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을 넘어서"

<콩깍지 사랑>, 자연을 닮아 순박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엮은 책

등록 2004.07.15 13:43수정 2004.07.1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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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궁금하게 여긴다. 그리하여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진로가 아직 분명하게 정해지지 않았던 대학 시절까지, 장차 자신이 어떻게 살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면, 당시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경우를 발견하곤 한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일정 부분 방향을 수정했다손치더라도, 미래의 삶에 대한 다양한 고민들이 자신의 현재 모습을 만들 수 있었다는 데에는 누구라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지금의 삶의 모습이 스스로 만족스럽게 여겨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취업을 하여 사회인으로서 본격적인 삶의 현장에 뛰어들면, 자신의 앞날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쉽게 예측되곤 한다.

간혹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 현재의 직장을 그만두고, 진정 자신이 원하던 또 다른 삶을 위하여 과감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한 선택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아마도 부러움과 우려가 반쯤 섞인 눈길로 바라보기가 십상이다.

부러움은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서 연유할 터이고, 우려라는 것은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왜 험한 모험의 길을 선택하는가에 대한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선택은 언제나 익숙하지 않은 삶에 적응하는 과정이기에, 대체로 얼마쯤의 모험이 수반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현재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뭔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획기적인' 삶으로의 전환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선택한 삶을 바꾸기란 여간해서 쉽지 않은 노릇이다. 또 그러한 삶의 전환이 언제나 성공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며, 의도했던 바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절망으로 빠져드는 경우도 있다. 그리하여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현재 삶에 적응하면서, 마음 속으로만 '새로운' 꿈을 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추둘란의 <콩깍지 사랑>은 '평범한' 직장인이 '특별한' 부모가 되어 겪게 되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자신이 선택했지만, 원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는 삶이 눈앞의 '현실'로 되었던 것을 겪어야만 했던 저자의 마음이 오롯이 전해왔다.

또한 서로 넘나들이 하면서 살고 있는 저자의 마을 이야기를 통해서, 자연을 닮아 순박한 마을 사람들의 삶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하여 서울을 떠나 작은 소도시에 5년째 살고 있는 지금까지도, 대도시의 생활 습관을 채 떨쳐버리지 못한 나의 인식을 교정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다운 천사와 울보 엄마의 시골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 이 책은 다운증후군으론 인한 정신지체를 겪는 아들을 둔 한 어머니의 생활의 기록이다.

도시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생활하던 저자가 우연히 찾은 자그마한 마을에서 현재의 남편을 만나고, 다시 다운증후군에 걸린 아들을 낳으면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삶이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접하면서, 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의 심정에서 저자의 마음을 들여다보곤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아들인 민서와 비슷한 또래인 5살박이 내 아들 가은이를 겹쳐서 생각하곤 했다. 우리 사회가 장애우들을 보다 더 배려하는 여건이 빨리 성숙되기를 바라며, '민서'가 지금처럼 밝게 클 수 있기를 빌기도 했다.

실제 아내가 아이를 가졌을 때, 뱃속의 아이에 대한 주위의 반응에 걱정을 하며 '혹시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만약 나라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아마도 저자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이겨나갔을 터이지만, 장애우에게 무관심한 우리 사회의 복지에 대한 열악한 인식의 수준을 새삼 되돌아볼 수 있었다.

우리는 늘 비교의 대상을 나보다 조건이 좋은 사람들과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육신은 멀쩡하지만 온갖 편견에 사로잡혀 정신적인 장애를 지니고 있는 '정상인'들의 삶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 주고 있다. 어쩌면 몸이 불편한 것은 기꺼이 감내할 수 있지만, 정신적인 장애는 극복하기가 힘든 것이 아니겠는가.

아이를 위해서 도시의 생활을 포기하고, 시골 생활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저자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언뜻 머리에 떠오른 것은 '박실(朴實)'이라는 단어였다. '순박하면서도 진실되다'라는 정도의 의미일텐데, 충청도의 시골에 정착해서 살고 있는 저자의 삶의 모습과 글의 분위기를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 듯하다.

무엇보다 마치 앞에서 말을 건네는 것과 같은 어투가 독자들로 하여금 이 책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특히 해당 지역의 생활 언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시골살이가 늘 평화롭고 즐겁지만은 않을 터이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금세라도 넉넉한 시골의 인심에 푹 싸여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아마도 그것을 표현하는 저자의 글솜씨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리라.

세 해 남짓 잡지에 연재되었던 글을 다시 묶어 펴낸 이 책을 통해서, 저자의 꾸밈없는 생활의 모습은 물론 다운증후군인 아들을 키우며 세상에 대한 저자의 인식이 변해가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선천적인 질환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서 누구라도 장애를 지닐 수 있는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문제인데도,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과는 무관한 문제라고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온천에서 '자신있게' 아들과 함께 목욕을 즐기는 모습에서, 저자의 삶에 대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오히려 대중목욕탕에서 목욕을 즐기는 '민서'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몸은 멀쩡하나 정신이 병들었을지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을 향해 저자가 소중한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라고 느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른 사람의 눈물이 보이기 시작하자, 한 번도 아름답다고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의 아름다움과 소중함도 함께 보이기 시작했습니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쉽게 그 느낌을 떠올리지 못하며, 그러한 삶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어쩌면 편안함에 길든 현대인들의 조급증이 조금이라도 불편해지면 견디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아들 민서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몸집이 작고 발육이 더딜지라도, '다른 아이들이 좀 급하게 자라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낙관'의 힘은 저자의 삶을 튼실하게 지탱해주는 근거일 것이다. 장애를 지닌 아들을 보면서 '감당할 만한 사람에게 주신다'는 저자의 인식 또한, 삶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현명한 것인가를 깨닫게 해준다고 하겠다.

저자의 글들을 읽으면서 나라면 이 책의 제목을 '천천히 자라는 아이'로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천천히' 자라는 것은 '늦게' 자란다는 것과는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늦게' 자란다는 것은 늘 누군가 비교의 대상을 상정해야 한다. 그러한 비교의 관점이 바로 장애우들을 '비정상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태도인 것이다. 따라서 다운증후군의 민서는 다른 아이들보다 결코 '늦게' 자라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의 모습이 똑같지 않듯, 단지 자라는 모습이 조금 다르게 '천천히' 나타날 뿐이다.

'천천히' 자라는 민서의 모습은 수많은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다양한 발육의 모습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럼에도 장애우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편견은 민서의 '평범한' 모습을 아주 '특별한' 것으로 여기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편견이야말로 반드시 교정되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자식을 키우면서 누구나 느꼈을 평범한 경험이, 그리하여 저자로 하여금 '특별한'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을 것이다. 세상의 시선을 넉넉한 생각으로 감싸 안는 저자에게도 간혹 견디기 힘든 상황은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특별함'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저자는 '다운 학교'의 건설을 꿈꾸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의 출판 과정에 나는 독자 기획위원이라는 명칭으로 참여를 했다.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라는 인터넷 북 커뮤니티에서, 이 책의 원고를 읽고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줄 것을 부탁하여 기꺼이 이에 응했던 것이다.

책의 앞머리에는 이 과정에 참여한 71명의 독자 기획위원의 이름이 적혀 있고, 책의 뒷표지에는 이중에서 나를 포함한 여섯 사람의 짧은 소감이 소개되어 있다. 출판 과정에 참여하여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글의 내용을 주변에 권해주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편안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저자의 문체는 물론이고, 가족의 의미와 삶의 모습을 스스로 돌아보게 해주는 힘을 느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 책의 원고를 읽을 당시, 개인적으로 내가 속한 모임에서 어려운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단지 그동안 내가 보지 않았을 뿐이지, 그들은 내내 그렇게 사회에서 소외를 당하며 그렇게 그곳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주변에 시선을 던지는 순간, 그동안 보이지 않던 부분까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당시 만났던 아이들은 자신의 탓이 아닌 부모 등의 책임으로 인해서 사회에서 소외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그들에게는 이웃의 다정한 손길이 참으로 큰 위안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원고를 읽으면서 나는 이러한 이웃들에게도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정말이지 절망에 빠져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 책의 내용을 통해서 삶을 꿋꿋하게 살아가는 자세를 배우라고 권하고 싶다.

콩깍지 사랑 - 추둘란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수필집

추둘란 지음,
소나무,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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