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60만원에 의료보험료 6만9천원?

이주노동자 노동 인권 현실, 과연 나아졌나

등록 2004.07.19 09:12수정 2004.07.1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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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 '외국인근로자고용등에관한법률'이 통과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외국인 이주노동자 노동 인권 현실이 좋아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선 외국인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별반 달라진 게 없고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어제 저는 합법적인 비전문취업비자(E-9)를 갖고 있는 부부 두 쌍을 상담했습니다. 한 부부는 인도네시아인 부부였는데,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기본급인 시급 2300원(남자), 2150원(여자)을 받고 일하고 있었습니다. 더 기가 막히는 사실은 각종 수당 계산이 엉터리로 돼 있는데다가, 60만원이 조금 넘는 월급에 의료보험료를 6만9천원이 넘게 공제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거기에 다시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인지대란 명목으로 3만원을 떼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일한 지 10개월이 넘었다는 그들은 급여가 적지만 40대의 외국인 부부가 함께 일할 수 있는 회사가 많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나름대로 잘 참고 견뎌 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불법체류자를 포함해 100여 명의 외국인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던 회사는 불법체류자 단속이 심해지자 절반 가량의 불법체류자를 내보냈습니다.

그러자 작업량이 터무니없이 많아졌고, 급여 인상은 이루어지지 않아 부부는 직장 변경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회사에서는 그들의 여권을 압류한 채, 회사를 옮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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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받는 방글라데시 부부. ⓒ 고기복

또 다른 부부는 방글라데시인 부부였는데, 공장장에게 무지막지하게 맞아서 피멍이 든 엉덩이와 액정이 깨진 핸드폰, 상해 자국이 있는 팔뚝을 보이며 상담을 청해 왔습니다. 그들은 차마 자식에게 눈물을 보이기 뭐했는지 여섯 살짜리 아들을 사무실에서 내 보내고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밖에 있는 아이는 부모가 당한 상황을 다 보았고, 뭐가 문제인지 다 알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문제의 사건은 지난 14일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공장장이 근무가 끝나고 부인인 조블리 이슬람에게 수박을 사오라고 시켰는데, 주문하기를 수박을 쪼개서 갖고 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부인은 수박이 잘 익었는지를 칼로 잘 확인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수박을 사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박을 들고 오자 공장장이 무작정 때리기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수박을 시키는 대로 쪼개지 않고 그냥 사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돈을 주면서 사오라고 한 것도 아니면서 공장장은 부인을 신주(쇠파이프)로 엉덩이와 손목을 내리쳤고, 말리는 남편 역시 마구 때려 그 와중에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 액정이 깨질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폭행을 당한 부부는 인근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병원에서 외국인노동자의집을 소개해 줬고, 경찰에도 연락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았지만 복잡한 일에 끼어들기 싫었던지, 부부에게 저희 센터 이름을 적은 쪽지를 손에 쥐어 줬더군요.

병원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경찰이 폭행을 가한 사람을 수사하지 않고, 그런 일을 저희 같은 단체에 떠밀었다는 사실 또한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 일에 대해 업체 대표 부인은 공장장에게 단단히 주의를 준다고만 하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공장장이 다시 때리지 않도록만 해 준다면 그곳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부부가 함께 일할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상담을 받다 보면 이 땅의 이주노동자 인권 현실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약자를 상대로 어린 아이가 보는 앞에서 폭력을 행사하고, 경찰은 나 몰라라 하고, 한국 물정을 모를 거라고 단정하고 임금을 조직적으로 착취하는 업체가 있는 이 땅의 현실이 변한 게 있다고 말할 수 있나요?

위의 두 부부는 합법적인 비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합법적인 취업비자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인권 현실이 이러할진대, 흔히 말하는 불법체류자에 대한 대우야 말할 나위가 더 있겠습니까?

고용허가제가 실시되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듯이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용허가제가 갖고 있는 독소적인 조항들과 일부 몰인권적인 고용주들로 인해, 위 같은 사례가 여전히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는 현실은 이 땅의 외국인 이주노동자 인권 현실과 근로 조건에 대한 개선이 아직도 멀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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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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