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7일 이라크 파병반대를 주장하며 삼보일배를 시작한 이라크 파병반대 광주전남 비상국민행동 회원들이 최종목적지인 5.18국립묘지에 도착해 민주의 문을 통과하고 있다.
강성관
이미 앞에서 말한 셈이지만 이제 진지하게 새로운 여울을 향해 가는 우리의 여정에서 우리가 반드시 고민해야 할 과제들을 정리해 보자.
첫째가 공동체의 새로운 사회적 의제에 대한 탐구와 도전,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도전일 것이다. 세계화와 정보화가 가져온 사회의 변화는 과거 우리가 접하지 못했던 사회적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생태, 인권, 성, 빈곤, 노동, 평화 등의 문제는 일국적 범주에서뿐 아니라 전지구적 차원에서의 문제라는 관점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한반도는 이제 남북관계의 변화에 따라 분단으로 인한 문제에 대한 대응은 과거와는 또 다른 지형에서 우리 사회와 공동체의 긴급하고도 중요한 문제로 다가와 있다.
90년대의 시민운동이 우리 사회의 투명성과 형평성, 공정성이라는 가치에 주목하고 근대적 합리성이라는 사회적 룰을 만드는 일에 기여해 왔다면 이제 시민운동에는 세계화와 정보화로 인한 새로운 사회변화에 조응하는 의제들을 제기하고 공동체의 가치지향을 만들어 나가며 새로운 사회적 룰과 문화로 만들어가는 숙제를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아마도 이는 기존의 우리 사회가 갖는 질서와 문화 전체에 대한 심각한 문제제기로 시작될 것이다.
둘째는 운동방식과 운동가의 전망, 전형에 대한 변화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기존 시민단체의 운동방식과 다른 운동양식, 그에 따른 전혀 다른 운동가의 모습 등이 보이고 있다. 90년대 식의 시민운동의 전형은 전문적 정책대안을 내기 위한 공청회, 토론회, 이를 사회적 압력으로 조직하기 위한 집회와 시위, 캠페인, 성명서, 각종 기획된 보도자료, 입법청원 등이다. 당연히 이같은 운동방식에서는 전문가와 상근운동가의 결합이 중요한 요소로 된다.
앞으로도 그러할까? 정책과제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전문가중심의 싱크탱크들이 훨씬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9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전문가들의 견해가 사회적으로 의제화되는 방식은 대단히 제한적이었다. 그 저변을 확대해준 것은 경실련이나 참여연대 방식의 운동이었다.
그러나 이제 전문가들도 굳이 시민단체를 매개로 자신들의 견해를 사회적으로 의제화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각종 공간이 열려 있으며 자신들만으로 이루어진 모임이라 하더라도 때에 따라서는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서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일상화된 캠페인, 퍼포먼스, 성명서, 공청회 등에 사람도 오지 않고 언론에 실리지 않는 경우도 많아졌다. 여론을 조직하는 방식의 중심이 인터넷으로 옮겨가면서 그 비중이 상대적으로 작아진 것이다.
80년대 대중운동이 노동조합과 농민단체들을 매개로 집단의 위력과 군중동원이라는 전술을 택해 왔고, 90년대 시민운동이 수십 개, 수백 개씩의 단체 연명으로 단체를 동원하는 전술로 대중운동을 전개했으며, 이 두 양식이 그간 공존해왔다면 이같은 동원전략도 변화할 수밖에 없는 지점에 와 있는 것이다. 네트웍적 방식이란 결국 수많은 개인과 써클, 구체적 의제에 동의하는 개인과 써클의 자발적 참여라는 방식으로의 전환을 말한다. 아마도 운동방식은 이렇게 변화할 것이며 이는 운동가 개인의 존재방식도 바꾸어놓게 될 것이다.
특별히 조직과 집단에 종속적 지위를 갖지 않는, 한 조직에 풀타임 근무를 하면서도 다른 여러 조직과 서클에 관여하고 일하는 모습을 아마도 흔히 보게 될 것이다. 때로는 어느 조직에도 풀타임 근무를 하지 않으면서도 여러 단체에서 적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도 보게 될 것이다.
규모가 작은 단체들은 이미 이같은 방식에 익숙해지고 있다. 규율이라는 이름아래 특정한 단체의 엄밀한 정체성으로 개인을 가두어 두기에는 세상이 너무 변했다. 자유롭게 사고하고 창의적으로 일하며 어디에 속하든 관계없이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더 우선인 자유인들의 모습으로 운동가는 거듭날 것이다.
셋째, 앞으로 시민운동에게 중요한 요소, 키워드는 인터넷, 지역, 개인이다. 인터넷과 개인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지역이란 키워드는 ‘생활’운동이란 방향과 결합하면서 시민운동이 지역의 주민과 구체적으로 결합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지금의 지역운동이 지역내 기득권세력과의 싸움을 통해 지역의 시민사회를 구축하고 확장하는 과정에 있다면 향후에는 이 공간에서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실현하는 운동이 구체적으로 전개될 것이고 이 과정은 시민들이 정치와 행정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동시에 인터넷이라는 수단은 지역운동을 거주민 중심과 지역적 경계 안에 가두어 두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보았듯이 보길도 문제나 천성산 문제는 지역의 문제이지만 거주민과 지역의 경계를 넘어 전개된 운동이기도 하였다. 이는 지역운동이 지역이라는 지리적 경계 안에서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서울의 단체들이 지역과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시민운동의 향후 방향과 관련해 하나의 키워드를 더 든다면 민중운동과의 ‘연대’일 것이다. 노동조합 등 기층조직 역시 여전히 중요한 사회발전의 동력이겠지만 시민운동과 만나는 모듈은 과거와 갖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80년대 민중적 대의라는 깃발아래 발걸음 맞추어 나간다 식의 연대가 아니라 파병반대에 대한 공동행동처럼 우리 사회가 새로이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한 합의에 기초한 사안별 연대라는 방식을 취하게 될 것이다.
아직 논의하지 못하고 있고 우리의 인식이 확장되고 있지 못하지만 우리가 지향해야 할 연대의 방향은 기존 민중운동과 기존 시민운동의 분립적 연대가 아니라 두 진영의 결합 자체가 새로운 패러다임과 방식에 기초한 것이어야 한다고 본다. 두 진영 모두 이 점에서는 현재는 준비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사안별 연대라는 방식에 당분간은 의존하게 될 것이다.
운동의 방식에 있어서도 기층조직의 물리적 동원력에 기초해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방식을 배제하지 않지만 시민운동이 그간 취해 온 방식과는 거리가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인다. 개인과 서클, 지역이라는 조직들을 연결해 공동체의 가치에 대한 성찰적 이해가 있는 협력적 시민 개인과 그룹의 연합이라는 방식을 자신의 것으로 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모두를 담지는 못하였다. 우리 사회에, 우리 운동에 스스로 던지는 질문의 내용과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삼보일배는 그 질문의 방식과 문제제기의 방식을 기존의 운동과는 전혀 다르게 보여주었다. 여기엔 또 하나의 키워드가 담겨있다. 어려운 내적 성찰을 담은 운동은 진정성이 있다. 여기서 더 이야기를 전개하진 못했지만 지금 우리가 우리를 성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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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운동의 중요한 키워드, 인터넷· 지역·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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