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역 산하에서 숨져간 무명 독립전사를 찾아서

[8·15 특집- 다시 항일유적지를 가다 1] 심양으로 가는 길

등록 2004.07.13 15:52수정 2004.07.1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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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역의 산하에서 바람과 이슬을 맞으며 굶어서 죽고, 얼어서 죽고, 일제의 총에 맞아죽은 이름 없는 독립전사 영령 앞에 삼가 이 글을 바칩니다.

a 연변대 구내에 있는 항일무명영웅기념비, "항일구국의 일념으로 일제와의 투쟁에서 이름없이 산화해 간 수만 영령들의 숭고한 넋을 길이 새기고저 이 비를 세웁니다"

연변대 구내에 있는 항일무명영웅기념비, "항일구국의 일념으로 일제와의 투쟁에서 이름없이 산화해 간 수만 영령들의 숭고한 넋을 길이 새기고저 이 비를 세웁니다" ⓒ 박도


들어가는 글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벗 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어언 59년이 지났다. 해방은 거저 얻은 게 아니다. 선열들이 언 땅에다 해방의 씨앗을 뿌리고, 뜨거운 피를 흘리면서 그 씨앗을 가꾸었다. 그러나 그분들은 수확의 기쁨도 누리지 못한 채, 이역의 산하에서 산화하셨다. 그 영령들 앞에서는 살아남은 자체가 부끄럽다.

필자는 1999년, 2000년에 이어 세 번째로 중국대륙에 흩어진 항일유적지를 더듬으며 무명 독립전사의 영전에 고국에서 가져 간 소주잔을 드렸다.

이번 답사는 안동문화방송국 특별취재팀과 함께 2004년 5월 25일부터 6월 4일까지, 주로 한일합방 후 초기의 민족지도자들이 만주 땅에다 해외 독립기지를 만들고, 일제와 투쟁했던 그 옛 터와 독립전쟁 전적지를 살폈다.

2004년 8월 15일 광복 59돌에 즈음하여, 선열들의 ‘뜨거운 피 엉긴 자취’를 무딘 붓으로 그려보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바란다. / 박도 기자

<심양으로 가는 길>


제1일 2004년 5월 25일 화요일 맑음


05:00. 그동안 답사 여행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해외 여행은 늘 사람을 설레게 한다. 여느 때보다 일찍 잠이 깼다. 날씨가 아주 쾌청하다. 간밤에 꾸려놓은 짐을 다시 챙겼다. 줄인다고 줄였으나 세 가방이다. 주로 참고 책과 노트북, 카메라다.

07:00. 동행할 이항증 선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첫 번째 답사 때 같이 간 분이다. 여행을 하면 사람을 안다고 하는데 동행인을 아주 편케 해주는 분이다. 출발 전부터 알뜰히 보살펴주는 마음에 기분이 더욱 상쾌했다.

a 답사단 일행, 왼쪽부터 최종태, 이항증, 김시준, 권순태, 박도, 손대훈, 인천공항

답사단 일행, 왼쪽부터 최종태, 이항증, 김시준, 권순태, 박도, 손대훈, 인천공항 ⓒ 박도

10:30. 적선동에서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터미널에 가자 약속시간 30분 전인 데도 벌써 일행들이 다 모여 출국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번 답사 일행은 모두 여섯 사람으로 임정 초대 국무령 이상룡 선생 증손 이항증 선생,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독립운동가이신 김규식 선생 손자 김시준 선생, 그리고 안동문화방송국 권순태 PD, 최종태 카메라 기사, 손대훈 카메라 기사 등이다.


이번 답사는 안동문화방송국에서 8·15 특집다큐멘터리로 항일유적답사를 기획한 바, 독립운동가 후손이 조상의 발자취를 더듬는 답사 여정을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필자는 그 코디(안내) 역을 맡았다.

12:20. 중국 남방항공 심양(선양)행 CZ682편에 올랐다. 거의 만석이었다. 12:45 이륙하여 두 시간 조금 안 걸린 13:30분에 심양 공항에 닿았다. 중국과 우리나라는 1시간의 시차가 있기에 시간상으로는 한 시간도 채 안 걸렸다. 중국 가는 길은 여러 곳이 있지만 가능한 선조들이 망명했던 옛 길을 그대로 밟고자 이 길을 택했다.


a 심양공항 대합실의 우리나라 전자제품 광고판

심양공항 대합실의 우리나라 전자제품 광고판 ⓒ 박도

1910년 나라가 망한 전후 독립지사들은 대부분 열차로 신의주로 가서 거기서 압록강을 건너 안동(지금의 단동)에서 마차로 목적지로 가셨거나 압록강에서 일제 군경의 눈을 피하고자 한족의 나룻배를 빌려 타고 만주로 갔다.

해방 60년이 다 되었지만 여태 국토분단으로 그 길을 그대로 밟을 수 없다. 우리 일행은 서울~신의주 길은 생략하고, 심양으로 곧장 가서 다시 단동으로 내려와 거기서 조상의 발자국을 찾기로 했다.

필자는 심양이 두 번째 걸음이지만 심양공항은 처음이다. 그런대로 낯설지 않는 것은 공항을 온통 뒤덮은 삼성과 LG의 광고판으로 우리나라 어느 지방 공항에 내린 기분이었다. 공항 대합실에는 미리 연락을 받은 김시준 선생 조카가 차와 기사를 대기시켜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승용차는 10인승으로 기사는 뜻밖에 여성이었다.

a 심양공항 터미널 광장

심양공항 터미널 광장 ⓒ 박도


초하구를 지나며

15:00. 심양에서 곧장 단동으로 떠났다. 심양~단동간은 300㎞ 가까운 거리로 고속도로였다. 5년 전과는 달리 그새 도로가 잘 닦아져서 쉬운 답사라고 좋아했던 것도 잠깐이었다. 한 시간여 잘 달리다가 갑자기 길이 막혔다.

a 단동으로 가는 길

단동으로 가는 길 ⓒ 박도

아무런 안내방송도 없었다. 기사나 승객이나 그냥 죽치고 길이 뚫리기를 기다렸다. 어느 한 사람 불평하는 이 없이 밖으로 나와서 담배도 태우고 적당하게 용변을 보면서 느긋하게 기다렸다. 중국인들의 성격은 ‘만만디’로 말하는 바, 느긋하게 기다리는데 이골이 난 민족성을 지녔다.

그네들은 영국에게 홍콩을 빼앗기고도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찾았고, 대만도 여태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다. 언젠가는 제풀에 지쳐 돌아오겠지 하는 여유랄까 느긋함이 배어 있다.

이와 반대로 일본은 조금도 참지 못한다. 식민지 백성들이 가장 싫어하는 성을 갈게 한다든지 말과 글을 못 쓰게 하다가 곧 도로 다 게워놓지 않았던가.

한 시간여 지나자 저절로 길이 뚫렸다. 한참 달리자 ‘초하구(草河口)’라는 지명이 나왔다. 기억을 더듬자 병자호란 때 볼모로 심양으로 잡혀가면서 봉림대군이 읊은 시조에 나왔던 지명이었다.

a 교통사고로 꽉 막힌 고속도로

교통사고로 꽉 막힌 고속도로 ⓒ 박도

청석령 지났느냐 초하구가 어디인가
호풍도 차기도 차구나 궂은 비는 무슨 일인고
아무나 행색 그려내어 님 계신데 드리고쟈


병자호란 때 인조 임금이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항복문서를 바치고 사랑하는 아들과 삼학사를 비롯한 충신들을 심양 땅으로 떠나보냈다. 이 길이 바로 그분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지나갔던 길이다. 차를 잠시 멈추고 표지판을 카메라에 담았다.

a 봉림대군이 심양으로 볼모로 잡혀가며 울며지났던 초하구 표지판

봉림대군이 심양으로 볼모로 잡혀가며 울며지났던 초하구 표지판 ⓒ 박도

예나 지금이나 나라가 힘이 없으면 강대국에게 온갖 수모를 다 당한다. 그때 끌려갔던 백성들, 특히 수많은 여인들은 청국 군사의 성 노리개가 되고 늙고 병들어 고국에 돌아온 여자를 ‘환향녀(還鄕女)’ 곧 화냥년으로 일제 때 정신대의 원조 격이다. 그런데 나라는 뭘 하고 잘난 사람들은 돌아온 그들에게 돌을 던졌을까?

20:00. 고속도로 중간에서 머무는 바람에 예상과는 달리 늦게야 단동에 도착했다. 기사는 압록강변에다 차를 세웠다.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봤던 압록강 철교를 볼 수 있었다. 압록강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국문빈관에다 여장을 풀었다.

서울에서 심양으로, 다시 단동으로 옛 조상들이 한 달은 더 걸렸을 여정을 하룻만에 달려와서 압록강을 빤히 내려다보면서 ‘국경의 밤’을 지켜보고 있다.

a 답사자에게 지도는 나침판이다. 가는 길을 점검하는 일행들

답사자에게 지도는 나침판이다. 가는 길을 점검하는 일행들 ⓒ 박도


a 어둠에 덮인 압록강변

어둠에 덮인 압록강변 ⓒ 박도


a 국경의 밤, 압록강 철교

국경의 밤, 압록강 철교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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