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숲, 담양 관방제림으로 오세요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져 사는 풍경

등록 2004.07.14 16:20수정 2004.07.1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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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가 빛을 저장하는 달, 산딸기 익어 가는 달, 천막 안에 앉아 있을 수 없는 달’ 영혼이 맑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7월을 이렇게 노래했다.

젊은 날에는 여름을 좋아했다. 7월이라는 어휘가 던져주는 무한정의 치열함이 좋았다. 7월의 짙푸른 숲과 나무, 7월의 바다와 별 박힌 하늘 그리고 7월의 여자들이 발산하는 속절없는 발랄함이 좋았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어도 7월은 풍요로웠다.


빛과 생명으로 넘쳐나는 7월, 사람과 숲이 하나로 어우러져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담양 땅 관방제림을 찾아 나선다.

a 영산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관방천의 마을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받고 있다.

영산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관방천의 마을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받고 있다. ⓒ 장권호


이 땅에서 가장 잘 보존된 마을 숲

관방제림은 조선조 217명의 청백리 가운데 한 사람인 성이성(成以性)이 1648년(인조 26년) 그의 나이 54세 때 담양 부사로 부임하여 조성한 숲이다. 이 숲은 수령 350년가량의 거목들이 담양읍 남산리 동정 마을에서 천변리까지 약 2km의 구간에서 절정을 이룬다.

천연기념물 366호로 지정된 관방천의 숲은 함양 상림처럼 홍수 방지와 풍치를 위해 조성한 제방림으로 현재 177주가 천연기념물로 보호를 받고 있다. 관방제림의 주요 수종으로는 푸조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음나무, 개서어나무, 곰의말채, 갈참나무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나무의 건강 상태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다.

관방천의 숲은 인가(人家)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댄 채 이무로운 이웃처럼 어우러져 살아간다. 관방제림이 시작되는 담양읍 남산리 동정 마을에서 천변리까지 제방을 따라 우거진 거목들은 제방 아래 낮고 겸손한 모습으로 고만고만 둥지 틀고 있는 사람 사는 집들을 안고 살아간다. 늦가을이면 사람 사는 집들이 융단처럼 두터운 낙엽 이불을 덮고 누워 있는 모습이 그림처럼 곱다. 지난 350여년 세월동안 사람들은 그렇게 숲과 이웃하여 사이좋게 살아왔다.

a 하늘까지 가린 거대한 숲길 사이로 적절하게 비치된 쉼터와 벤치에서 섬세한 손길이 느껴진다.

하늘까지 가린 거대한 숲길 사이로 적절하게 비치된 쉼터와 벤치에서 섬세한 손길이 느껴진다. ⓒ 장권호

담양 사람들의 숲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또한 숲에 대한 보살핌도 각별하다. 마을 주변의 수많은 숲을 보았지만 이렇게 정성을 다해 가꾸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아름드리 거목사이로 끝없이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맥문동, 은방울꽃, 옥잠화가 잘 가꾸어져 있고, 적당한 간격으로 설치된 나무 벤치와 운치 있는 정자가 잘 정비되어 있다. 또한 시간대에 따라 장르를 달리해 적당한 볼륨으로 흐르는 음악은 산책하는 이에게 편안함을 준다.


관방제림의 문화적 가치에 주목한 민선 지자체

민선 지자체 출범 이후 관방천과 추성경기장 일대가 문화공원으로 조성되면서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노거수 보호를 위한 토양개량과 외과수술, 후계수 식재를 시작으로 작년부터는 숲의 생태계 보존을 위해 향교 다리 부근에서부터 일체의 차량 통행을 금했다. 또한 밤이면 산책로 가로등을 일찍 소등하는 등 세심한 관리를 하고 있다.


a 제방 곳곳에 은방울꽃 옥잠화 맥문동 등이 흔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제방 곳곳에 은방울꽃 옥잠화 맥문동 등이 흔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 장권호

최근 관방제림의 문화적 가치에 주목한 담양군이 추성경기장을 새로 정비하면서 산책로와 생활체육공간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관방제림은 새로운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강과 숲으로 둘러싸인 전국 최고 수준의 생활체육 공간인 추성경기장이 주민 속으로 파고들어 주민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며, 전시용 시설로 전락하고 있는 월드컵 경기장을 생각하게 했다.

게이트볼 경기장과 테니스 경기장을 비롯하여 꿈의 잔디구장과 우레탄 트랙을 구비한 추성경기장은 인라인 스케이트 타는 사람과 조깅하는 사람들로 늘 활기가 넘친다. 또한 이른 저녁을 마친 가족들이 함께 나와 가족 단위로 우레탄 트랙이 주는 맨발의 촉감을 만끽하며 걷는 모습은 삶의 여유 그 자체다.

a 쾌적한 잔디구장과 우레탄 트랙은 담양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생활체육 공간이다.

쾌적한 잔디구장과 우레탄 트랙은 담양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생활체육 공간이다. ⓒ 장권호

조선의 옛 숲과 메타세쿼이아 길의 어울림

담양군은 최근 담양읍을 우회하는 새로운 24번 국도를 개통하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토론하여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의 피해를 극소화하기 위해 기존 도로를 살려냈다.

2002년 산림청이 제정한 <제3회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바 있는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은 자전거 전용 도로다. 관방천의 산책로와 연계되어 하나의 문화벨트로 묶여진다면 담양은 아마 환상의 산책로와 자전거 전용도로를 갖게 될 것이다. 관방제림은 오랜 세월 담양의 상징이었던 대나무를 단번에 대신하게 될 새로운 문화브랜드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수령 350여년이 넘은 거목들이 즐비한 관방제림의 사계절은 모두 아름답다. 벚꽃 흐드러진 봄날의 화사함, 참매미 자지러지게 우는 여름날의 여유로움, 낙엽으로 온 산책로가 뒤덮여버리는 가을날의 호사스러움, 적막감 감도는 겨울 숲의 호젓함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a 나라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 길로 가꾸어진 메타세콰이아 숲길

나라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로수 길로 가꾸어진 메타세콰이아 숲길 ⓒ 장권호

관방천의 산책은 담양읍에서 도립전남대학으로 이어지는 향교다리에서 시작, 추성경기장 뒤편으로 해서 남산리 동정 마을까지 갔다 돌아오는 왕복 코스를 권하고 싶다.

이 짧고 행복한 산책길은 남산리 동정리 마을 어귀에서 아쉬움을 달래야 한다. 꿈결같이 행복했던 짧은 산책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서둘러 발길을 돌려야할 충분한 이유가 있으니…. 이번 나들이에서 결코 놓칠 수 없는 토종맛 국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향교다리 아래 <진우네 집>은 국수로 유명하다. 허름한 평상을 그냥 도로변 나무 아래 펼쳐 놓고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음식을 들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오래 전 잊혀진 고향집 풍경 같아서 정답기 그지없다.

올해로 꼭 36년째 이 장사를 한다는 주인 송순덕 아주머니는 국수의 깊고 시원한 육수 맛이 유명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비싸고 좋은 멸치만으로 국물을 낸다는 <진우네 집> 국수 맛을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대개 단골이 된다. 인근 광주에서도 오직 이 집 국수만을 먹기 위해 찾는 사람들이 많다. 대개 여름에는 사람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평상에 앉아 먹는데, 아름답고 정겨운 천변 풍경을 바라보며 뜨거운 국물을 마시는 모습은 또 하나의 잊지 못할 풍경이 된다.

a 숲과 강이 함께 어우러진 관방천은 담양 사람들의 자랑이다.

숲과 강이 함께 어우러진 관방천은 담양 사람들의 자랑이다. ⓒ 장권호


여행의 마무리

장맛비 그치고 서늘한 저녁 바람 불어오거든 이 땅에 남아 있는 마을 숲 중 가장 보존이 잘된 담양 관방제림으로 가족과 함께 떠날 것을 권하고 싶다. 또한 인라인 스케이트나 배드민턴 라켓 등 간단한 운동 기구도 몇 가지 챙겨 가면 분명 아이들로부터 자상하고 따뜻한 부모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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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교사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2년째 광주교사신문 12면에 주제가 있는 여행 꼭지를 맡아 집필하고 있다. 또한 광주과학고등학교에서 국어를 담당하고 있으면서 학교도서관 운동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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