼먹기 시작하였다.

덕분에 탁자 위의 음식은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그 동안 곽영아는 조연희에게 아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앞으로 아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그녀라 생각한 때문이다. 반각 후 이회옥은 부른 배를 두드리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 배가 부르니 고복격양(鼓腹擊壤)이라는 말이 절로 생각납니다. 안 그렇습니까?”

고복격양은 남송(南宋) 말에서 원(元) 초에 걸쳐 증선지(曾先之)가 편찬한 사서인 십팔사략(十八史略) 제요편(帝堯篇)과 악부시집(樂府詩集) 격양가(擊壤歌)에 있는 말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전국 최고 휴게소 행담도의 눈물...도로공사를 향한 외침 전국 최고 휴게소 행담도의 눈물...도로공사를 향한 외침
  2. 2 1만2000 조각 났던 국보, 113년만에 제모습 갖췄다 1만2000 조각 났던 국보, 113년만에 제모습 갖췄다
  3. 3 [단독] 김태열 "명태균이 대표 만든 이준석,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단독] 김태열 "명태균이 대표 만든 이준석,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4. 4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수능 도시락으로 미역국 싸 준 엄마입니다
  5. 5 대학 안 가고 12년을 살았는데 이렇게 됐다 대학 안 가고 12년을 살았는데 이렇게 됐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