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27일 저녁 광화문 네거리에서 탄핵무효, 민주수호 촛불집회가 8만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권우성
90년대 한국의 시민운동은 대변형 운동이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민들은 2만여개 넘는 시민단체가 있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5개 정도의 시민단체만을 기억할 뿐이다. 이 5개의 시민단체는 우리 정치권과 언론이 알고 있는 시민단체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5개의 시민단체는 자신의 정체성이 성이든, 환경이든, 부패든 대변형 단체로 상징되었고 실제 활동도 그러하였다.
우리는 이를 흔히 경실련식 운동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들 단체의 급속한 사회적 영향력의 획득은 시민사회 공간을 넓히는 데 긍정적으로 기여하였고, 수많은 단체들이 그 넓어진 공간에서 시민사회의 새로운 가치를 공동체의 것으로 하기 위해 활동하고 성장하였다. 분명 오늘날 시민사회의 성장은 이들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동시에 시민운동은 이들 단체와 동일시되었다. 이들 단체의 공헌에 의해 성장한 시민운동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이들 단체의 모습으로 굴절되었다.
지난 4월 총선은 그간 시민운동에 드리워져 있던 이같은 제한된 프리즘을 걷어내게 만들고 있다. 아니 2000년 총선시민연대 라는 90년대 시민운동의 최정점의 활동을 거치고 난 지난 4년간의 시간이 모두 그 프리즘을 걷어내는 과정이었고 지난 4월 총선은 그를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할 것이다.
4월 총선은 근대적 정치에 대한 요구와 시민사회의 새로운 사회적 가치에 대한 요구가 병행되어 오다 비로소 정상적으로 분리될 조건을 만든 셈이다. 근대적 정치, 사회개혁 요구와는 다른 요구들을 새로운 사회적 의제라 표현하기도 하고, 일부에서는 생활정치 영역으로 표현하거나 급진적 요구라 표현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90년대 시민운동의 성장으로 90년대와는 다른 사회적 의제들이 분출되면서 이미 시민운동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받고 있었으나 후진적 정치지형으로 인해 중심적 의제로 보여지지 않았을 뿐이다.
시민운동 자신 역시 '경실련', '참여연대'라는 프리즘에 갇혀 그같은 시민운동의 변화, 시민운동의 성장이 만들어 낸 스스로의 변화를 보지 못하거나 인식의 정도가 약했던 것이다. 다시 강조한다면 90년대 각 사회운동 분야에서 새로운 진보적 가치에 기반한 운동의 성장이 있었다. 그러나 시민운동 스스로 착시현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고 이제 비로소 운동의 변화가 인식되기 시작하는 상태에 있는 셈이다.
누구나 이야기하고 있듯이 지난 4월 총선은 비로소 근대적 정치지형을 형성하기 시작한 선거였다. 민주노동당의 의회진출로 상징되듯 비로소 '정상적' 정치 지형을 형성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곧바로 그간 준정당적 기능을 담당해 오던 시민운동도 필연적으로 변화할 수 밖에 없겠다는 광범한 인식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그간 시민운동이 지역과 보스의 차이에 기반한 비슷비슷한 정치세력들 사이에서 정치적 중립을 무기로 심판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가치와 가치에 기반한 정치세력간의 충돌이 가능한 조건이 형성되었고 그에 따라 기존의 정치적 중립이란 위치는 무력한 것이 되고 있다. 이는 정치적 지지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선에서 시민운동진영인 대선유권자연대와 노무현이라는 후보를 통해 근대적 정치를 실현해 보려는 흐름의 반영이기도 한 노사모를 비교해 보면 분명해진다.
2000년 당시 총선시민연대가 가졌던 역동성과 정치권과의 긴장은 2002년에는 노사모의 것이었다. 인터넷을 매개로, 시민들은 2000년에는 시민단체를 통해 근대적 정치에 대한 욕구를 실현하려 했다면 2002년에는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통해 실현하려 한 것이라고 해석해 볼 수 있겠다.
이제 준정당적 활동에 기반한 대변형 시민단체의 활동, 90년대식 시민운동은 그 시대를 마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대변형 단체들의 생명이 마감하는 것은 아니다. 90년대 운동의 전부처럼 여겨졌던 착시현상이 거두어들여지면 대변형 단체들은 정치, 행정, 의회 영역에서 더욱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문제에 기초해 자기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지만 점차 이들 대변형 운동이 과거처럼 운동의 전부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90년대식 운동은 자기역할을 마감하고 있는 것이다.
준정당적 성격의 시민운동,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변신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