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84

멈춰버린 그림자

등록 2004.07.16 09:01수정 2004.07.1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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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배의 말을 따르기로 한 백위길은 퇴청하는 박춘호를 기다리다가 부리나케 달려갔다.

"무슨 일인가?"


백위길은 머뭇거리며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 사람 또 술이 마시고 싶은 겐가? 그럼 어서 아무 곳이나 가 보세나."

"애향이를 살려 주십시오!"

백위길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그 자리에 엎드려 무조건 박춘호의 다리를 잡고 소리쳤다. 박춘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백위길을 내려다보았다.

"이 사람 포도청 앞에서 무슨 짓인가? 애향이를 살려달라는 말은 뭔가?"


강석배의 말이 사실이라 해도 박춘호가 이를 쉽게 인정할 리는 없었다. 백위길은 어정쩡한 몸짓으로 애향이를 살려달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이거 이 사람...... 어디서 몰래 낮술을 마신 게로군! 이렇게 추태를 부리다가 다른 이들의 눈에 띄면 곤란하니 어서 여기를 뜨세!"


박춘호는 당황해 하며 억지로 백위길을 끌듯이 데려가 숨을 골랐다.

"애향이를 생각하는 자네 마음은 알겠네만 거기서 내게 그러면 어찌하나? 적어도 포교라면 말일세......"

"형수님의 일을 잊었사옵니까?"

백위길이 한 말은 뜻밖에도 박춘호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박춘호는 놀란 눈으로 백위길을 쳐다보더니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눈빛을 부라리다가 곧 거두고서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래,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백위길은 숨을 한껏 들이쉬었다가 토하듯이 내뱉었다.

"박포교님께서는 형수님을 구할 수 있었음에도 그냥 두었사옵니다. 하지만 저는 박포교님을 통해 애향이를 구할 수 있습니다. 저를...... 박포교님과 같은 사람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박춘호는 있는 힘을 다해 백위길의 뺨을 후려쳤다. 순식간에 뺨을 맞은 백위길은 잠시 귀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지만 꿋꿋이 견디고 박춘호 앞에서 고개를 수그렸다.

"네 놈이 뭘 안다고 함부로 입을 놀리느냐!"

박춘호는 잠시동안 씩씩거리다가 백위길을 남겨두고 휙 하니 등을 돌려버렸다.

'아차! 내가 너무 섣불렀구나!'

백위길이 후회하며 다시 매달리려는 찰나 박춘호는 등을 돌려 소리쳤다.

"빨리 서소문으로 가 보아라! 사대문이 문을 닫을 때 김포교가 그 년을 끌고 사대문 밖으로 나갈 것이니라! 서두르지 않아 놓쳐도 날 원망하지 말아라!"

그 말에 백위길은 박춘호에게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곧장 달려나갔다. 백위길은 숨이 턱에 차도록 달리고 또 달렸다. 마침내 서소문 앞에 다다른 백위길은 주저앉으며 문지기들에게 힘겹게 말했다.

"여...... 여기로 웬 포교와 여인이 지나가지 않았소?"

문지기는 별 일 다 보겠다는 듯 놀란 눈으로 백위길을 보았다.

"언제 말이오? 내가 하루종일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를 지나간 이들을 다 기억하지도 않소이다."

"문을 폐(閉)한 뒤 말이오다."

"이제 문을 폐할 참이오만 문을 폐한 뒤 누가 감히 지나간단 말이오."

문지기는 그런 일은 절대 없다는 듯 단호히 말했고 백위길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백위길이 헐떡이는 숨을 거의 고를 때쯤 김언로와 사당패, 그리고 묶인 채 끌려가는 끔적이와 애향이가 나타났다.

"애향아!"

백위길은 정신없이 애향이를 보고 내달렸고 김언로는 적잖이 당황한 기색으로 백위길을 쳐다보았다.

"자...... 자네가 여기 웬일인가?"

"포장께서 알려 주었다네. 그러니 어서 애향이를 풀어주게나!"

"뭐라?"

김언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우두커니 애향이를 바라보았고 백위길은 재빠르게 묶인 것을 푼 후 끔적이를 보았다.

"아니, 자네는 어찌된 것인가?"

끔적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어찌 알겠소이까. 그저 여기까지 할 수 없이 끌려온 것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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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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